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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 | 연재
옛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시간여행
이흥재 사진작가(2005-12-09 17:25:59)

『옛길을 가다』 (김재홍·송연 지음, 한얼미디어 펴냄)

영남대로 청도 원동 마을에서 수더분한 아줌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아저씨, 근데 회사는 어카고?”
“그만뒀죠”
“아니 글면 옛길만 찾고 돈길은 언제 찾을낀데?”

이 대목을 읽으며, 
한때 잘 나가던(?) 선생을 그만두고 대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 나는,
“뭐하러 찍소?” “돈은 어디서 나오요?”
“참 팔자 좋은 양반이네”
시골 장날 사진을 찍으러 갈 때 마다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두 부부는 10년 넘게 하루도 안 쉬고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걸어서 인도(印度) 배낭여행을 하기로 했다. 미리 체력훈련 삼아 태안반도를 걸으면서 무엇에 홀렸는지, 동해안과 민통선을 거쳐 강화까지 걸었다. 그리고는 우리 땅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옛길”이란 화두로 진짜 옛날 사람들이 걸어서 갔던 길 즉, 인도(人道)로 걸어서 간 것이다. 

태어나면서 역마살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한곳에 머물면서 진득하게 일을 하기보다는 돌아다니면서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에게 흔히 쓰는 말이다. 김재홍, 송연씨 부부 두 사람은 역마살이 낀 사람들 인 것 같다. 이 부부는 햇수로 4년 동안 신발 세 켤레가 다 닳아지도록 걷고 또 걸었다. 부산 동래에서 서울까지, 영남대로 950리, 해남 관두포에서 숭례문까지 삼남대로 970리를 두 부부가 함께 걸어서 “옛길을 가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옛길 걷기에 가장 큰 길라잡이인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 선생과 성과 본이 같다는 김재홍씨는 혹시 김정호 선생이 환생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하고 댕기는 사람들이여?”
“예 부산부터 서울까지 걸어가는 중이예요”
“아니 차타고 다녀야지 왜 걸어다녀?”

도대체 왜 걷지?
걷는다는 것! 걸음은 만남이다. 걸으면 내 밖의 세상과도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옛길은 옛사람과 만날 수 있어 더욱 좋다. 정말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자동차를 타고 네비게이션이 안내해 주는 데로 가만히 앉아서 목적지에 갈 수 있는 시대에 지도 한 장 들고 옛길을 찾아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길은 바로 인생이다. 
옛날 길을 걷는 것은 바로 옛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여행인 것이다.

이 두 부부가 장성 갈재를 넘으면서 옛길을 찾다가 헤매는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지리산 산행이 생각났다. ‘두류패’라는 산꾼들과 함께 산행을 할 때, 잘 닦여진 등산로보다 목수들이 나무에 먹줄을 긋듯이 직선으로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직등이다. 등산로 보다 훨씬 힘들게 밤새 헤매다 새벽녘에야 지리산 반야봉 정상에 도착했을 때 산꼭대기에서의 쾌감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한가지 방향을 정하고 목표를 세워 그 일을 끝까지 이루어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옛길을 찾고 걷는 일도 당연히 힘든 일이지만, 그 과정을 꼼꼼하게 메모를 해서 한 권의 책으로 엮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장날 촬영을 다니면서 옛 사람들의 사는 모습의 끄트머리라고 느끼면서 사진 찍는 일에만 몰두를 했지, 일일이 기록으로 남기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옛 길을 가다>는 읽기에 재미가 좀 없다. 영남대로는 모르는 지명이 너무 많아 무척 지루했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그 지역에 얽힌 설화나 전설, 역사 이야기가 있어 쉬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해남대로 중 장성 갈재를 넘어, 정읍에서 송시열 유허비를 보고, 태인 피향정의 고부군수 조병갑 아버지 조규순 송덕비를 둘러보고, 솟튼재를 넘어, <콩쥐팥쥐>의 무대라는 앵곡마을을 지나, 삼례 비비정에 이르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여산면 원수리에서는 가람 이병기 생가가 훤히 보인다. 암행어사 이몽룡이 양재역에서 역졸을 받아 임무를 주었다는 곳이 바로 여기 새술막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 또 그 분들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죽 살아왔고, 사랑스런 우리 아들 딸 들이 살아갈 이 땅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몰라도 정말 한참 모른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운 요즘 자주 외국에 다녀온 분들 중에 일부 어떤 분들은 “우리나라는 어디 갈만한 데가 없다” 고 얘기하는 분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우리 땅을 걸으면서 가슴으로 느껴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 같다. 

해남대로 중 우리지역인 장성 갈재, 즉 노령에서 익산 여산까지 만이라도 걸어보면 좋겠다. 아니면 동학농민군을 따라 옛길을 걸보거나, 서해안 고창 끄트머리에서 군산 금강하구둑까지 해안을 따라 걸어보는 일은 어떨까? 
옛날 장꾼들이 등짐을 지고 장날을 찾아 다녔던 길을 걸어보고 싶은 생각도 불현 듯 든다. 

<퀴즈> 옛날 십리는 정확하게 몇 km일까요?  

이흥재 | 『그리운 장날』 『그리고 구멍가게가 생기기 전에는』장날 사진집 2권을 김용택, 안도현 시인의 글과 함께 만들었으며, ‘경기전’의 아름다움을 사진 영상으로 표현하는데 혼신을 다하고 있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JTV 전주방송에서 「이흥재의 문화유산 산책」을 3년째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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