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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우정과 우정 사이
<굿바이 마이 프렌드>
송경원 영화평론가(2014-02-05 15:00:41)

네 옆에 있을 거야

 

최근 개봉 영화 중에 유독 가슴을 울린 건 제프 니콜슨 감독의 <머드>였다.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는 이 영화의 뼈대에는 이제 막 사랑에 눈 뜨기 시작한 14살의 두 소년, 앨리스와 넥본이 있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건 도망자 ‘머드’를 만난 소년 앨리스는 점차 그에게 감화되고 어른으로 성장한다. 영화의 중심에 있는 건 아니지만 보는 내내 눈에 밟힌 건 앨리스와 그의 친구 넥본이 관계였다. 소년이 사랑을 깨닫고 어른이 되어갈 때, 그 이전까지 인생의 전부였던 우정은 어떻게 되는 걸까. 다른 형태로 바뀌는 걸까,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걸까. 단순하고, 바보 같지만, 누구나 한번쯤 해봤음 직한 질문. 미시시피 강을 배경으로 하는 <머드>를 보는 내내 피터 호른 감독의 1996년 작 <굿바이 마이 프렌드>가 뇌리를 맴돈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소년들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중이다. 늦은 밤 불편한 침낭 속에서 뒤척이며 깨어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덱스터(조셉 마첼로)의 식은땀을 닦아주며 에릭(브래드 렌프로)은 묻는다. 무슨 꿈이 그렇게 무서운 거냐고. 에릭은 병과 여행으로 쇠약해진 몸을 고양이처럼 움츠리며 말한다. “우주는 180억광년에 걸쳐 있대. 굉장히 춥고 굉장히 어둡겠지. 가끔 잠에서 깨어나서 깜깜하면 너무 무서워. 그곳에 혼자 남겨져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움에 잠긴 덱스터의 얼굴을 보며 에릭은 자신의 신발을 벗어 에릭의 품에 안겨 준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왜 내가 이 냄새나는 에릭의 신발을 들고 있지?’ 하고 생각해봐. 나는 바로 옆에 니 옆에 있을 거야.

  

 

낡은 신발로 걷는 법

 

<굿바이, 마이 프렌드>는 에이즈에 걸린 소년 덱스터와 이웃집 소년 에릭의 순수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책상 밑으로 보이는 에릭의 낡은 운동화로부터 출발한다. 소년은 처음부터 걷는다. 학교 문을 나서는 수많은 학생들의 발걸음 속에서도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에릭의 낡은 신발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다. 이 낡은 신발은 어딘가 피곤해보이지만 그 와중에도 언뜻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 같은 강인함도 함께 엿보인다. 우리는 흔히 길을 걷는 것을 인생에 비유하곤 하는데, 삶을 살아가는 것과 두 발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닮아있다. 자신의 두 다리를 성실하게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과 끊임없는 관계를 맺으며 변화를 거듭한다. 길을 혹은 인생을 걷다보면 각양각색의 만남 속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관계’의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주저앉지 않고 기어코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덱스터의 장례식장을 찾아간 에릭은 평온하게 관 속에 누워있는 덱스터의 가슴에 자신의 신발 한 짝을 안겨주고 덱스터의 신발 한 짝을 품에 안고 나온다. 신발 한 짝만을 신은 채 쩔뚝거리는 모습으로 장례식장을 나서는 에릭의 뒷모습이 더 이상 슬퍼 보이지 않는 것은 그가 이제 진정 삶을 걷는 법을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견고한 우정, 영원을 향하여

 

누군가와의 관계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상대와의 거리는 교실 안 책상사이의 거리도 아니고 저녁식사 시간 식탁 사이의 떨어져 있는 정도도 아니다. 그것은 관계함으로써 영혼의 반쪽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상대와의 벽을 쌓음으로써 전혀 이해할 수 없기도 한 마음의 문제다. 에이즈 환자인 덱스터의 공포가 유독 어둡고 추운 곳에 홀로 있는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은 에이즈라는 병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덱스터의 외로움에 대한 솔직담백한 형상화이다. 에릭이 이 높고 두터운 불신의 벽을 뚫고 덱스터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두 집 사이에 놓인 담벼락의 높이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되고 두 사람은 순수의 세계로 함께 돌입한다. 아무 풀이나 약초라며 덱스터에게 끓여 먹이는 에릭의 무모한 행동을 미워할 수 없는 까닭은 에이즈에 걸릴 수 있다는 생각조차하지 않고 덱스터와 함께 같은 아이스크림을 퍼 먹으려고 하는 그 두려움 없는 순수함에 있다. 두 사람의 순수한 연결은 이렇게 맹목적이기 때문에 그만큼 견고하다. 에릭이 덱스터의 신발을 품고 있는 한 180억 광년의 거리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에릭이 에이즈를 옮을까 걱정하는 에릭의 어머니나 둘을 호모라고 놀리는 학교 친구들처럼 주변의 높은 불신과 편견 앞에 두 사람은 종종 떨어져야만 한다. 이런 두 사람의 온전한 연결은 함께 고무보트를 타고 유유히 흘러가는 넓은 강 위에서라야 비로소 허락된다. 이 영화에서 강은 해방이자 순수함의 공간이자 여행을 안내해주는 넉넉한 친구이다. 매끈하게 다듬어지고 다리가 놓인 인공적인 모습이 아니라, 수풀이 우거진 자연의 그대로의 모습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은 그 풍광만으로도 자유롭고 아직 침범 받지 않은 그 순수함에 마음이 넉넉해진다. 적어도 강 위에서 여행을 하는 동안은 어떤 편견도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하지 않는다.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에릭이 장례식장에서 가져온 덱스터의 신발을 강물에 띄워 보내는 순간 둘의 만남은 헤어짐이 아니라 영원으로 확장된다. 에릭은 강물에 조용히 흘러가는 덱스터의 신발을 바라보며 만남의 의미와 떠나보내는 법을 배우고, 덱스터는 드디어 아무도 없는 춥고 깜깜한 곳에서 홀로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부디, 잘가 내 친구야

 

영화 제목은 때로 한 편의 영화를 완성 시켜주기도 하고 짧은 몇 마디의 단어로 영화를 온전히 드러내기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굿바이, 마이 프렌드>란 제목은 실로 이 영화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있다. 원제인 보다 이 번안제목이 더욱 깊은 울림을 갖는 것은 흐르는 강물에 떠내려가던 덱스터의 신발을 바라보는 에릭의 마지막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 한 장의 그림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인상적인 제목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그 화면 속에 ‘잘 가, 내 친구야’라는 에릭의 목소리를 덧씌운다. 여기에 에릭 역을 연기했던 배우 브래드 렌프로가 얼마 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 제목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영화가 끝난 후 그의 목소리 혹은 그를 향한 우리의 목소리는 그렇게 흐르는 강물 위에서 다시금 자유로울 수 있다. 이 순수의 회복에 다시 한 번 감사하며, “굿바이, 마이 프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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