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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3 | 연재
신귀백영화엿보기 - <비밀과 거짓말> 1996
관리자(2011-03-04 18:31:21)

신귀백영화엿보기 - <비밀과 거짓말> 1996 


오래된 상처, 성긴 봉합 나오는 사람들 묘지석 위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장례식이 거행되는데 카메라는 젊은 흑인여성을 불러낸다. 클로즈업된 우는 여인은아름답고 지적으로 생겼다. 찬송가 소리가 멎고 카메라는 갑자기 점프해서 웨딩드레스 입은 백인 신부를 비춘 다음, 신부를 촬영하는 사진사로 일하던 남자의 집으로 들어간다.장례식이 가족관계를 확인하는 대사(大事)라면 영화 속 인서트 장면으로 활용되는 사진은 대개 소사를 이야기한다.


사진사 털보 모리스는 중산층이 분명한 거실 액자 속 어린 소녀를 가리키며 아리따운 아내에게 이제 성년이 되었을 조카록산느가 보고 싶다고, 한 번 누나를 찾아가고 싶다고 말한다.다시 점프, 거리에서 청소하는 여성을 훑던 카메라는 공장에서 골판지 작업을 하는 나이 많은 여성을 비추는데 이런거친 점프를 이어주는 것은 애잔한 음악이다. 같은 음악을다른 화면에 이어 붙여 가족관계를 설명하는 방법이 계속 되는데, 텔레비전 드라마 찍듯, 인물들의 윤곽을 잡아가다가이야기를 이어붙이는 방식이다.여기 누추한 하층민 가정에 침입한 카메라는 두 여성의 전투를 보여준다.


긴장미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신시아(블렌다 블레딘)는 끝없는 잔소리로 청소부 딸에게, “네게 필요한건 남자지만, 조심하라”는 말을 달고 산다. 엄마의 집착에 대해 선머슴 같은 처녀애는 담배를 꼬나물고, “낳아달라고 한적 없다. 재미 보기 전에 생각했어야지”라는 말을 속사로 던지는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웬수 록산느는 과장과 위악적제스처가 무기요, 열등감이 연료인 불안한 청춘이다. 두 번째 호명(呼名) 희곡집에서‘나오는 사람들’소개하듯 호명(呼名)하면서한 바퀴 돌고나서 화면은 다시 흑인여성 호텐스 캄파비치(마리안느 장- 밥티스트)에 집중한다.


스토리가 있을 눈빛을 가진 그녀의 직업은 안경점에서 눈을 들여다보는 검안사다. 글쎄, 비밀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녀는 양부모의 죽음 이후친어머니를 찾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그냥’한 번 보고 싶을 뿐이다. 생모를 찾기 위해 인구조사국과입양기관을 방문하여 생모가 누군가를 알아내면서 그녀는놀라운 비밀에 직면하는데. 자신이 입양된 아이란 것은 진즉알았지만 어머니가 백인이라는 충격적 사실에 혼란스러워한다.털보 사진사의 거실 사진 속 소녀였던 록산느는 이제 21살이다.


록산느는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데다 공장노동자로 사는 엄마 신시아가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겨우 월세나때우는 수준에 가방끈마저 짧으니 자신은 거리의 청소부로살아야 한다. 이런 딸이 보는 엄마의 삶은 청승맞고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데 아직도 각선미를 자랑하며 젊음을 그리워하는 푼수다. 한편, 속절없이 늙어가는 신시아가 자신의 삶을 희생시켜가면서 키운 남동생은 전화 한 번 없고 아비 없이 키운 딸내미는 어떤 놈과 사귀는데 자신의 전철을 밟지않을까 불안하기만 하다.


다시 사진관. 복서와 어린 아이, 강아지와 고양이, 외국인노동자와 발레 하는 아이 그리고 가족사진 등을 통해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붙드는 모리스의 직업을 보여주는데. 피사체와 감정적 유대를 즐기는 사진사의 아내는 외국사람인지 발음도 서툴고 웃지 않는 신경질적인 사람이지만 뚱땡이 사진사는 따뜻한 남자. 그는 마음속에 벼르던 누나를 방문해 록산느의 생일에 자신의 집에서 파티를 하자고 누나를 초청한다.파티 참석으로도 골머리가 아픈데 갑자기 어떤 젊은 여인이 전화를 해서 자신의 비밀스런 과거를 묻는다. 세상에! 


