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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관리자(2012-03-07 16:07:23)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 나쁜 놈을 만들다

송경원 영화 평론가


윤종빈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모순된 관계성에 속박되어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2005)에서 우연하게 군대 내 선후임으로 만난‘태정(하정우)’과‘승영(서장원)’은 그 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사이였다. 그리고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에서 부산의 떠오르는 조폭‘최형배(하정우)’와 말단 비리 세관원‘최익현(최민식)’은 조폭 세계에서 두목과 신참의 관계이지만, 촌수를 따지면 익현은 형배에게 대부로서 관계의 우위가 역전된다. 한편, <비스티 보이즈>(2008)에서 호스트바‘선수’인‘재현(하정우)’과‘승우(윤계상)’는 자신들처럼 몸을 파는 여자들과 연애를 하면서 섹스는 돈벌이 수단이자 사랑의 징표로서 모호하게 겹쳐지며 상충한다. 이처럼 감독은 그들을 매우 한국적인 상황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곤란한’입장으로 끝까지 몰고 가서 현미경을 들이댄다. 그 이중의 관계성은 각자의 고유한 원리로 작동하는 두 체계 간의 갈등으로 확장된다. 엄격하게 분리된 채 존재하던 체계들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발생하는 균열과 소용돌이가 디테일하게 영화 속에 포착된다.


이중의 관계성, 마지막에 미소 짓는 자 누구인가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 체계 간의 충돌을 틈타, 재빨리 자신을 추스르고 새로운체계를 세워 승리를 쟁취하는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준다. <용서받지 못한자>에서‘소신 있는’승영은 실패했지만‘융통성 있는’태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그 이유, <비스티 보이즈>에서 어리석게도 진심을 다해 사랑한 승우가 실패자가 되고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사랑과일을 병행한 재현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있었던 바로 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리하여 <범죄와의 전쟁>이 그려낸 어두운 범죄의 세계에서 마지막에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인물은 가장 주먹이 세거나가장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체계의 변화하는 규칙에 가장 재빠르게 적응하는 자이다.정말로 나쁜 건 눈앞의 뇌물 앞에서 흔들리는 게 아니다. 윤종빈에게는 그‘돈을 향한 순수한 욕정’은 그나마 귀엽다.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에서 돈에 대한 탐욕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서로에게 나쁜 짓을 하는 형사와 검사, 조폭이 있지만, 최종 승리는‘가장 돈이 많은 놈’, 즉 최상위 계급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가 아무리 고귀한 신분을 더럽히는 치욕스러운 범죄를 저질러도 돈으로 무마하면 그만이다.) 돈이 인생이목표이고 승패를 판가름하는 기준일 때,승자는 언제나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자이다. 따라서 가난한 자는 가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거나 푼돈에만족하면 된다. 속된 말로, 포기하면 편하다. 그렇게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메이저 리그와 마이너 리그처럼 별개로두면 된다. 돈에 대한 탐욕이 삶의 기준인 한, 나쁜 놈들은 자신의 분수를 알고계층화된 각자의 체계 속에서만 악순환될 뿐이다.정말로 무서운 건 그 돈마저 업신여기는 강직함 속에 품고 있는 꿍꿍이다. 진정한 나쁜 놈이 되기 위해 뇌물에 넘어가거나 푼돈에 움찔하는 무난한 나쁜 놈이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돈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돈으로 매수할 수 없을 정도로 독한 사람이라, 정말 무섭지 않은가?‘ 조범식검사(곽도원)’는무자비하게깡패를 잡아들이면서 돈이 주지 못하는쾌락을 경험한다. 이는 돈을 훔치거나 강간을 하지도 않은 채, 순전히 살인 그 자체를 즐기는 사이코패스의 쾌락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깡패를 인간 취급도 하지않으면서 그가 건네는 뇌물조차도 더럽다고 생각한다. 마치 뇌물 자체에도 품질이 있고 등급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깡패와 검사라는, 사회가 부여한 엄청난계급 차이에서 비롯되는 쾌락을 향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통해 획득되는 외설적인 자존감과 닮았다.


사실 형배의 가치관 또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익현은 뛰어난 로비활동으로 조직에게 많은 돈을 안겨줬지만, 형배는 그가 상대파와 협상을 시도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내쳐버리는 경솔한 행동을 한다. 그에게는 돈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내야 할 조폭세계의 원리원칙이 있다. 그것은 함께 피를 흘리며 쌓아온 의리이고 명분이자‘후까시’이다. 그런 원칙을 모르기에 형배의 부하들은 익현을 진짜 형님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형배는 익현에게 정체가 뭐냐고 묻지만, 그것은 정말로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자각을 위한 추궁이다. 익현이 스스로를 깡패라고 생각하든 말든 그는 관심이 없다. 조직의 보스로서 그는 이미 그를‘반달’로 호명하고 있다. 이는 익현을 향해‘너가 깡패인지 아닌지는 관심없어. 내가 깡패라고 하면 넌 그냥 깡패야.’라고 독설을 퍼붓는 조범식 검사의 욕망과 일치한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역할 분담의 전권을 지닌 검사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익현의 본질이 아니라, 검사의 호명 속에서만 익현이 이름을 가질 수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배와 검사가 노리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자신의 말이 곧법인 대타자의 폭압적인 절대 권력이다.이렇듯 돈으로 대리할 수 없는 명예에 대한 도착적 욕망에 휩싸인 정말 나쁜 놈들은 그 절대 권력을 누리기 위해 자신이속한 체제의 규율을 반복 및 재생, 강화해 나가는 자들이다. 사법부를 대변하는조범식은 나쁜 놈들이 경쟁할 수 있는경기장을 만드는 자로서 그 경쟁 위에 군림한다. 그에 비하면 돈을 쟁취하기 위해아등바등 서로를 괴롭히는 무지한 자들은 그저 그런 보통 나쁜 놈들에 불과하다.반면에, ‘보통사람’인 익현은 조폭 사회에서는 반달이라서 순수혈통 건달에게차별을 받고, 사법체계에서는 깡패/죄수로서 검사에게 학대를 당한다. ‘물리적폭력(조폭의 협박)’과‘구조적 폭력(사법부의 횡포)’, 그 어느 것도 가지고 있지않은 그가 그 흉악한 놈들 틈바구니에서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재빠른 적응력이다. 총알이 없다고 총을 버리지 않는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듯, 총알이없으면 총을 망치처럼 휘둘러야 한다. 권력이 없으며 얼굴에 철판을 깔고 종친회를 찾아 육촌에 팔촌, 거기다 교회까지다니며 모든 인맥을 동원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만의 생존전략이다.익현은 검사가 지닌 무소불위의 권력을 알기에 형배를 이긴 것, 즉 그를 감옥에 보내는 대신 자신의 형량을 줄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그것은 돈이 아니라 오로지 신분상승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필사적 선택이다. 따라서 그의 궁극적 전리품은 거액의 재산이 아니라 유능한‘검사 아들’이다. 신분상승의 대리적 실천이다. (심지어 그 검사 아들은 대형 로펌의 스카우트를 만류할 정도로 돈에 대한욕심이 없다! 이 얼마나 숭고한 욕망의결정체인가!) 진정한 악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계층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을 품을 때 발생한다. 그리고 정체성과관계의 이율배반을 조장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존재하는 한, 더 나쁜 놈이되기 위한, 아니 될 수밖에 없는 무한 경쟁의 사슬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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