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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 | 연재 [꿈꾸는 학교 행복한 교실]
내 사랑 기남이
송창우 이리중학교 교사(2012-02-06 14:00:42)

기남이는 수업시간에 읽는 것도 어눌한 아이였다. 그런 기남이와 내가 일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하다 매일 같이 시를 읽기로 했다. 부진아교육 특별보충수업은 연중 20시간이었고 기간에 내가 기남이를 위해 있는 일은 국어책이나 제대로 읽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호흡이 너무긴 문장을 제대로 소화할 없을까봐 짤막한 시를 읽기로 했다. 박성우의 빨강시집을 읽으면서청소년 청소하는 사람을 말하냐고 묻는다. ‘톱밥쌀밥처럼 먹을 수있는 거냐고 묻는다. 쌀쌀한 교실에서 기남이의 물음은 내게 손난로처럼 살갗을 파고든다. 그러다 때묻지 않은 순백의 기남이를 보며 그만 욕심을 냈다. 읽기도 버거운데 함께 시를 써보기로 것이다. 내게 말만 간절하게 쓰면 그게 나에게 쓰는 편지라고. 편지가 멋진 시가 된다고. 그날부터 나와 기남이의 편지가 오고갔다. 그렇게 설레는 관계가 되었다. 신바람 나는 연애가 시작되었다. 깊은 야생화같은 기남이와의 열애는, 상처받지 않을 연애라 스캔들도 없을테니, 실연의 상처가 타투처럼 새겨진다 해도 남는 장사 아니겠는가. 전주에서 주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는 나는 어쩌다 자가용으로 출근하면 기남이를 태워 준다. 그런 때는 기남이가 하도 좋아하길래 너도 아빠한테 가끔 태워 달랬더니 아빠는 명절 때도 제대로 오고 년에 볼까 한단다. 그런데 선생님 차를 타고 옆에 앉아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해맑은 웃음을 그칠 모른다. 후로 자가용을 가지고 오는 날이면 집까지는 방향도 다르고 너무 멀어, 얼마안 되는 거리지만 버스 정류장까지라도 기남이를 태워주고갔다. 얼마 전에는 늦은 밤이었는데 기남이가 엉엉 울면서 전화를 했다. 잠결에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는데 우는 소리만 들리다가 기남이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밤늦게 죄송하다며 자초지종을 얘기하는 기남이 엄마의 얘기를 듣다가 나는 그만 소리로 웃고 말았다. 언젠가 기남이네 집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서 내게 좋아하냐고 묻기에 된장찌갤 좋아한다고 했는데, 내가 가정방문을 하면 엄마가 기다렸다가 선생님 된장찌개를 해드려야 하는데 엄마가 못해준다고 하니 이슥하도록 울기에 엄마가 안타까워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기남이 엄마는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아픈 몸으로 식당을 나가신다. 그런데 식당은 아침 열시부터 시까지 근무인데 도중에 선생님 된장찌개를 끓이러 나올 없어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는데 모처럼 오시는 선생님을 그냥 보내면 되는 법이라며 울며 떼쓰는 달랠 수가 없어서 밤늦은 시간임에도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웃음이 나왔지만 목이 메었다. 나는 기남이에게 잘할 있는 뭐냐고 물었다. 엄마가 해주시는 것보다 직접 네가 해주는 먹고 싶다고. 그리고 다음 기남이네 집에가서 뜨거운 물에 타준 아이스커피(!) 마셨다. 카페인에 약해 콜라도 못마시는 내가! 카페인 덕에 이룬 그날 밤은 늦게까지 기남에게 편지 시를 퇴고까지 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지만.


