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2.3 | 연재 [문윤걸의 음악이야기]
문윤걸의 음악이야기3.1절 기념식장에 울려 퍼질 '상록수'
문윤걸 문화평론가, 문화저널 편집위원(2003-03-26 16:55:24)

참으로 신선한 뉴스 한토막이 신문 구석에서 조그맣게 빛을 발하고 있다. 행정자치부에서 올해 3.1절 기념식장에서 불릴 기념 노래로 '상록수'를 선정했다는 뉴스인데 바로 이런 일이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그리고 변하였음을 실감하게 한다.
3.1절이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이던가? 일제의 압박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난 3천만 겨레의 자주 독립 선언의 날이 아니던가. 우리 민족을 남북으로 갈라놓은 이념의 대립도 없이 문자 그대로 '한민족'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역사가 아니던가. 이렇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리는 기념일에 모두가 함께 부르는 노래로 '상록수'가 선정되었다는 것이 내게는 매우 의미깊고 상징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상록수'가 어떤 노래던가. 젊은이들에게는 박세리가 두발을 연못에 담금 채 골프채를 휘두르는 장면으로 인상깊은 박세리 신화의 배경음악으로 기억되겠지만 이 노래의 진정한 힘은 80년대 초반의 시대적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상록수'는 겨레의 노래로 불리는 '아침이슬'의 작곡자 김민기가 만들고, 양희은이 부른 노래로 후에 '늙은 투사의 노래'로 바꿔 부르는 '늙은 군인의 노래'등과 함께 불리던 노래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노래들은 폭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이를 무자비하게 행사하던 군사독재정권에 굴복하지 않고 이들에 대한 중단없는 저항을 다짐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주술적인 힘을 가지게 되었다.
70-80년대초 대학생 시위대에게는 통일감을 주는 마땅한 시위용 노래들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주로 미국의 반전운동에서 사용되던 미국 포크음악을 번안하여 부르며 시위 분위기를 돋우웠다. 이런 시위대가 찾아낸 우리 노래가 바로 '아침이슬', '상록수', '늙은 투사의 노래' 등이었다. 이 노래들은 곧바로 금지곡이 되었으며 TV나 방송을 타지 못했지만 삽시간에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퍼져나갔고 애창곡 1번이 되었다. 이런 노래를 토대로 각 대학에서는 시위용 노래를 만들어내는 동아리들이 생겨났으며, 이런 노래들이 모아지고, 또 이런 노래를 즐겨부르는 집단이 생겨나면서 폭넓게 '운동가요', '민중가요'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대성공으로 각 대학에, 또 각 사업장마다 노래패들이 생겨났고, 이들로 인해 80년대 말, 90년대 초반은 민중가요, 운동가요의 전성기가 되었다.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많은 금지곡들이 방송을 통해 알려졌고, 본래의 가치를 되찾게 되었다.
3.1절 기념식장에서 울려 퍼질 '상록수'를 상상하며 나는 그동안 '사회의 기강을 뒤흔들고 조화로운 사회의 질서를 뒤흔드는' 데모현장에서 '사회의 불만세력이나 불순분자들의 꼬임에 빠져 철없이 날뛰는' 대학생들이 즐겨 부르는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는 몹쓸 노래'로 취급되어 온 많은 노래들이 이제 그 순수한 가치를 온전하게 되찾고, 더불어 이런 노래들이 울려퍼지던 데모현장과 그 현장에 우뚝 서 있던 젊은 영혼들도 그 순수한 가치를 온전하게 되찾아 가는 것 같아 비로소 우리 사회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가는 것이 아닌가 기대해본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