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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4 | 연재
클래식 뒷담화
관리자(2012-04-04 17:53:23)
바흐가 왜‘음악의 아버지’일까? 문윤걸 예원예술대학교 문화영상창업대학원 교수 우리는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 음악의 어머니, 조지 프레데릭 헨델이라고 배웠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해에 태어났습니다(하지만 두 사람이 음악적 교분을 나누거나 특별히 가깝게 지낸 적은 없습니다). 두 사람이 활동하던 시기는 바로크 예술이 절정을 치닫던 1700년대 초반입니다.뭔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1700년대 초반이면 불과 300년 전인데 음악의 아버지가 3,000년 전도 아니고 300년전 사람이라면 그 이전의 음악과 오페라를 발명한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가들이나 비발디처럼 바흐에게 큰 영향을 미친 훌륭한 음악가들은 어떻게 된 걸까요? 그들 대신 왜 바흐가‘음악의 아버지’가 된 걸까요? 바흐와 헨델에게‘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타이틀을 준 건 일본 사람들이라는 설이 거의 확실합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그런 타이틀을 쓰지 않으니까요. 이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을 일본에서‘운명’교향곡이라고 부르면서 그렇게 굳혀진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일본은 근대 초기‘탈아입국론’, 그러니까 일본은 열등한 아시아 국가가 아닌 문명국가인 유럽 국가라는 희한한 논리를 펴면서 유럽의 문화예술을 빠르게 받아들였습니다. 이 때 동맹국가였던 독일의 문화예술론을 바탕에 두었기 때문에 위대한 게르만 민족을 부르짖던 독일식 가치관에 경도되어 있었습니다. 바흐는 독일 작곡가들 중에는 서양음악사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가 된 이유가 이것만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확실히 바흐는 유럽의 음악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바흐가 나오기 전인 17세기 경 유럽의 음악은 다양한 음악적 양식과 기법이 난무하였습니다. 드문드문 훌륭한 음악가들이 등장해 음악적 혼란을 바로잡아 하나의 양식으로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유럽 음악 전체를 하나의 체계와 구조적 질서로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바흐는 다양하게 발전해 온 유럽의 여러 음악 양식들을 통합하여 규칙적이고 질서있는 음악적 체계와 구조를 확립해냈습니다. 바흐는 하나의 음을 시작하면 어떻게 다음 음으로 전개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음과 음이 동시에 울릴 때는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등에 관해서 거의 수학이라고 느껴질 만큼의 음악적 규칙과 질서를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공식에 대한 연습방법 및 음악적 전개의 다양한 예들을 수많은 작품을 통해서 남김으로써 후대의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동안 손뜨게질로 옷을 만들던 시대에서 바흐로 인해 기계로 옷을 만드는 일이 가능해진 것과 같습니다. 이는 바흐에 대한 베토벤의 평가에서 잘 나타납니다. 베토벤은“바흐는 냇물이 아니라 바다”라고 평했습니다. 이는 오랜세월동안 곳곳에서 흘러내려온 수많은 물줄기가 바다로 흘러들어가듯 바흐의 음악은 다양한 음악적 기법들을 집대성해 새로운, 그러나 너무도 놀라운 음악적 양식으로 만들어 냈기 때문입니다. 바흐의 삶은 그다지 화려하거나 드라마틱하지 않습니다. 평생 독일 바깥에 나가본 적도 없고 대규모 공개 연주회를 해 본 적도 없이 그저 독일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작곡, 지휘, 오르간 연주를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독일의 시골뜨기가 어떻게 유럽의 음악을 집대성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집안 내력과 그의 성품 때문일 겁니다. 바흐의 집안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음악가를 배출한 집안입니다. 200년 동안 50여명의 음악가를 배출했고 이 중에는 바흐보다 더 유명한 음악가들도 많았습니다. 그는 외국에 나가본 적 없지만 가족들로부터 다양한 음악적 기법들을 흡수해냈고 고집불통일 만큼 학구적 성향을 가지고 우직하게 음악에만 몰두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주 꼼꼼하고 체계적인 기법이 담긴 수많은 작품들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흐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음악은 잊혀졌습니다. 출판된 작품들은 극소수였고, 전문적인 작곡가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소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바흐의 음악은 통속적이지 않아 적응하기 어려운 따분한 것이었습니다. 바흐를 되살려 놓은 사람은 멘델스존입니다. 멘델스존은 어떤 의미에서는 최초의 전문지휘자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가 14세 생일선물로 할머니에게 받은 것이 바로 바흐의 마태수난곡 필사본이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할머니는 손자의 피아노 선생에게서 이 필사본을 구입했는데 피아노 선생은 치즈가게에서 사온 버터의 포장지가 바흐의 악보임을 알아보고 한달음에 달려가 치즈가게에 있던 바흐의 여러 악보를 구했다고 합니다. 멘델스존은 베를린에서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선보였고 이 공연이 대호평을 받으면서 바흐 음악 재평가 등 바흐 열풍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77년 우주 어디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외계인들에게 인류가 지구를 대표하는 인사로 바흐의 음악(브란덴부르크협주곡과 평균율 등)을‘보이저’호에 실어 우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왜냐 하면 그가 유럽의 음악발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 틀림없지만 음악이라는 단어가 유럽음악 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늘날 유럽의 음악적 어법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는 있습니다만 유럽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다른 음악적 어법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발전시켜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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