열여섯에 얼굴도 보지 못하고 버린 그 애가 날 찾다니…. 혼란에 빠진 그녀는 외출을 감행한다.엄마의 인생은 우들투들한 잣대 같은 삶이니 록산느는 항상 엄마를 무시한다. 그런데 딸의 섹스와 피임에 대해 걱정하던 한심한 엄마가 달라졌다. 깨끗한 옷을 입고 외출하기시작한 것. 도대체 엄마는 어떤 놈팽이와 사귀고 있을까 궁금해 하는 록산느에 비해 호텐스는 비밀을 캐려는 자세나 원망의 자세가 아니다. “우리가 부모를 선택한 거야. 이승에서무언가를 배워서 다음 생에 잘하기 위해서”라는 어른스러운생각을 가진 성숙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진실 파티 호텐스와 신시아의 첫 만남은 기차 역 앞에서 이루어진다.기다리는 흑과 백을 먼발치로 잡는 화면 속 인물 앞으로 쉴새 없이 자동차가 지나간다. 감정의 불연속성을 이야기하는괜찮은 방법인데, 영화 후반 버스정류장에서 감정이 정리가안 된 식구들을 캐치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검은 피부의딸 호텐스는 차분하고 진지한 반면, 신시아는 흥분과 충격으로‘엄마’라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27년 전 포기한 내 새끼가 남들이 말하는‘엄친딸’이었다니….일기를 쓸 수 없는 여자, 비밀로 가득 찬 삶을 살아온 엄마는 청소부 딸이 주워오는 냉동 닭과 같은 삶을 살았었다. 그러나 신시아와 호텐스가 카페에서 대화하는 롱테이크 장면은 평화다. 열등감 없이 잘 큰 딸은 정서에 대한 컨트롤이 뛰어난 여자. 말이 통하는 딸을 만난 건 행운이다. 오랫동안 권태와 고독이 삶의 전부였던 신시아는 이내 그 충격이 가시고호텐스로부터 따뜻함과 모정을 느끼게 된다. 역시 엄마는 딸의 피임에 대해 묻는데 호텐스는 콘돔을 사용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같은 질문에 돌아오는답변에 따라 그 마음밭이 달라지는데, 사실 이것은 신시아의불행한 삶에 대한 반추라는 것을 후반부에서 알 수 있다.감독은 두 바퀴를 돌며 각개전투하던 등장인물들을 록산느의 생일 파티를 이유로 한 곳에 집합시킨다. 야채를 싫어하는 데다 건들거리는 게 엘비스 닮은 록산느의 남자친구에반해 신시아가 파티에 친구라고 데려온 젊은 흑인 여성은 세련된 매너를 보여주는데. 이래저래 서로 덕담을 주고받던 신시아는 술에 취한 채 비밀을 폭로한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화목한 척 해서 평화를 유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시아는 자신이‘잡년’이었다고 커밍아웃하는 것.진실파티다. 


신시아는 그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면서 스타일대로 일단 저지르고 본다. 자신은 15살에 임신해서 아이를보지도 못하고 입양해 버렸고 그 아이가 바로 저 흑인 처녀란다. 감독은 요약한 연대기로서 플레시백이나 내래이션 없이 직설적으로 터뜨리는 것. 아이는 6주 모자라게 태어났고,계산도 서툰 15세 소녀의 임신으로부터 27년을 건너뛰는데여기엔 신시아의 입으로도 설명하지 않는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관객들이 찾아야 할 몫이다. 성긴 봉합 감독 마이크 리는 복잡한 실타래를 하나하나 푸는 게 아니라 일도양단, 거두절미하면서 폭발시켜버린다(그러나 관객들은 이미 그 비밀을 알기에 폭발력은 이미 감쇄된 상태다).이야기에도 공짜는 없으니 까탈스럽고 이기적인 성품으로살아가는 모리스의 아내도 비밀 하나를 털어놓는데, 자신은아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을 못한다는 사실에 시누이와의 갈등도 해소되는 계기가 된다.‘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듣게 된 딸은 엄마를 껴안고 운다. 다시 애잔한 음악이 흐르고 반항녀 록산느는 기막힌 과거사에 울고 저항하다가 이내 제자리를 찾는데, 신파스럽다.


