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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4 | 연재 [저널이 본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찾은'사람들
이종민 편집주간(2003-09-08 12:10:27)

박형, 역사변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느긋한 방관자로서 촌평을 가할 수 있는 여유를 요즘처럼 부러워한 적은 없소. 강둑에 서서 홍수에 떠내려가는 세간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듯 혀를 '차주는' 그런 한가로움 말이오.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에 마음을 설레이다가 타다 남은 살림살이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여인네를 보고 동정을 할 수 있는 그런 너그러움 말이오. 한편의 연극을 무대위에 올려놓고 초조와 긴장에 시달리다가 시답지도 않은 평들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객석에 앉아 맘 편히 구경하고서 무어라 자기도 알지 못하는 말을 한마디 심각한 표정으로 던지며 유유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럼 자리에 서고 싶은 것이오. 어줍잖게 주체의 언저리를 서성이다 망신을 당하는 것보다는 '국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는' 처신이 얼마나 현명한 것이오?
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서, 이곳에서는 접할 수 없던 우리와 비슷한 많은 나라들의 너무나 다른 상황전개에 당황하고, 예기치 못했던 동구권의 심각한 변화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안타깝다는 박형의 처지가 차라리 한가로와 부럽다 하겠소. 소용돌이 속에서 방향을 잡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쳐보다가, 요즘의 보수반동화와 같은 엉뚱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때면 자신의 판단착오나 역량의 미흡함을 탓하고 반성하기보다 또다시 일에 뛰어 들고 만 경솔함을 후회하게 되는 것이오. 어쩌면 이것이 한번도 제대로 강 복판에 서보지 못한 어정쩡한 기회주의자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지도 모르겠소.
우리 문화저널에서 주최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 초청공연에 대한 너무도 상반된 평가가 이러한 기회주의적 도피를 더욱 부추기고 있소. 우리의 기획의도는 지극히 소박한 것이었소. 우리의 구체적 삶과는 무관한 노래들이 언론매체의 상업주의에 편승하여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고유의 정서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외국 가요들이 '문화의 보편성'이라는 미명하에 청소년들의 의식을 좀먹고 마비시키는 웃지 못 할 상황에서,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모르는 유한 귀족들이 풍류로 즐기던 소위 클래식 음악이 순수예술이라는 기치 아래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적 소외감만을 심어주고 있는 마당에, 우리의 삶과 유리되지 않은, 우리의 건강한 정서에 호소하여 건전한 비판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음악, 그러한 노래를 많은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어려운 일을 자청하고 나설 때 내건 명분이었소. 한마디로, 참다운 노래를 잃은 사람들에게 그 노래를 찾아주는 일, 아니면 그러한 노래를 찾아 애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 바로 그것이었소. 이를 통하여 참다운 노래가 무엇이며 참다운 문화가 어째야 하는가를 함께 확인하고 싶었소. 그리하여 민중들의 건강한 삶에 근거한 문화가 소수 운동권의 당위적 논의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예술성에 근거하여 대중의 정서에 충분히 호소할 수 있는 구체적 형태로 실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오.
그러나 그 결과는 예상 밖이었소. 이는 작금의 보수 대연합에 편승한 반동적 분위기로 인한 공연장 변경 등의 우여곡절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오. 이는 말미암은 우리 편집진 내의 갈등을 얘기하려는 것도 아니오. 예상 밖의 너무도 상반된 평가가 동시에 우리에게 아니면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것이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예전의 어떤 음악회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짜릿한 감동을 우리에게 감사했소. 이들은 말하자면 잃었던 노래를 '찾는'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이미 자기 나름의 노래를 '찾은'사람들의 반응은 시종 비판적이었소. 이는 크게 두 부류로 구분이 되오. 그 첫째는 소위 순수음악을 지향하는 사람들이오.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 든 우리의 전통 음악이든 그것을 통하여 번거로운 현실의 삶을 뛰어넘으려는 사람들, 문화건 예술이건 그것을 불완전하고 불만족스러운 삶의 대체물로 여기는 사람들이오. 이들에게 있어, 노래는 구체적 삶과 무관할수록 보편성과 영원성을 확보할 수 있어 좋은 것이 되지요. 물론 이들의 비판 혹은 무관심은 예상했던 바요. 그래서 우리는 시내에 있는 클래식 음악 감상실에 예매를 부탁하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소.
