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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4 | 연재 [기획시리즈]
노래문화 임실 이영석 할아버지의 노래 1
심인택 우석대 교수(2003-09-08 17:11:31)

임실군 관촌면, 방수리 막동에 이영석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평소 노래하기를 즐겨하는 이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노래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세월이 바뀌어 이젠 노래할 장소도 없고 들어줄 사람도 없어 신문이나 방송을 듣고 공연장을 찾아 힘껏 소리를 쳐 보지만 쫓겨나기가 일쑤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지도 않고 끝까지 버티어 한바탕 소리를 쳐야 직성이 풀리는 할아버지이다.
노래 부를 곳이 점점 어려워지자 그 동안 불렀던 노래가사를 구겨진 노트에 적어서 이곳저곳 관심 있는 사람에게 보여주며 노래를 시켜주 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곱게 차려입은 저고리 바지에 두루마기까지 입고 이제나 저제나 노래할 수 있는 틈을 기다려 기회라고 생각되면 거침없이 무대로 뛰어올라 마이크를 잡고 "저 관촌 방수리에 사는 이영석입니다"하며 노래를 시작하면 객석에서는 뜻하지 않은 손님의 기막힌 소리에 절로 흥이 난다.
이 할아버지는 공연장을 자주 찾는 사람들 사이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외로운 할아버지의 노래가 무슨 노래일까 하는 궁금증에 할아버지로부터 구겨진 노트를 전해 받아보았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노래도 있고 가사를 만들어 붙인 노래도 있다. 이 할아버지 소리는 일반적인 노래가 아니고 할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이었다.
이 노래사설을 적어보며 한편 흐뭇하고 한편 서글픔을 느끼면서 할아버지의 노래를 글로나마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다.

·천지부모
천지는 부모요 우성한 제야
우리부모 궁월합덕 음시가메
우수야 가메로구나


·봉 학
저 건너 저그나 저 정자나무는
젊어 소시쩍에는 일만 이천 가지가 되었는디
늙고 고목이 되니 오던 봉학도
안 쉬어 가는구나

·장 승
저 건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저 건너 셨는 저 정승아
이 길로 가면 목포로 갈거나 칠포로 갈거나
한산 줄포로 달맞이 가세

·견우직녀
저달은 뚝떠서 대장이 되고
견우직녀성은 후분이냐
청천에다 유진하고 은하수로 건너갈 때
대성아 예 어서 바삐 나오니라
해떨어진 진진 고대로 성부결단을맺자

·수양버들
우연히 길을 걸어가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은 가다 어디서 잘꼬
자령타고 월광산을 들어갈까
수양버들 가지를 거꾸로 잡고
자르르 훑터다가
앞내 강변에 시모래밭에다
사르르 던져놓고
그리다가 못가서 가보니까
푸롯한건 모두가 수양천지로구나

·딸 하나 줍소
져 건너가시는 저기 저 할머니는
딸이나 하나 있거들랑
반달 같은 사위를 삼고
왼달같은 딸은 하나 있네만
나이가 어려 여울 수 없네
그 말씀 마오
고추는 큰놈만 매운가요
적어도 매웁니다
참새는 적어도 알을 나서
새끼를 깝니다
제비는 적어도 새끼를 낳고
강남 가서 돌아온다

·조르지 말라
왜이리 나를 조를까
아무리 조르고 또 졸라도 막무가내인데
배가 고프거든 밥달라 먹거라
목이 마르면 물달라 먹거라
왜이리 날 조르느냐
네가 조르고 또 졸라도 막무가내
일 텐데
네 눈에서 눈물이 나면
내 눈에서는 피가 진다.

·임
살진 몸이 왜이리 철골이냐
임아 임아 내 몸에 손 넣어 보소
돈이 없어서 이내몸이 철골이냐
밥이 없어서 철골이냐 옷이 없어 철골이냐
동삼사월 긴긴해에 점심을 굶어도 살았건만
동지섣달 긴긴밤에 임 잃어서 철골이다.