상류층 동생과 하류층 누나, 흑인 검안사와 백인 청소부, 노와 소 모두 해피엔딩이니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털보 사진사가 “마침내 말했군! 세상이 두 쪽 나지도 않네. 비밀과 거짓말들!”이라고 말한다. 사실‘비밀과 거짓말’이란제목 자체가 사실 감독의 의도를 쉽게 드러내는 선택인데다막판에 너무 친절하게 주제를 대화를 처리하는 우를 범한다.피부색이 다른 것처럼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두 딸과 햇볕드는 작은 뒷마당에서 차를 마시면서 신시아는“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래 이게 바로 사는 거야”라고말한다. 아니, 비밀을 털어놓는다고 갑자기 그리 유쾌한 삶이 되나? 과격과 분노로 치닫던 록산느의 자아의 용해나 유순은 아무래도 생뚱맞다. 엄마의 비밀과 진실을 알았다고 해서 그리 쉽게 달라질 수 있나? 섬세한 딸과 거친 딸이 가진상처 봉합의 디테일도 없이 말이다. 차라리 대사 없이 불안스레 차만 마셔도 좋았을 텐데…. 찾아 올 권태는 또 어쩌려고? 


영국과 한국의 가족 1996년 영국의 마이크 리 감독에게 칸느영화제 그랑프리를 안긴 <비밀과 거짓말>은 예술영화라기엔 쉽고 상업영화라 하기엔 재미가 없어 장사가 안 될 어정쩡한 지점에 자리하는 홈드라마다. 유머 있는 인물은 한 사람도 없는 데다 흑과 백이나 직업에 따른 편견 없는 관대한 미덕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관심이 타인의 신음에 귀를 기울일 정도는 아닌 듯한데. 이것은 분방한 젊음을 보낸 한 여인의 커밍아웃과 뉘우침의 송가이기도 하지만 유럽의 정치적 지형도를 생각나게 한다.동구가 붕괴된 후, 유럽 공동체(EC) 회원국들은 1991년12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유럽 통합에 관한 조약을체결한다. 각기 다른 인종과 정치체제 또 경제적 수준이 다른 나라들이 한 나라로 묶인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지만미국의 팽창은 결국 EU를 낳는다. 그 후 유로화라는 단일통화를 가진 유럽연합은 순항하며 회원국 수를 늘려가지만, 아직 좌측통행에 대한 합의나 100V 220V의 사용 등 삶의 디테일에서 통합이 안 된 구석은 많다. 정치적 함의로서 프랑스와 독일이 비밀을 털어놓고 화해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거짓을 버리고 우호적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영화 속 안락한 사진관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등 곁 벽에서 있는 남자는 보는 이를 불안하게 한다. 


이 남자는 가게에들어와 모리스가 찍은 사진을 보며“뭐 하는 거야? 스타일을다 잃었잖아.”라며 털보의 아픈 곳을 찌른다. 먹고 사느라프레임 속에 갇힌 사람들만 찍느라 자신을 소비시켜 살이 쪄버린 남자는 경제가 최고인 대처시대의 영국을 상징한다면,이에 반해 사진관을 팔고 예술과 자유를 좇아 호주로 간 알콜중독자는 과거에 집착하면서 새로운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구 사람들에 대한 은유는 아닐는지?거칠게 살아온 우리 역사에도 비밀이 있고 거짓말이 있을것이다. 영화 속 유럽의 가정 상황이 지극히 개인적 비밀과실수에 비해 지속되는 상황이라면 임권택의 <길소뜸>은 역사적 상황인 6.25전쟁 속(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이별이모티브다. 영화 속 어미 김지미는 신성일과 함께 아들을 찾는다. 그러나 아들은 같은 한국말을 쓰지만 물질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저 아래에 자리한 개장수 아니던가? 같은 위도에살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절망감에 그들 부부는 돌아선다.성실성 있게 가족으로서 의무를 다할 자신이 없음은 말할 것없고 존재와 관계 모든 것을 포기하며 돌아서던 김지미가 영국여성 신시아보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성긴 봉합을유지하기보다 팍 썰어버리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왜?진실 파티가 있다 해서 가족의 평화가 꼭 보장되는 법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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