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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 | 연재 [클래식 뒷담화]
‘제9번 교향곡’의 저주
문윤걸 예원예술대학교 교수(2012-01-05 14:05:26)

교향곡은 서양음악에 있어 가장 완성된 음악적 양식으로 서양음악의 꽃과 같습니다. 음악사전에서는 교향곡(symphony)이란 3~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관현악을 위한 악곡 형식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교향곡의 역사는처음에는 오페라를 보러 관객들에게 이제 오페라를 시작하려고 하니 자리 정돈하고 무대에 집중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바람잡이 같은 역할을 하면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오페라 서곡인데 교향곡은 오페라 서곡이 조금씩 확장되고 발전해가면서 오페라로부터 독립되어 하나의 음악양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탄생되었습니다. 그런 교향곡이 서양음악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있었던 것은 음악이 가사, 언어의 도움 없이 악기소리의 화합만으로도 숭고한 인간정신과 아름다움을 표현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기 때문입니다. 음악사가들은 이를 증명한 대표적인 음악가를 베토벤이라고 말합니다. 베토벤이 9개의 교향곡을 통해서 음악이 어떻게 인간정신을 구현해 내는 가를 몸소 보여준 덕에 교향곡이 음악의 지존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베토벤을 음악의 성인이라고 부르는가 봅니다. 하지만 교향곡의 아버지는 하이든입니다. 그것은 하이든이 36 동안 알려진 것만도 무려 108개나 되는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교향곡이라는 음악적 양식의 틀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하이든을 뒤를 이어 모차르트는 24 동안 56개의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교향곡의 음악적 형식을 완성해 냈지요.


이러한 교향곡에 무서운 저주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바로 9 교향곡에는 죽음의 저주가 서려 있다는 것입니다. 교향곡을 서양음악의 지존으로 만들어낸 베토벤은 이름도 유명한 9 교향곡합창 작곡한 10 교향곡의 스케치 작업을 하다 갑자기 미스테리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음악사가들은 폐렴에 걸려 사망했다고도 하고, 전염병 때문이라고도 하고, 심지어는 자살했다고도 하는 죽음의 이유를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10 교향곡은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다가 1983 스코틀랜드의 음악 이론가인 배리 쿠퍼(Barry Cooper) 베를린 국립 프러시아 문화재단 도서관에서 미완성인 상태로 1악장을 발견하였습니다. 5년간의 보정작업을 거쳐 마침내 1악장을 복원해 내었고 1988 영국의 로얄 리버풀 필하모닉이 런던에서 처음으로 연주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에 연주되었습니다( 베토벤의 10 교향곡을 모티브로 ‘10 교향곡이라는 소설이 잠깐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베토벤의 뒤를 이어 위대한 작곡가인 슈베르트 역시 9 교향곡인그레이트 작곡한 10 교향곡을 작곡하던 너무도 젊은 31살의 나이로 갑자기 요절하고 맙니다. 슈베르트의 죽음 역시 여러 가지 설이 있을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유명한 미완성 교향곡이 8 교향곡이라 8번을 마지막 교향곡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슈베르트는 모두 미완성된 습작 형태의 교향곡이 무려 5편이나 된답니다. 이것이 모두 완성되었다면 슈베르트는 13개의 교향곡을 남겼을텐데요. 아쉽네요.


후로도 9 교향곡의 저주는 계속됩니다. 신고전주의 작곡가로서 베토벤과 유일하게 견줄만한 교향곡 작곡가로 평가받던 안톤 브루크너 역시 10번째 교향곡을 작곡하던 사망하고 맙니다. 브루크너는 작품명으로는 9 교향곡을 작곡하던 사망하여 9 교향곡의 저주와는 상관없는 보이지만 브루크너가 젊은 시절 번호를 붙이지 않은 번째 교향곡이 있었습니다. 번째 교향곡이 0 교향곡이니까 8 교향곡이 실제로는 9번째 교향곡이 되는 셈이지요. 결국 브루크너 역시 9개의 교향곡을 완성한 10 교향곡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저주는 드보르작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신세계 교향곡이 바로 드보르작의 9 교향곡입니다. 드보르작 역시 교향곡을 끝으로 사망하였습니다.이처럼 음악의 대가들이 9 교향곡을 작곡한 잇달아 사망하자 이에 공포심을 느낀 음악가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후기 낭만주의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구스타프 말러입니다. 그는 어릴 동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평생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8 교향곡인천인 교향곡 작곡한 새로운 교향곡의 작곡을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창작 욕구를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9번째 교향곡을 작곡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오자 가지 꾀를 생각해냈답니다. 새로 작곡한 9번째 교향곡을 9 교향곡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고 대신대지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여 발표함으로써 피해가려 것입니다. 죽음을 피해가려는 그의 바람대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성공한 보였습니다. 이에 용기를 말러는 마침내 10번째 교향곡을 작곡해냈습니다. 그리고 아내인 알마에게원래 대지의 노래가 9번째 교향곡이었으니 이번에 새로작곡한 작품은 10 교향곡이 되는 셈이야. 이제 9 교향곡의 저주는 풀렸어라고 말하며 안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10번째 교향곡의 표지에 9 교향곡이라고 썼습니다(사실 10번째 교향곡은 성악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기악곡이어서 다른 표제를 붙이기가 마땅치 않아 9 교향곡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11번째인 10 교향곡의 작곡에 착수합니다. 하지만 말러는 1년도 못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10 교향곡은 미완성으로 남고 맙니다. 더구나 말러는 죽기 전에 9 교향곡의 연주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말러 역시 9 교향곡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던 것입니다.20 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며 우리에게는 fantasia on green sleeves 푸른 옷소매 환상곡으로 유명한 윌리엄스 역시 86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모두 9개의 교향곡을 남깁니다. 그는 9 교향곡을 발표한 이후 드라마틱한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니지만 대신 후배 음악가들로부터쇠똥 냄새나는 클래식 음악가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체제하에서 고난을 겪은 쇼스타코비치의 경우 무려 15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여 9 교향곡의 저주를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도 9 교향곡을 발표한 이후 고난을 겪습니다.1948 발표한 9 교향곡 때문에 당시 소련의 지배자인 스탈린으로부터 반사회주의 예술가라는 혹독한 비판과 탄압을 받고 숙청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때문에 그는 1953 스탈린이 사망할 때까지 한편의 교향곡도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인간사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없는 신비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9 교향곡의 저주는 클래식 음악계의 대표적인 미스테리입니다. 이를 해명하려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닿는 것은교향곡 작품을 창작하는 음악가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 붇기 때문이다라는 견해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음악이 인류가 영원히 간직할만한 고전으로 남는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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