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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 | 연재
[아름다운 당신] 고인돌연구가 이진우
관리자(2012-03-07 16:05:28)

배워서 남 주는 이 남자

신귀백 객원기자


트럭에 실린 한 남자의 생애가 있다. 그는 매일 1번, 23번, 29번, 30번국도와 들길을 건넌다. 목장이 아닌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두 마리 키우는 짐승 먹일 사료배달을 하는 틈틈이 그는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한다. 그가 기록한 이 길갓동네 미시사(史)를 다룬 글과 사진은 네이버 블로그‘들길’을 통해 소통된다. 6년 동안 조회수가 38만 건이다. 대박이다. 낚시, 그런 것 없다.


‘들메지기’이진우는 인터넷 시대의 향토 사학자다.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전북일보‘블로그로 보는 세상’시리즈에 소개, 2010.01.28)에는 정읍의 문화와 특히 고인돌에 대한 콘텐츠로 가득 차 있다. 연구소 수준이다. 고인돌 같은 거창한 문화유산부터 골목길에 핀 꽃 한 송이, 들판을 지나는 바람까지 기록해둔다. 빈집이 즐비한 시골 무채색 골목에 훈짐과 색깔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는 것. 그러니 그의 사적일기는 사회일기다.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좋아서한다. 맥주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요즘, 무엇이 힘드냐고 물었다.“전에 아가씨를 만나는데, 카프리 맥주가 나왔어요. 거참, 병따개로 따려니까 빙긋 웃으며 손으로 살짝 비틀더라구요. 삐삐 들여놓았더니 핸드폰으로 가버리고, 포도시 핸드폰 문자 배웠더니 또 트위터로 가 버리고. 우리 같은‘언터쳐블’은 여자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 미혼이다. 토끼띠. 그러니까 올해 꼭 오십이다. 헤세의 싯다르타처럼 살고 싶은데, 잘 안 된다는 이 남자 정읍 이평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인문계를 가려했는데 아버지가 박정희 말만 믿고 실업계로 보냈단다. 이리공고 화공과 출신으로, 함민복도 공고출신이고 시인 최형 선생이 같은 학교 선배라고 말하는데, 스스로 인문학적 기초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온유다.


아끼는 정읍의 콘텐츠는 뭡니까? - “정읍사, 상춘곡, 파랑새요, 사(詞), 곡(曲), 요(謠)를 꼽는데, 저는 파랑새요도 좋고 

정읍사도 좋아요. 정읍사가 오늘까지 계승될 수 있었던 이유는 신라와 병합되면서 도 신라 왕실에서 전승되었다는 거죠. 어떤, 신라의 농숙한 문화 속에서 백제의‘정읍사’라는 콘텐츠가 이 동네서 군수하신 최치원 선생께서 킬링콘텐츠로 인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인돌 군락은 국립묘지다


그는 (사)고인돌사랑회 운영위원이다. 거의 유일한 직함이다. 강화 고인돌 축제에 참여하고 세계거석협회에도 가입했다. 회비내고 부지런히 자료사진 올렸더니, 정읍 흑암마을 고인돌을 한국의 대표적 고인돌로 인정해, 세계유산 강화고인돌 홍보책자에 올려주었다고. 이진우에 의하면 정읍에 소재한 고인돌이 한 200 여기 정도 되는데 180기가 등재되어 있다고. 당연히 하나도 빼지 않고 답사를 했고 사진으로 담아 블로그에 올려두었다.

어떻게 하다가 고인돌 연구자가 되었습니까? - “지역사에 관심을 갖다보니 자연스레 고인돌 또 석조문화를 연구하게 되었죠. 대부분의 고대문화 콘텐츠는 박물관에 들어가 있는데 고인돌은 필드에서 볼 수 있지요. 고인돌이나 성(城)의 분포도와 이들이 가지는 코드를 통하여 문화의 발생지, 확장사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답사해보니 큰 산 밑으로 고인돌이 많이 있고 습지나 염지에는 없습디다. 큰 산 밑은 천혜의 요새고 겨울에 땔감 있고. 신석기가 부산에서 섬진강 타고 남원 쪽으로 왔지요. 정읍에 고인돌문화가 들어온 루트 같은 것에 관심이 많이 갑니다.”