박형! 우리는 이들의 냉담함에 실망하지 않소. 이들이 갖고 있는 허위의식이 얼마나 강고한 것인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오. 이것은 곧 이들이 갖고 있는 자신들 존재에 대한 위기의식과도 통하는 것이오.(이는, 이를테면, 자신들의 직위보존을 염려하여 이미 공고된 지가 오래된 공연장소의 대관을 하루 전에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리는 교육 관료들의 파렴치한 몸보신과도 같은 것이오. 모기관의 명령 한마디에 공연장 대관 불가를 통보하고, 그것도 대관 계약 책임자에게가 아니라 그 장소의 관리를 맡고 있는 말단 실무자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고는 항의가 두려워 잠적해버리는 그런 몰염치 말이오.) 물론 우리가 이들을 설득의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시키고 있다는 말은 아니오. 이들의 우월의식이 한두 번의 경험을 통하여 쉽게 지워지리라고 기대하지는 않고 있다는 말이오.
우리가 당황한 것은 두 번째 부류의 아무런 유보도 없는 비판 때문이오. 이들은 말하자면, 변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서고자 하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항상 우리의 용기를 북돋아 주면서도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사람들이오. 이들은 한마디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개량주의를, 이에 편승한 공연 주최 측의 상업주의를 공박했소. 공연유치에 소요되는 몇 백만 원이라는 현실적 여건의 고려 없이 비싼 입장료를 탓했으며, 운동의 현장에서, 최루가스에 눈물범벅이 되어 비장하게 부르던 때의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투정을 했던 것이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하는 우리를 상업주의라 비판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불순하다'고해서 공연장마저 바꾸어야 했던 이들을 개량주의라 매도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니냐고 항변을 해보지만 부질없는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고 말았소. 문화운동은 이미 확보하고 있는 건강한 의식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그러한 의식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데 주력하는 것이며, 문화예술의 선전선동성은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치열한 의식에 의해서 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예술성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라고 열변을 토해보았지만 이것이 문화주의자의 공허한 자기 합리화만 같아 쑥스러워지는 것이오.
박형! 이들 또한 자기 나름의 노래를 이미 '찾은'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오. 그래 이들은 자기의 삶에서 우러나는 건강한 노래를 이미 갖고 있어 '노래를 찾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치 않은 것이 아닌가? 또한 우리의 작업은 이처럼 이미 자기 노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노래를 잃어 그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박형! 이런 생각들을 하며 우리는, 지난 86년인가, 개헌을 요구하는 서명을 벌이며 가졌던 끊임없는 설득과 논쟁 끝에 박형이 인용했던 니이체의 말을 떠올렸소. '신념보다 더 무서운 진리의 적은 없다'는 말이오. 신념은 논리를 지배하지요. 그 신념은 또 우리들 생리의 지배를 받고 있지요.(이것이 상부구조론의 생물학적 해석이 아니겠소.)
올바른 것이든 그릇된 것이든 신념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노래를 '찾은' 사람들이오. 이들은 항상 자신 있게 변혁의 한복판에 우뚝 서려 할 것이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러한 신념을 갖고 있지도 못하고 그래서 자신의 노래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 즉 노래를 '찾는'사람들로 하여금 건강한 노래를 찾을 수 있도록 그래서 건강한 신념을 가지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아닌가하오.
박형! '강둑에 서고 싶다'는 앞서의 푸념은 이제 지워버려야 할 것 같소. 비록 그 복판에 서지는 못할지라도, 격한 외침이 아닌 완곡한 속삭임으로, 강요나 강제가 아닌 권유와 설득으로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도 필요할 테니까 말이오. 그릇된 신념의 완고함에 쉽게 절망하지는 않겠소. 분위기의 변화에 의해서만 그 완고함은 깨질 수 있을 것이오. 우리들 노력은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울어질 것이오. 개량주의래도 좋고. 상업적이래도 좋소. 누눈가 이 일을 맞아해야 할 바에 그러한 비난을 두려워하지는 않겠소. 많은 격려를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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