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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 | 연재 [꿈꾸는 학교 행복한 교실]
음학이 아닌 음악을 위하여
김윤태 교사(2014-02-05 14:59:20)

첼로를 잡은 소년

 

내가 음악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어머니의 권유로 동네 음악학원에서 피아노를 쳤지만 딱히 큰 매력이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좀 더 특별한 악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때 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첼로였다. 피아노보다 소리도 크고 웅장해 더 멋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남들이 쉽게 다루지 않는 악기여서 더 좋았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어른의 몸이 된 나는 또래 친구들의 흔한 고민처럼 인문계와 예능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바람은 앞쪽이었지만 나는 반대였다. 성적이 나쁘거나 학교생활이 불성실한 것도 아니었지만 남들처럼 똑같이 평범하게 사는 게 싫었다.

 

부모님을 설득해 다시 첼로를 잡은 중학교 3학년, 예고에 입성하기 위해 밤낮없이 연습하고 클래식에 푹 빠져 지냈던 그 시간들은 나에게 가장 치열한 시기였다. 입학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때, 하지만 입학은 고난의 시작이었다.

첼로를 다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기초도 부족했고 또래들에 비해 음악적 기량이나 이해도와 깊이가 많이 떨어졌다. 특히 남 앞에서 연주하는 일은 두렵기만 했다. 이 또한 경쟁이란 생각에 답답하고 우울했던 때였다. 하지만 그 때 첼로를 다시 잡지 않았더라면 더 우울한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행복의 나침반을 찾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미래를 비춰보던 고3, 오랫동안 음악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주위 친구들은 좋은 대학을 나와 대학원이나 유학을 가는 것이 첫 목표였고, 그 뒤 실력과 명성을 얻어 유명한 악단이나 교수가 되는 것을 최고 행복이라 했다.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며 모두 똑같은 보폭과 속도로 내달리고 있던 친구들 사이 교사의 꿈을 꿨던 나는 한참 소박한 사람처럼 보였다.

음악은 그렇게 꿈과 현실을, 자존심과 자존감 사이를 한없이 저울질하기도 했지만 “무엇을 하면 더 행복해질 것인가” 라는 물음에 단단한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오래 오래 첼로를 잡고 싶은 애정이 나를 선생님이 되게 한 가장 큰 계기다. 입시에 지쳐 힘든 학생들의 숨통을 음악으로 쉬게 해주고 싶었던 바람도 컸다. 노련하진 않지만 누구보다 학생들의 말과 행동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긴 사회 초년생, 반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들보다 나를 좀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 ‘나이빨’이리라. 교사의 꿈을 갖고 있으면서도 난 음악을 많이 배우고 경험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대학과 대학원 시절에 학업에 충실하려 했고 음악적인 스펙과 경험을 쌓으려 노력했다.

학창시절 열등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버티면서 살았다면 이십대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레고 즐거웠다. 학업과 연주 그리고 교직 공부를 하며 바쁘게 지낸 나날들이 내겐 일종의 회복이 되어주었다. 꿈이 있고 기회가 있다는 게 기뻤다. 그중에서도 가장 뿌듯했던 것은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올라간 것이다. 많은 단체에서 연주할 기회가 생기고 학교나 여러 기관들에서 나를 음악 강사로 불러 줄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경험과 인맥으로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이 활동은 교사생활에 또 다른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다.

 


음악과 가까울수록 음악시간과 멀어져

 

요즘 TV나 방송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나면서 끼 많고 실력 있는 어린 친구들의 음악적인 열정과 성공을 향해 도전 모습을 쉽게 마주한다. 우린 거기에서 휴머니즘이나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스마트폰 보급화로 인해 우린 좀 더 쉽게 음악을 접하고 편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음악과 사람이 서로 밀접해졌다는 이야기도 된다.

하지만 학교 음악교육 상황은 그와 다르다. 입시 스트레스가 심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최대한 음악시간에는 학생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종종 편하게 동네 형처럼 말한다. 음악은 어느 누구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좋은 음악 나쁜 음악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음악을 들었을 때 공감 가고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움직인다면 그게 곧 좋은 음악이라고 말이다.

 

학창시절, 주위 환경이나 감정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기분처럼 교실에서 음악과 친해지려면 수업시간이라도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듣는 일밖엔 없다. 하지만 학생들은 대중가요에만 민감하게 반응할 뿐 교과서에 나오는 클래식이나 가곡, 우리 전통음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학생들 입맛에 맞게만 수업 할 수 없는 것은 영원한 딜레마이기도 하다. 나만의 독창적인 수업연구를 개발해 학생들에게 음악이 ‘음학(音學)’이 아니라 음악(音樂)임을 알려주는 일. 그것이 최근 내가 가진 꿈이다. 첼로를 잡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소중한 버킷리스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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