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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5 | 연재
[임안자의 내가 만난 한국영화] 체코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 2
관리자(2012-05-14 10:58:00)


 한국영화, 동유럽을 감동시키다 새로운 한국영화 28편을 상영하다 제 36 회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karlovy Vary International Film festival)는 7월 5일 막을 올린 뒤 14일까지 진행됐다. 항상 그래왔듯 개막식은 조촐하면서도 진지했다. 대신 영화제에서 만든 짧은 영상로고는 일품이었다. 영사실의 젊은 기사가 좌충우돌하면서 벌이는 익살극은 실내를 웃음바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벌써 몇 년째 보는 것이었지만 관객들은 어리석으면서도 착해 보이는 주인공에게 매번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런가 하면 실내의귀빈석에는 할리우드 스타들과 국내의이름난 영화계 인물들이 더러 보였지만이곳의 젊은이들은 스타들 앞에서 자지러지듯 소리를 지르거나 야단법석을 떨지 않았다.개막식 다음날 시작된 한국영화 회고전은 테르마 호텔 아래층에 지어진 영화관에서 진행됐다. 카를로비바리는 중세이후의 건물이 많이 들어서있는 멋스러운 도시다. 그런데 영화제 행사장으로쓰이는 테르마 호텔은 모양새보다 기능에 중점을 둔 사회주의 시대의 멋없는건물로서 마치 아름다운 얼굴에 생긴 흉터처럼 보는 사람의 눈을 찌푸리게 한다. 그럼에도 영화제에 필요한 모든 게한 건물 안에 준비돼있어 행사를 치르기에는 아주 편리했다. 또한 밤이면 돈이없어 호텔에 머물지 못하는 학생이나 젊은이들이 지하 영화관들 사이사이에서잠을 자는데 아무도 그들의 잠자리를 막지 않았다. 영화상영관에서는 유료 관객이 입장한 다음 빈자리가 남으면 표가없는 젊은이들도 영화를 보게끔 배려를해줬다. 돈 없는 젊은이들에게 무료입장을 제공하는 영화제 측의 너그러움도 살가웠지만 그에 못지않게 젊은이들의 영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 또한 대단했다.2001년의 회고전 프로그램은 두 번의선정을 거쳐 결정됐다. 1차의 선정은 에바의 부탁으로 내가 맡았었다. 나는 영화를 고를 때 혼자서 하기보다는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의 의견을 묻는방법을 쓰는데, 2001년 회고전을 위해서 내가 뽑은 영화는 20편이었으며 부산영화제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조언자역할을 했다. 2차 선정은 카를로비바리영화제의 선정위원회 몫이었다. 이들은1차에서 뽑힌 20편 가운데 14편을 골랐고 그걸 바탕으로 내가 프로그램을 짰다. 반면에 단편영화 선정은 전적으로내가 맡았다. 나는 두 번에 걸쳐 심사를 한 다음 14편을 골랐으며 이효인 평론가(전 영상자료원장)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영화제의 설비부족으로 16mm와 베타캄 형식의 영화는 아예 프로그램에 들지 못했고, 그 때문에 몇몇 수작들이 탈락돼 섭섭했다. 한국영화 회고전은 7월 6일부터 13일까지 8일간 두 개의 상영관을 통해 진행됐다. 앞서 말했듯 회고전의 주제는 "새로운 한국영화"였으며 14편의 작품연도는 1990-2000년까지였다. 여기서 "새로운"이라는 말은 20세기 마지막 10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한국영화의 새로운 경향을 의미하며, 그 경향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성 뚜렷한 작가성향의 수준 높은 영화들이 잇달아 나온 점이다.회고전의 14편 장편영화의 테마를 간추려 말하면 한국전쟁의 충격과 그로 인한정신적 상처, 38선의 폭발적인 상황, 독재주의의 잔재와 그 영향, 경제위기로 인한 서민층의 위축감, 현대인의 위선적인섹스 모럴, 부패한 한국사회의 지배층의이기주의 등 정치·사회적 문제가 주요소재로 떠올랐다. 일부 작품은 남여(젠더)간의 잔인한 생존적 대결, 인간의 꿈과 외로움, 전설적인 한 쌍의 영원한 사랑, 죽음에 대한 사유 등 개인의 심리적,정신적 문제점을 파고들었다. 14편 영화들을 제작연대 순서로 말하자면, 90년대의 작품으로는 <그들도 우리처럼, 박광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박종원>,<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정지영>,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배용균>, <팔월의 크리스마스, 허진호>, <아름다운 시절, 이광모>, <거짓말, 장선우>, <새는 폐곡선그린다, 전수일>이다. 그리고 2000년의작품은 <공동경비구역JSA, 박찬욱>, <반칙왕, 김지운>, <섬, 김기덕>,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춘향뎐, 임권택>,<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류승완> 이었다.