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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 | 연재
[신귀백영화엿보기] 품성이 곧 능력인, 초능력자
관리자(2011-01-06 14:35:06)

품성이 곧 능력인, 초능력자 기본 패 장인의 손길보다는 상인의 정성이 깃든, 팔 게 많은 영화다. 


철저한 장르영화 스토리에다 초능력이라는 소재(素材)는 애들 영화 아닌가. 아니, 캐스팅에서 초절정 꽃미남두 분 강동원과 고수로 먹고 들어가니 아가씨를 위한 영화다. 두 배우의 얼굴과 복근을 붙드는 섬세한 클로즈업을 기대하고 표를 사는 여성 팬들만 해도 기본 이백만 명은 될 터.티케팅 파워가 있는 배우에다 신인감독 김민석은 김지운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봉준호 감독의 <괴물> 연출부 출신의 데뷔작이라는 것 역시 측면 조명이 되어뉴스를 탔다. 

이런 여러 가지 브랜드에다 크리스마스와 방학전 시간대에 할리우드 대작이 없다는 것까지 흥행의 기본 패를 갖춘 영화다.사실 스토리가 약하다. 그러니 캐릭터가 이야기를 밀고가야 한다. 확실한 셀링 포인트인 강동원과 고수가 분한 선과 악의 투톱 캐릭터 설정은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분법적 캐릭터의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조연으로 변희봉과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 배우라는 안전장치까지 마련했으니 나쁘지만 않으면 먹힐 영화다. 

쌍꺼풀 없이 가녀린 선을 가진신인 여배우 정은채는 변희봉의 딸로 나오는데 낯선 얼굴이어서 두 남자에게 집중할 수 있게 부드럽게 어시스트를 한다.이제 두 초능력자의 플레이를 살펴보자. 투톱 플레이어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는 남자(강동원)가 있다. 이 청년은 못된 부모에게 구타당하던 장애를 가진 소년이었는데, 어느 순간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염력으로 다른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그는 얼마의 돈을 훔쳐 호텔생활을 하는 소심한초인으로 살아간다. 피규어를 가지고 노는(소년에서 성장이멈추어버린) 초인에게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불러줄 이름이 없고 불러 줄 사람이 없다. 적당한 기럭지에 큰 눈, 유려한 콧날, 뽀얀 피부를 가진 이 초능력자는 아쿠아리움의정어리떼까지 제 맘대로 움직이게 하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의족과 서클렌즈를 한 그의 등은 몸피가 너무 얇게 느껴진다.초인에 맞서는 선남은 검사나 국정원 출신 아저씨가 아니다. 

임규남(고수)은 겨우 중학교를 졸업했고 공고를 다니다만 가방끈 짧은 청년. 이 착한 남자는 폐차장에서 만난 터키인 알과 아프리카에서 온 버바를‘형제’라고 부르는데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다. 터키 출신 알은 매우 지혜로운 데다 한국말을 한국 사람보다 더 잘한다. 말과 행동이 워낙 자연스러우니,‘ 너희들 이래도 이들에게차별할래?’하는메시지가느껴질 정도다.

폐차장에서 몸을 다쳤지만 사람들 속에 섞이고픈 그는 지하셋방에서 벼룩신문 광고에 밑줄쳐가며 전화를 한다. 임규남이 찾아간 곳은 서울의 뒷골목 시장통 허름한 아파트 상가. 그가 일하게 될 직장은‘유토피아’인데, 알고 보니 조금으스스한 전당포다. 허술한 면접 끝에 사장(변희봉)은 그를 임대리라 명하고, 그는 명함을 보고 즐거워하는데. 그는 이제 정의를 대신하는 대리(代理)자가 되는 것. 취직한 지 얼마안 돼 백인 알과 검은 피부의 버바가 임대리 사무실로 밥 때찾아온다. 그리고 전당포 사장님은 이들과 웃으며 밥을 나누는데, 착한 설정에 관객은 기분이 좋아진다.