엊그제는 방학이지만 기남이를 학교로 불렀다. 가방을 가져오라고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줄 요량으로. 기남이는 동생까지 데려왔다. 기남이 동생은 처음엔 나를 경계하고 낯설어 하는 듯했다. 좁은 거실에서 전기장판을 깔고 식구가 같이 자는 공간, 식탁도 없이 밥상으로 책상을 대신하고 읽을 책이라곤 성경책밖에 없는 자기 집에 들락거리는 내가 기남이 동생에겐 곱게 비칠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함께 따라 나선 것이다. 형에게 하는 것을 보고 내게 마음 문을 열어젖힌 듯했다. 그날 교무실에서 군만두에 짬뽕을 먹고 상담실에서 기남이가 좋아하는 매실차를 타주고 우리 셋은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신났다. 도서관에서 책도 동생 몫까지 가방에 담아줬다. 미리 주는 세뱃돈이라며 봉투에 문화상품권을 넣어 주기도 했는데 흔쾌하게 받아줘서 정말 기뻤다. 5 전쯤이었나. 기남이와 비슷한 아이가 있었다. 1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기남이처럼 만났다. 특수학교에 가야할 아이였다. 아이는 가끔 돌출행동으로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해서 다른 학부모들의 항의도 받는 안타까운 아이였다. 아인 유일한 취미가 하나 있었다. 그림그리기. 그림에 젬병인 나는 용기를 내어 아이와 그림일기를 썼다.먹지를 대가며 밑그림을 그리고 온갖 색으로 색칠을 해서 그림을 완성하고 편지를 면을 메우는 시간은 꼬박 두시간 이상 걸렸다. 아이는 나와 그림일기를 쓰면서 정서적인 안정을 찾는 듯했다. 바람에 일기장은 권의 책이 되었고 아이는 아무 없이 졸업을 했다. 이제는 대학생까지 아이의 엄마는 그림일기를 가보처럼 보관한다고 했다. 그리고 장애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반학교에서 적응해간 것은 물론, 끊임없는 봉사활동을 하는 자랑스런 청소년으로 국내서는 물론이고 영국의 유명 잡지(어워드 월드) 표지모델로 실렸다고 울먹이며 전화가 적이 있다. 옛날 키프로스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있다. 자기작품에 혼을 불어넣어 가장 아름다운 연인으로 만든 피그말리온처럼 교사는 아이에게 사랑과 칭찬과 격려와 믿음으로 아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으로 만들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천하보다 귀한 우리 아이들에게 불멸의 혼을 불어넣어야 학교가 요즘 지옥의 심연으로, 감옥으로,자살의 도약대로 나락한다는 현실 앞에서, 꽃대궐이 되어야할 교실과는 달리, 냉난방 시설이 있는 교무실 최신형 컴퓨터 앞에 앉아 교권추락을 걱정하는 교사라는 부끄럽다. 죽어가는 아이들의 인권을 온몸으로 지켜낸다면 교권이 어찌 흔들릴 있겠는가. 우리 아이들이 가장 되고 싶어 하는 부동의 1순위 직업이 교사 아니던가. 냉혹한 자본의 바벨탑에 올라보려 강파른 비탈에서 영육의 상처로 신음하는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손이라도 내밀어 껴안을 역할을 누가 대신하랴. 어찌 책임을 교사가 짊어지랴만, 일진 아이들마저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일 때까지 교사들은 절치부심할 일이다. 지금 나라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의인 10명이 필요한 아니라, 모든 교사가 아이들을 하느님으로 여기는 의인이 되어야 터이다! 땅의 꽃숭어리 같은 아이들이 없다면 교사의 봄날도 없다. 정녕 없는 봄을 바라는가. 따돌림 당하지 않으려고 벗을 따돌려야 하는 위악의 아이들을 껴안아주는 어른인 교사가 없다면 땅의 봄은 춘래불사춘이다. 일진의 배후는 어른이다. 어른인 先生(!)님이 앞장서서 교실에서 학교에서 아이들의 꽃자리를 만드는 훈풍이 되지 않으면, 하느님과 같은 어른의 아버지인 아이들에게 봄을 가르칠 교단은 자꾸 기울어지고 허물어지리라. 무람없는 아이들과의 열애로 꽃대궐 교실마다 웃음꽃 사태진 사시장철 봄날인 학교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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