장편에 비해 단편영화 14편은 1997-2000년 사이에 만들어진 작품들로 제작년도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장편에 비해 영화의 수준에서 차이점이 많았다. 그것은 국제영화제서 이미 성공한 감독들의 작품들과 국내 영화제서 막 알려지기 시작한 데뷔 감독들의 작품이 한데섞이면서 생긴 문제점이었는데, 그 시기 단편영화의 현실이 실제로 그랬기때문에 선택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그리고 앞서 말했듯 16mm와 베타캄형식의 몇몇 수작들이 영화제의 기술문제로 탈락된 것도 수준 차이를 크게하는 원인이 됐다. 14개 단편영화는 <베이비, 임필성>, <어디 갔다 왔니?,김진성>, <은어비행, 봉근웅>, <햇빛자르는 아이, 김진한>, <하루, 박흥식>, <히치콕의 어떤 하루, 한재진>, <지우개 따먹기, 민동현>, <나는 왜 권투심판이 되려 하는가, 최익환>, <광대버섯, 염정석>, <물안경, 이수연>, <언년이, 유진희>,<우산, 유철원>, <소풍, 송일곤>, <영영, 김대현>이었다. 회고전에 초대된 장·단편 영화의 프린트는 세 개의 장편을 빼놓고는 모두영진위에서 보내준 것이다. 그리고 단편 14편은 단편영화 전문배급사인 미로비전과 인디스토리(이 두 회사에 대해서는 문화저널 2011년 12월-2012년 1월호에서 소개)의 배급망을 통해회고전에 참가했다. "한국영화 떴어요!" 2001년 카를로비바리 회고전은 두 상영관에서 동시에 열렸으며 작품마다 두 번의 상영 기회를 가졌었다. 약 2백석을 갖춘 상영관에는 첫날부터 많은 관객이 모여들어 상영 때마다 좌석 점유율이 70-100%에 이르렀다. 누구도예상치 못한 큰 성공이었다. 영화관에서 나오는 관객들은 "한국영화는 처음인데 힘차고 감동적이다" 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을 놓을수가 없어 날마다 두 상영관을 왔다 갔다 하면서 관객의 표정을 살피고 때로는 그들에게 말을 거는 등 분위기를 살피기에 바빴다. 그런데 나 못지않게 회고전 상영관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 있었다. 명계남 부산영상위원회 대표였는데, 그는 날마다 상영관에 들려 관객 수를 세어보고 나를 만나면 "한국영화 떴어요!"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그러나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에바였다. 영화제 중간쯤에 나는 남편과 함께 에바의 사무실에 들려 남편을 초대해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스위스 레망호수 근처에서 나오는 백포도주 팡당 한 병과 푸라리네 초콜릿을 선물했다. 그 찰나에 에바의 여조수인 쥴리에트 자카로바가 들어와 나를 껴안고는 "모든 게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다"면 칭찬을 퍼부었다. 그 옆에 서있던 에바도 아주 만족한 듯 환하게 웃으며 "이제 마음 푹 놓으세요." 라고 내 등을 다독였다. 그리고 남편과 나에게 체코의 유명한 크리스털 유리잔 한 쌍을 선물한 뒤 "솔직히 너무 불안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회고전이 잘돼가서 정말 기쁘고 고맙다"라고 했다. 나는 에바의따뜻한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감사해야 할 사람은 나였다.영화제 초반부에 영진위의 주최로 "한국영화의 밤" 파티가 카를로비바리의 고급 호텔 픕프에서 화려하게 열렸다. 유길촌 영진위원장과 박두호 해외진흥 대리 그리고 노혜진 실무자가 준비한 자리였다. 그날 밤 파티는 유길촌위원장과 에바의 인사에 이어 피아노,콘트라베이스, 색소폰의 세 음악가들이 들려주는 고전 음악을 배경으로 체코 전통음식이 식탁에 올랐다. 그날 저녁 식사에는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의주요 인물과 부산영화제 전양준 프로그래머를 포함한 여러 국제영화제 대표들 그리고 그 해의 경쟁부문에 들었던 <봉자>의 박철수 감독과 여주인공역의 서갑수 배우가 초청됐었다.파티 다음의 주요 행사로는 7월 11일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한국영화에대한 공개토론이었다. "한국영화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주제로 열린 토론에는 이용관 영진위 부위원장, 명필름의심재명 대표, 명계남 부산영상원회 대표 그리고 장편영화의 정지영, 이광모,전수일 감독들과 단편영화의 최익환,염정석 감독들이 영진위의 협조로 초대되어 참가했다. 토론은 주로 한국영화의 제작체제와 영진위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진행됐으나 몇몇 기자들은 한국영화의 검열제도와 북한과의 영화교류 가능성 또는 상업영화와 작가영화의 경쟁문제와 공존의 한계점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다. 