여기 유토피아에 인형같이 잘생긴 초능력자가 나타난다.시간을 정지하게 하고 그리고 그들을 염력으로 정지시킨 사이 돈을 훔치기 위해. 그러나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사람이 있으니, 임대리다. 초인은 이 촌놈 때문에 그의 의도가 실패하자 무고한 시민들을 희생시킨다.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서. 여기 공권력이 잠깐 등장하는데, 거울보고 빗질하는 순한 남자경찰과 뚱뚱한 여경찰 그리고 동네아저씨타입의 파출소장 같은 멤버로서는 초능력자를 단죄할 수 없다. 학벌이나 후광은 없지만 우직한 뚝심과 긍정의 마인드라는 능력을 타고난 임규남이 악당을 맡아준다.

사실 초능력 이야기는 지구를 구하거나 악당으로부터 시민을 위험에서‘어떻게’지켜내는가가 관건이다. 그리고 관객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속이느냐에 달려있을 것. 그래서 미국의 재벌 초인 스타크는 아이언맨 슈트를 입고, 배트맨은배트포트를 타지만 우리의 초인은 그저 맨주먹에 빵차 다마스를 타고 초능력자를 뒤쫓는다. 여기 그와 함께 정의를 지키는 어시스턴스가 외국인 노동자들인데. 이들은‘우리 같은놈들’이란 말을 던지며 초인을 쫓는 총사가 되는데 그들에겐멋진 칼도 없고 수당도 없다.패배가 빤할진대 생면부지의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극단의 상황으로 몰리는 것에 임대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초능력자의 특별한 약점을 찾거나 연구하지 않고 그저 타고난 마인드로 대책 없이 밀어붙인다. 

임대리는 차에 치이고 총에맞고 구르고 피흘리며 온몸을 던져 악을 제압하는데. 그에게이름 없는 초능력자 아니 괴물은 쫓고 쫓기는 옥상 신 끝에“도대체 넌 누구냐?”고 묻는다. 그는 원빈 같이 아저씨라고말하지는 않고, 그저 유토피아의 임대리라고 말한다. 우리의평범한 이웃이란 말씀이다. 미덕과 약점 사실 폐차장에서 행해지는 최후의 만찬식 화면은생뚱맞다. 하지만 앙각이나 부감숏으로 잡은 투명한 유리창장면과 평각 아닌 카메라를 기울여 사다리꼴을 만드는 화면은 초능력자의 비틀린 심사를 잘 표현한다. 푸르스름한 옥상바닥의 방수 페인트 색깔과 태풍 오기 전의 하늘 그리고 강동원의 옅은 하늘색 슈트까지 옅고 푸른 색깔들이 만들어내는 구도와 뛰어난 색채감각의 미장센은 총체적 안정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의 옷 안에 감춰진 식스팩 복근을 말하지않는다(여성 관객들 속상하게시리…). 다행이다.슬로우 모션에 이어 정지된 화면이 만드는 좀비영화의 분위기는 한국영화에서는 처음이다. 이어지는 자동차끼리 부딪치는 부지런한 액션 뒤 초능력을 지닌 악당은 결국 유순과단순한 용기로 무장한 선인에 의해 제압되고 만다. 여기 이야기의 진행상 특별히 반전이랄 게 없다. 종결 역시 허무하다(결론은 착한 엔딩이니 영화를 보시면 알 것). 그래도 한국에서 판타지 액션영화가 된다는 것이 소박한 미덕일 것.

한국은 법학보다는 사회학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나라라는 말이 있다. 한국사람들이 역사적 실화나 유괴와 살인 등구체적 사건과 상황을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사회학적지점일 것. 그들이 겪어온 역사적 흐름 자체가 너무 판타지였기에. 몸에 불을 붙이며 독재에 저항하고 멀쩡한 교각이무너지고 백화점이 붕괴되는 걸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일것이다. 정말 빠른 시간에 집을 짓는 정도가 아니라 신도시를 뚝딱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니까. 

오로지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한국사회가 갖는 역사적 야비함이 많은 문화 풍토에서는 찌질한 남자들의 열전(列傳)이나복수극이 선호대상이라는 말씀. 그러나 여기 서울의 선인은원한(전당포 사장님의 죽음이 있긴 하지만) 때문에 복수를하는 사람이 아니다.아자자작! 좀비영화처럼 지하철의모든 승객이 얼음땡이 되고 상가의 모든 이가 등을 뒤로 한채 멈춘다. 용렬한 초능력자 때문에. 구겨진 수표는 수표의기능을 다하지만, 구겨진 인품의 초능력자는 그냥 범죄자일뿐이다. 여기 메인캐릭터의 매력이 반감된다. 당연히 종결역시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고 만다. 흥행의 기본 상용구는 다장착한 영화지만 평단의 평점이 낮은 이유가 여기 있을 터.