고창 고인돌 군락은 책에서 말하는 대로 청동기시대 족장의 무덤입니까? - “단순히 지배계층의 무덤 혹은 제단이라기보다는 동작동 혹은 망월동에 있는 사람들, 음, 싸움터에서 숨진 전사들 혹은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은 집단의 훌륭한 일을 해낸 분들을 기리는 국립묘지 개념 아닐까요? 여수서 고창 부안에 이르는 고인돌 벨트는 인구밀집지역으로 이 동네가 요즘 말로 거의‘수도권’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고창 이 동네는 해양선사문화권으로 문명의 시원지라 할 만하죠.”


왜 고인돌 만들기가 지속되지 않고 그쳤을까요? - “고인돌 만들기로 파워경쟁을 하다가 관뒀습니다. 투자가치 대비 효용성이 없다고 본 것이겠죠. 마한시대 초기까지 고인돌을 세웠는데 큰 규모의 고인돌은 거의 이때의 것으로 봅니다. 고인돌 만들던 사람들은 당대의 하이테크 기술자들이죠. 지사리 무덤 이런 것은 수혈식 고분, 즉 흙을 먼저 높이 쌓아두고 다시 위에서 흙을 파고 거기에 매장 한 거죠. 권위의 상징으로. 피라미드도 마찬가지인데 살아서부터 쌓기 시작했을 겁니다. 농한기에 인력을 동원해서.”


지금 말하는 것들이 야사인가 정사인가를 물었다. ‘섞여서 가는’거라고 태평스럽게 말하기에 불편하게 물었다.

팩트로 보십니까? - “상상력이죠. 같이 향토사를 공부하는 어떤 이는‘팩트’만 가지고 나가라고 그러지만 저는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고인돌은, 가운데가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옹암 고인돌이고 제일 멋진 고인돌은 고창 대산면 상금리 고인돌인데, 무게가 50톤이 넘습니다. 국가대표급이죠. 이걸 보고 어린 아이는 탱크 같다고 하고 또 어른들은 고래 같다고 합니다. 지금 달랑 번호만 매겨져있는 이 고인돌에 이름을 붙이고 스토리텔링하는 작업이 필요할 시점이지요. 고인돌을 보고 있으면 고대인들이 나에게 말을 걸고 나도 그분들께 말을 겁니다.”

바다를 몰아낸 정읍과 김제 전라도 산천을 두고 한번 말을 걸어 보시죠. - “배운 놈들이 상상력을 발휘 안하려고 하죠. 학교 교육이, 현실이 말리는 거죠. 우리 아래 대(代)에선 이게 나와야 합니다. 노령산맥 산신령과 서해용왕이 힘겨루기를 하는데, 서해용왕이 힘을 써 크게 (바닷물이)오긴 오는데 끝까진 못 오는 거죠, 근데 노령산맥은 오줌줄기가 약한데 그게(산에서 내려와 합수한 물이) 결국 바다까지 가지. 어때요, 동화 되겠지요?“


돌아다니면서 특별히 아름답다거나 안타깝게 느끼는 것 있습니까? - “내장산이 아름답죠. 하지만 요즘은 바다를 쳐주지 않습니까? ‘황해는 동아시아의 지중해다’라고 누가 그랬는데, 동의합니다. 강이나 바다를 멀리하는 놈은 망하는데, 전라도가 새만금 등으로 인해서 바다를 쫓아내고 있습니다. 정읍이 조선시대에 간척사업을 많이 했는데. 요즘에『절수』(왕이 왕족들에게 땅을 떼어 주는 것, 세금도 안내는)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예전에 벽골제가 무너졌는데 다시 쌓지를 못했대요. 그게 그 땅을 왕족들이 다 먹어버려서 그런 거죠. 벽골제 삼천 평을 막으면 그 아래 구천 평 땅을 농사지을 수 있는데 삼천 평을 왕족들이 먹고 구천 평이 버려지는 거죠. 지금의 재벌들이 하는 짓과 똑같습니다.”