참가자들은 "한국에서일 년에 50편이 넘는 영화가 만들어지고한국영화의 국내시장 점유가 40%에 이르고 있다"는 이용관 부위원장의 말에 우와! 하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정지영 감독은 "이러한 성과가 있기까지는 스크린쿼터 제도가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말하면서 체코 영화계도 스크린제도는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참고로 당시 체코에서 만들어지는 제작편수는 일 년에 6편 정도였다. 그리고 수입 영화는 모두 할리우드 제작품이었던반면에 소련 시절에 40%를 차지하던 동유럽 영화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드물었다. 토론에는 기자를 포함하여 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반응도 대체로 좋았다. 그러나 토론 시간이 한 시간으로 한정되어 많은 질문에 충분한 대답을 하기에는역부족이었다. 내가 토론장 밖에서 만난체코의 한 기자는 "지난해에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과>과 홍상수 감독의 회고전을 봤는데 모두 다 한국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수작들이었다. 그래서 올해 회고전의 영화를 많이 보고 있으며 볼만한 영화가 많아서 좋다. 근래 한국영화가 왜 국제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지를 이제 알 것 같다"라고 아주 좋게 평했다. 헝가리 국영텔레비전의 한 기자는나와 간단한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명필름이 제작한 김기덕 감독의 <섬>을사겠다."는 희소식을 발표했다. 회고전기간에 가장 인기가 높았던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섬>이며 회고전에 참석하지않았던 김 감독은 "컬트 감독"으로 떠올랐다.2001년 한국영화 회고전에 대해 체코의 저명한 평론가 야로미르 불라제오프스키(Jaromir Bla?ejovsk?)는 "제36회카를로비바리 영화제의 새로운 한국영화부문에 대한 소견"이라는 주제로 A4 용지 14장을 채우는 글을 썼다. 나는 에바로부터 영어로 번역된 그 글을 받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데 일부를 여기에 옮겨쓴다."한국영화들은 과거 유럽에 알려진 이미지와는 다른 기쁨을 가져다 준다-이건일본이 아니다. 이건 중국이 아니다. 이건 우리에게 아주 원형적인 새로운 그 무엇이다. … 한국은 일 년에 60여 편의 영화를 만든다. 카를로비바리 영화제는 한국영화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넓히는데 중요한 장소가 됐다. 한국영화는 역동적이고 창작적인 구상으로 스크린을 새롭게 채웠고 관객에게 충격을 주며 자극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당분간은 해마다 새 감독들의 출현이 이어지질 듯하다. 이들은 대중적인 상업영화 속의 일부 엘리트들이아니라 독창적인 영화로서 국내영화시장에서 인기가 대단히 높은 국민영화(National Cinema) 부활의 복합체이다.카를로비바리의 회고전이 고지식한 체코배급자들의 타성을 깨뜨렸다. 한국영화들이 앞으로 체코의 상영관에서도 보이기를 바란다.".회고전에 대한 한국의 평가는 어떠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씨네21의 김소희 기자(김 기자는 나중에 씨네21의 편집장으로 일한 바 있다)의 글도 인용한다."…카를로비바리에서 다시 보니 이 영화들은 국내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더‘한국적’인 어떤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장르와 스타일, 주제와 소재의 차이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한국의 역사와 사회, 심리적 상황들을 직간접적으로 강렬히 드러낸다. …이번 회고전을 통해 간직할 교훈은,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깊이 교류하려는 의지와 작가적 진정성 사이에 균형을 잡는 작품들만이 시간의 시험을 뛰어넘어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관객의 숫자가 많은가 적은가는그 다음 문제이며, 오히려 우리가 할 일은 소수의 관객으로부터 깊이 이해 받는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배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 (씨네21 2001년 7월 17-24일,N°311 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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