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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4 | 연재 [교사일기]
참교육의 현장우리들의 이야기
이우송 전 영생고 교사(2003-09-08 17:31:37)

교직생활을 시작하고 난 뒤 첫 담임을 하게 되었을 때의 일들이 가끔 생각난다. 3학년을 맡게 되었는데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전해에 2학년수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반 아이들의 품성이나 신상에 관해 얻어듣고자 명단을 들고 지난해 담임이었던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아이들이 새 학년에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정보가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이 작업이 별 의미가 없는 것임을 곧 깨닫게 되었다. 명단을 엿보던 사람들이 몇 아이들 이름을 입속에서 되뇌이더니 3학년 중에서 가장 골치 아픈 녀석들이라며 1년간 고생 좀 하게 될 것이란다. 이런 말들은 아이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보다는 고정된 편견으로 더 나쁘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뒤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가 첫 인사를 나누었다. 이름을 불러 세워 한사람씩 얼굴을 다 익혀 보았으나 문제를 일으킬 성싶은 아이는 없는 것 같았다. 다들 단정하고 호기심 어린 얌전한 표정들이었고 웃음 띤 모습으로 무언가 말하려는 아이도 있었다. 문제는 학생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교사에게도 상당부분 있을 것 같았다. 거짓 없이 진실된 마음을 주고 성실히 임하기만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교실을 나왔다.
우리 반 가운데 선생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문제성 있는 아이니까 조심해야 된다던 병철이가 있었다. 녀석은 드럼 치는 것을 즐겨했다. 시간만 나면 조용조용히 두손으로 장단을 맞춰가며 책상머리를 두들겨댔다. 빈 도시락도 리드미컬하게 잘도 두드렸다. 그때에는 교련검열이란게 있었다. 거기에 대비하여 며칠동안 진을 빼가며 전교생이 행진연습을 하게 되었는데 큰북과 작은 드럼을 이용하여 발걸음을 맞추게 하였다. 어느 날 연습이 끝나고 난 뒤 병철이를 불렀다. 공부는 물론 학교생활에 아무런 흥미가 없던 그 애한테 무언가 일거리를 만들어 줄 궁리를 하던 참이었다. 운동장에서 드럼을 치던 아이들의 솜씨가 서투른 것 같으니 네가 대신 쳐보지 않겠는가고 물었다.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저도 드럼을 치고 싶어 부탁을 드릴까했지만 선생님들이 인정해 줄 것 같지 않아 그만두었다고 하며 기뻐하였다.
기왕 드럼을 배우기로 작정했으면 그 분야에서 1인자가 되어야 한다고 격려해 주었다. 교련 연습시간만 되면 병철이는 운동장에 나가 신나게 드럼을 쳤다. 이 일을 기회로 녀석은 학교에 오는 것을 재미있어 했고 학급일에도 적극적이며 협조적인 아이로 변화해 나갔다. 자신도 남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는 면이 있고 또 그것이 인정되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끝내 병철은 대학까지 마쳤다. 그러면서도 그 일을 직업으로 택하여 생활하고 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도 보람 있게 느껴지는 이 아이들과의 1년간의 생활이 요즈음 내 주위에서 발생하기도 하고 만연되기도 하는 교육문제들을 생각하다 보면 꿈속에서 본 남의 이야기처럼 여겨져 안타깝기 조차하다.
첫째는 교육제도에 관한 문제이다. 과열과외가 망국병이라 하여 불법화하고 대안으로서 고등학교를 평준화 시킨 지 17년, 해결할 수 있는 특정지역의 문제점을 제외하고는 무리없이 잘 정착된 게 사실이다. 이런 제도를 하루아침에 갑자기 해제시킨다는 발표가 있은 후 시내의 대부분의 중학교들이 이에 영향을 받아 1학년까지도 수업시간을 늘리는 등 법석이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더욱 늘게 될 것이고 학교간, 학생간, 교사간, 계층간에 위화감도 커지게 될 것이며 입시지옥화현상과 과열경쟁은 지금보다 더 심각하여져서 전인교육은 뒷걸음 질 치게 되고 인간성 회복의 합창은 더욱 듣고 싶어 할 것이다.
둘째는 학교현장의 문제이다. 대다수의 교사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 비교육적인 운영체제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문제점들 때문에 양심적 갈등을 느끼고 있다. 심지어 알게 모르게 국민정신까지 멍들게 하는 이런 잘못된 교육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해서는 교직의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이 절대필요하다는 것을 공동 인식하고 순수한 열정으로 교육운동을 펴고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일정수업을 끝내고 학생들을 평가한 후에 정해진 수준이상의 아이들은 혼자서도 다음 단계의 학습올 해 낼 수 있다고 판단하여 집으로 돌려보내 제 계획에 맞는 생활을 하게 한다고 들었다. 이해하지 못한 집단만 처음 정해진 수준까지 다시 끌어올리기 위하여 반복 학습을 실시한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 학교에서의 보충수업이라 했다. 그런데 우리는 본수업도 소화시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별도의 보충수업비를 받고서는 일류학교에 진학할 가능성이 있는 우수학생에 초점을 맞추어 수업을 진행하는 들러리식 보충수업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학원이 아니다. 민족, 민주, 인간화의 참교육을 해 나가야 되는 곳이다.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하여 민족자주성을 일깨워야 함에도 밤늦게까지 자율학습 아닌 타율학습을 실시하는 것은 노예근성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남들이 눈에 띄지 않고 혼자있게 되면 불안해 어쩔 줄 몰라 한다.
동구라파 쪽에서 불기 시작한 민주화의 개혁바람이 지구촌을 휩쓸고, 지구세상을 영원히 두 쪽으로 갈라놓는 상징물처럼 설치됐던 독일의 분당장벽이 동서 냉전의 탈 이데올로기의신호탄인 양 봄눈 녹듯 철거되어 양독일간에 민족통일의 의지가 한 단계씩 착실하게 접근되어가고, 모든 나라들이 더 나은 자국의 이익과 발전을 위하여 과학기술 혁신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 지식, 정보, 상품 퉁이 쏟아져 나와 그것들을 이해하고 적용하기에 정신을 차릴 수없게 된 세상에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시류에 편승해서 힘없는 교사들에게 특정 일간지를 강매하고, 전교조 교사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나누는 곳에 장학사와 형사를 보내 감시하게하고 각서니 사유서를 써 내라는 어느 시골 교육장, 교사들에게 배달된 개인 서신을 검열하는 교장, 결국은 세인들의 웃음거리가 되고만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지만 결국은 우리들이 해결해 내야 할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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