·그리운 임
저 건너 일락서산은 해 떨어지고
오동추야 달 밝은 밤에는 임 생각나서
발광지경인다는 약방약도 쓸데가 없네
담방약도 쓸데가 없네
저 건너가시는 저사람 하나면 모두가
그뿐 이 라네

·백년언약 화초
저 건너 산간초당아 초당을 지어서 놓고는
백년을 기약하고 백년언약 화초를 심어놓더니
금년이별 화초만 만발하였구나

·큰애기 무덤
밤이나 낮이나 밤낮으로 숫돌에다
낫을 쭉쭉 갈아 젊어지고
지게를 젊어지고
저 건너 산천초목에 올라가서는
큰 얘기 무덤으로만 쑥대밭 벌초 간다

·우리님 뿐
두견이는 목을 안고 꾀꼬리는 사슬을 비고
공한양월 두견성은 호적지 몽은
다만 생각이 우리님 뿐이로구나.

·등장가세
하나님 전에 등장가세
요내면약은 다리로 몇날몇일 걸어서
한양성중에 들어갈까
쇠부지탱이가 다 닳아지도록 걸어
한양성중에 들어가서
젊은신네는 늙지를 말자고 등장가세
늙으신네는 죽지를 말자고 등장가세

·백 발
여보소 젊은 소년네들아
우리도 잊그제께는 젊은 소년이더니
백발을 보고 반절을 마소
늙은양은 서럽지 않지마는
세는양은 설잖으네

·백발의 원수
원수가 따로 있냐
검은머리 회어진게 원수요
원수를 잡자하니 질퇴를 타고서
망치를 한손에 들고서 원수를 찾아보니
한손에는 갈퀴들고 긁어봐도 보이질 않네

·시집살이
산중살림 못하겠네
앞산도 첩첩 뒷산도 첩첩한데
요내 가난살이 말도 많네
기왕일랑 못살고 보면 백원상이나
불러놓고 보자.
울고나 갈 데를 뭐 하러 왔을까
갈라며 갈꺼나 말라면 말꺼나
엉거주춤 섰구나
망상망상 그리구나
기왕일랑 갈라거든
하루저녁이나 자고나 가소

·이 별
정들고 못살기는 화류기 종사요
기어이 불씩은 회중기 본이요
정들었다 실등격 말으라
오는지 가는지마라 정들여 놓고
이별이 잦아지면 별말이 많을 텐데

·황 새
황새덕새는 무삼일로 어디 갔다 언제 왔는가
만경 갔다 이제 왔는가
만경 갔다 조반이 늦었는가
점심이 늦었는가 어디 인제 왔느냐
조반이 늦은 게 아니라
수양버들 청처진 가지 그늘이 좋아서
자고 이제 왔지요

·삼방구
삼방구야 담방구야 너그국이 좋다더냐
조산지방을 뭐 하러 나왔느냐
우리국도 좋지마는 조선지방의 담방구지
한조마니 담방구지
마이산 꼭대기에다 시르르 던져놓고
속잎 나고 곁잎나고 일취월장하여서
키워가지고 장두칼로 널어 말려서

영감도 한쌍지 총각낭군도 한쌍지
곱돌하리다 피워놓고
영감도 한대 총각낭군도 한대

·자든 침방
자든 침방을 들어갈 제 향단이 붙들려
이 리 비 틀 저 리 비 틀 정황 없이 들어갈 제
안석 을 후려잡고 방성통곡 울음 우는 모양은
사람의 자식으로는 차마 볼 수 없다.

·꿈
꿈아 꿈아 무정한 꿈아
무정하고도 야속한 꿈아
오시는 임을 보내지 말고
잠든 나를 깨워나 주소

·가슴속의 불
행초목에 붙은 불은 새우장마다 끄련마는
요내 가슴속에 붙은 불은
약수나 장마라도 막무가넬세

·상추 씻는 아가씨
나주 영산 소내기 시암가에 앉아서
상추 씻는 저기 저 씨악씨는
상추잎새길랑 자네하고
상추뿌리똥일랑 나를 줍소
상추뿌리똥 값은 얼마인가
상추뿌리똥 값은 그만두고
자네 서방님 하루 저녁만 빌려주소

·연캐는 처녀
연못가에 연당산에 연캐는 저 처녀야
연밥일랑 내따줄께 내품안에 잠들거라
잠들기는 어렵지 않아요
연밥따기가 어려워요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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