허무주의자 배트맨의 과묵은 매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유머 없는 우리의 초인은 특이한 버릇이나 음악의 취향 등을보여주지 못한다. 시간을 정지시키는 점 딱 거기까지다. 하여 매력있는 인물이 되어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홀릭 지점이없다. 동정할 만한, 그럴 수밖에 없는 비극과 운명이 지시하는 가치 있는 행동으로 하여 그를 연민하고 보살피고 싶게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안 먹힌다는 말씀. 무대와 주인공만이 한국이고 어쩐지 일본만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한발 한발 한국영화 초능력 판타지에서 개연성을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 총알이 곡선으로 돌고 괴성으로 유리창을 박살내는 <원티드>같은 만화적 감수성(사실, 그 재민데)에 한국인(나이드신)들은 너그럽지 못하다. 당연히 한국영화 속 판타지적히어로가 드물다. 구체적 이름과 직함을 갖춘‘강철중’정도가 히어로가 되는 선수층이 너무 얇은 것이 한국의 영화판이다.영화판의 히어로는 소수지만, 현실 속에서는 가끔 초능력자가 있다. 보온병을 포탄으로 만드는 이가 있고 아부지 때문에 몇 년 사이 전무도 되고 금방 사장도 되는 초능력자들말이다. 태생부터 3루에 진출해 번트만 대도 들어오는 놈들이 적지 않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어시스트만 잘 해도 영웅이고 부지런히 뛰면 산소탱크라 하지 않던가. 호날두, 카카,메시 등 이런 외계에서 온 초능력자 속에서 박지성은 빠른패스를 던지고 죽어라 뛰고 넘어져서 파울을 유도해 페널티킥을 만들어낼 때 노랑머리 사람들도 박수를 보낸다. 추신수는 또 어떻고? 용기도 용기지만 신중과 절제가 몸에 밴 사람들이리라. 여기서 조영래, 황인철, 제정구 또 전태일 같은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초능력자>, 한 발 나아간 영화다. 

판타지 그리고 따뜻함으로 말이다. 낙천적 사회적응자로서 외국인들을 껴안는 설정은 주인공의 인간관계 고민을 한방에 해결하려는 감독의작전일 것. 품성이 곧 능력이라는 감독의 마인드에 박수를보내고 싶다. 전당포 사장님은 좋은 사람이고 외국인 노동자들 역시 정의롭다. 브루스 윌리스처럼 초인적 액션이나 농담없이 피칠갑 상황에서 피를 닦는 영화다. 떨어져 죽고 총 맞아 죽는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임대리의 고군분투는 보는 이를 따뜻하게 만든다. 

그러나 남을 돕는데 주저하지 않는 품성남 임대리이고 싶을 정도의 합일감까지 생기지는 않지만,이 오지랖 넓은 남자로 하여 <초능력자>는 훈훈한 영화로가는 길목에 서 있다.한국영화는 독한 영화와 독한 사람들이 주류를 차지했었다. 특히 2010년이 그랬다. 이 와중에 전반부의 따뜻함과 후반부의 진심어린 무대책이 볼만한 <초능력자>는 착한 시민들이 등장하는 착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와 <집으로>또 <웰컴 투 동막골>에서 최근작 <방가? 방가!>같은 관용과유순한 영화의 계보에 어깨를 슬쩍 들이민다. 엉뚱하기로는<지구를 지켜라> 같은 영화에서부터 시작해 미군이 버린 약품 때문에 한강에 <괴물>이 존재하는 이야기로 발전하면서한국영화는 조금씩 나아간다. <매트릭스>가 이룩한 경지에는 아직 멀지만 이렇게 한발 두 발 나아가다 보면 앞으로 괜찮은 좀비 영화에 따뜻한 우주 SF영화도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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