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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4 | 연재
꿈꾸는 학교 행복한 교실
관리자(2012-04-04 17:53:12)
뚜벅뚜벅 나아가라 형은수 길에서 만나는 참 교육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본 어느 수도원 안내문의 일부이다. 이제 기억조차 희미한 산티아고 순례길, 그때가 나의 새로운 출발이었다. 순례길의 끝에 가까운 레온부터 산티아고 성당까지 걸었다. 일행도 없이 혼자 걷는 그 길에서 지독하게 외롭고 슬펐고 아팠다. 그러는 동안 피할 수 없이 나를 만나고 나와 화해하였다. 내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 진정한 순례자로 살고 싶었다. 지금도 드문드문 산티아고를 걷는 꿈을 꾼다. 그 꿈속은 늘 산티아고 성당을 향한 마지막 날이다. 그 날은 장대비가 내렸다. 우장은 꾸렸지만 나는 전등도 없었다. 어둑한 길을 나섰다. 저만치 앞에는 우의를 입고 어깨에 자기키만 한 배낭을 메고 빗줄기를 피해고개를 숙인 한 무리의 순례자가 있음을 실루엣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나의 이정표다. 빗줄기가 강해졌다 약해졌다 쉼 없이내리고 있고 미명 속에서 순례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비록 꿈속이지만 나는 내 갈 길을 분명히 알고 있고, 서둘지도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서 계속 가고 있다.내 삶이 이러하였으면 싶다. 인생의 길에서 하나의 분명한 가치있는 목표가 있고 그것을 향해 가는 내 걸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 주변은 모두 나와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고,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힘을 얻고,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 여정에서 만나는사람들은 나에게 구체적인 도움은 주지 않아도 그저 그들도 나와같은 곳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라는 신뢰로 그들을 따라 함께 갈 수있었으면 싶다. 게다가 길을 놓칠 때쯤이면 어김없이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나타나 나를 이끌어 주었으면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삶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면서 학교와 가정을 버린 혹은 버림받은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지금 어찌들 지내고 있는지? 그 아이들도 자신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너무 오래방황하지 않아도, 혹은 그 방황 끝에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그리고 그 이듬해 2월 새 학년을 시작하기에 앞서 준비하는마음으로 제주 올레길에 나섰다. 말도 통하고 음식도 입에 맞으니 한결 수월했다.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길이 있으면 아이들과 함께하기가 쉽겠다 싶었다. 그리고 마치 내 바람을 알았다는 듯이 4개 종단을 잇는‘아름다운 순례길’이 열렸다. 전주완주 익산 김제에 걸쳐있는 240KM의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중3학생들을 대상으로 도보순례 동아리‘뚜버기’를 만들었다. 요즘 아이들의 대부분은 걷지 않으려 한다. 그럼에도 그 아이들은 나의 현란한 유혹에 기꺼이넘어가 주었다. 2010년 여름방학의 덥고 끈끈한 장마의 끝물무렵에 10명의 뚜버기들이 4박5일의 도보 순례길에 나섰다.하루 25km 안팎의 길을 그저 걸었다. 먹을 것은 사먹기로 했지만 여전히 각자 어깨에 짊어진 배낭은 무거웠다. 그 여정에서 자신의 문제를 끌어내고 아파하고 쓰다듬는 일은 각자의 몫이었다. 그 시간이 충분하든 충분하지 않든 아이들은열심히 걸었다. 쏟아 붓는 빗속에서 혹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걸었다. 진로의 막막함,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 무관심하거나 경쟁의 대상자들인친구들, 돌보아야 할 가족들, 초라한자신……. 수다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든다. 무거움이 길어진다 싶으면알아서 분이기를 바꾸곤 했다. 끝말잇기, 아는 노래 다 부르기, 심지어는 수업시간에 암송한 시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걸음을 계속하였다. 그러면서 각자의 삶의 무게를 성실하게 짊어지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다. 간간히 후배들 순례길에 동참하자고 저 요즘힘들다고 함께 걷자고 따라 나선다. 아마도 긴 시간을 걸으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갈 것이다. 사람들에게 기대어 하루를 견디면서 길을 만들 것이리라.2011년에도 뚜버기는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중학교 2학년들, 세상이 말하는 무서운 중2들이다. 1학기부터 한 달에 한번 혹은 격주로 마지막에는 1박2일로 걸었다. 7명은 내내 조잘대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다. 다리 아프다고 투정도 하고, 덥다고 짜증도 내고, 아침에 엄마랑 한판 했다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엄마가 도시락을 절대로 안 싸준다고 투덜대기도 하고, 무슨 일이 있는지 입 꼭 다물고 걷기만 하는 아이도있다.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저도 모르게 후루룩내뱉는 한숨으로 그 마음을 짐작만 해 본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완주를 했다.“내가요, 올해 한 일 중에서 가장 잘 한 일이 이거예요.”작년12월30일, 240km‘ 아름다운순례길’을완주하고순례자 증명서를 받고서 이렇게 고백한 뚜버기들! 달랑 종잇장한 장이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보상이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도 계속하자고 졸라댄다. 제일 짜증이 많던 녀석이.교실에서 만나지 못한 우리들은 길에서 자신과 서로를 만난다. 교과서와 시험과 일련의 교육과정을 수행해야 하는 학교아닌 이곳에서 낯선 사람들의 따스함이 있고, 키 작은 꽃들이시새움 없이 피고 지는 이 여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학교를 연다. 그리고 나는 그 길 위에서 희망을 만난다. 우리는 걷는 동안 어제보다 행복한 내일의 희망을 만든다. 올해도 아이들을 길 위로 끌어낼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뚜버기 3기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만들어질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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