강을 불러와야겠네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 “한반도 지도를 놓고 보면 금강, 만경강, 동진강 이 부분을 사람으로 보자면‘배(腹)’죠. 여기서 생명이 나오고 먹을 것이 나옵니다. 백제 문화의 융성은 곡창지대와 해외 무역에 있었지요. 백제와 신라의 전쟁은 쌀 전쟁이라 이겁니다. 경상도 쪽이 척박해 여기 곡창지대를 먹은 거죠. 전라도가 조선 시대 세금의 절반 정도를 내지 않았습니까? 지금 김제가 제2의 정읍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정읍이 (개간으로)바다를 몰아내었듯이, 지금의 김제가 바닷길을 막아놓고는 내륙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전엔 고창 성내, 정읍 소성, 신태인 체육관이자리한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간척으로 다 막혀서 지금은 뻘이 차서 배가 못 들어오고 대신에 남사르 습지가 되고 말았죠. 바다를 몰아냈으니, 그저 내장산 구경하고 다들 밥은 부안으로 먹으러 가지 않습니까?”

문학지도 큐레이터


그의 블로그에는 지역 신문이 기록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은데, ‘정읍의 보호수 시리즈’부터‘정읍 문학의 샘’코너도 있다. 정읍지역 출신들의 문학작품은 고대작품부터 최근의 아동문학에 이르기까지, 또 정읍을 다룬 작품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실려 있다. 그래서 2010년 전북작가회의에서‘작고문인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산외면의 박정만 시인 그리고 신태인의 정열 시인 생가 탐방시 당연히 그가 길안내를 맡았다. 이진우는 정읍의 문학지도를 그리고 있고‘정읍 출신 주요 소설가들의 작품 속에 나타난 아버지’라는 소논문도 있다. 정읍 출신 작가들 중 누구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윤흥길이 최고지요. 그 뒤로 이재웅과 손홍규를 좋아합니다. 신경숙이나 손홍규의 소설을 보면 그 소스나 배경이 읽혀요. 손홍규의「귀신의 시대」에 보면 쪽간이 아저씨가 나오는데, 여자가 3배가 더 크다는데 그게 실제 인물이죠.”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었더니, 사료배달로 그 동네에 많이 다녀서 안단다. 최근 읽고 있는 좋은 책을 추천하라고 했다. 없다고 빼더니,“한 달에 책 10권씩 사서 보는디, 동갑내기, 63년생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요. 배용재, 고성만, 공선옥, 황선미, 공지영, 그리고 신현림 김선우 김민정도 좋습니다.”

주로 여성 작가들을 좋아하시는데, 손예진과 한가인 구별 할 줄 압니까? - “압니다.”


안다고 해서 소녀시대 멤버를 물었더니, 관심 없다고 딱 썬다. 뻘쭘해져서 그의 꿈을 물었다. 그는 정읍 서사시, 말 그대로‘서사시’를 쓰고 싶다고. 그리고 두승산과 관련한 고부라는 주제로 대하소설도 쓰고 싶단다. 이진우는 없는 게 많다. 스펙이 없으니 허세가 없다. 학연이 없으니 독고다이다. 혼자서 공부한다. 대학 교수나 뭐 그런 사람들이 이진우가 연구하고 올려놓은 자료를 막 써먹는다. 그는 구태여 자신이 갑(甲)임을 말하지 않는다. 공짜 치즈를 가져가는데 쥐덫을 놓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는 경멸을 모른다. 한 마디로, 배워서 남 준다. 폭설로 차가 못가면 짐승들이 굶기에 고랑에 빠지며 사료배달을 하고 고장난 보일러도 고쳐준다. 다만,‘지금 여기’를 실천할 뿐이다. 이진우는, 트럭에서 보는 풍경은 승용차와는 사뭇 다르단다. 트럭은 창의 크기나 높이가 사유하기에 적절한 공부방이라고 소박하게 웃는다. 이 바닥 사람치고 비분과 강개없이 연비 높은 사고를 하는 그는 도대체 무엇을 연료로 주경야독을 실천하는 것일까? 정읍시 시기동 아양산 고개에는 정읍사 여인의 조각상이 근심스레 미간을 모은 채, 장사나간 남편을 천년째 기다리고 있다. 혹시, 트럭을 타고 들길을 건너는 이진우는 그 때 그 여인의 남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읍은 콘텐츠의 박물관이다. 큐레이터는 당연히 이진우고. 이제 3월부터는 주5일제수업이 정착된다. 주말 학생들과 움직이고 싶은 전북의 교사들! 블로그에 눈팅만 하지 말고 주말학교 답사선생으로 이 들메지기를 모셔 가시라. 정읍대한사료 부사장 이진우씨는 필드를 뛰기 위해 일요일과 빨간날은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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