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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 | 연재 [이십대의 편지]
청년은 피로하다
손호영(2013-01-04 15:05:20)

빡빡한 삶의 연속이다.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중장년층들은 일터에서 쫓겨날까 두려워 노심초사한다. 청년이건 어른이건 엎치락뒤치락, 피가 마르는 삶이다. 나라에서는 뭔 놈에 돈을 그리도 많이 걷어 가는지, 소득은 적은데 세금 납부하라고 독촉하는 종이 쪼가리들이 우편함에 가득하다. 아주머니들은 그놈에 물가 때문에 장보기가 두렵다고 한다. 누구의 말마따나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이다.

기억에 남는 책이 하나 있다. 『굿 워크』라고, 1970년대에 세상을 떠난 어느 경제학자가 쓴 책이다. 보통 경제학자들이 쓴 책은 내용이 복잡하기 마련인데, 『굿 워크』의 저자인 에른스트 슈마허는 환경경제학자라 불릴 정도로 환경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이 기억이 남는 이유는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트 카뮈의 말을 인용한 머리말에 있다. “노동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돼 죽어간다”

출근 시간, 지하철 입구와 개찰구, 대합실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늘어선 사람들의 표정은 ‘여긴 어딘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를 몽상하는 것 같다. 이윽고 들어오는 지하철을 타는 순간 ‘지옥철’을 실감한다. 칙칙한 지하를 달리는 전동차안의 사람들은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에 놓인 부품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매일 반복적으로 대중교통을 통해 집과 일터를 오간다.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비록 삶이 남루할지라도 조금만 참으면 된다는 기대를 갖고 살아가는 것일까? 본 코너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행복에 대한 개인적인 주절거림이다.

대한민국이 ‘돈이 지배하는 사회’로 전락한 건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제 아무리 천하고 더럽더라도 고급 외제차 끌고 다니면 아무 말 못하는 게 대한민국 사회다. 하지만 직업에 귀천 없다고들 하는데, 실질적으로 돈을 만지는 증권맨과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삼성맨들은 우리사회에서 늘 동경의 대상이다. 모든 인맥을 다 동원해서라도 꼭 들어가고 싶을 것이다. 돈 뿐만 아니라 지위라는 기득권도 얻을 수 있으니까.

“너는 무엇을 하기에 그리도 자신만만하냐”라는 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이들을 깎아내릴 의도는 없다. 하지만 많이 주는 만큼 부려먹는다고, 실적을 비롯한 말 못할 스트레스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스트레스 안 받는 직장인 없겠다만, 한번은 삼성과 견줄만한 기업에 다니는 친구 녀석이 내게 “돈은 많이 벌지만 쓸 시간이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은 한 적이 있다. 알베르트 카뮈가 말한 ‘영혼 없는 노동’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사실 주변만 보더라도 영혼 없는 노동을 하는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떡고물 없을까 하고 빌붙는 변절의 정치인들, 재벌의 비자금 ‘탈세’ 편법 상속을 덮느라 거짓말하기 바쁜 대기업 홍보 책임자, 콧대 높기로 유명한 의사들 상대로 발품 파는 제약회사 영업사원, 약점 잡아내고 협박해서 기사를 광고로 엿 바꿔 먹는 사이비 언론까지. 사실 따지고 보면 이들이야 말로 영혼 없는 노동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한 때 소셜테이너로 유명한 박원순 시장의 말이 떠오른다. 한 케이블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미 해탈했다”라면서 “경쟁자를 뚫으면 또 다른 경쟁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노동하니 청년들의 취업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좋은 조건과 안정된 직장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서울 노량진에서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건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일자리 몇 백 만개 만든다고 하지만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앞에서 언급한 『굿 워크』의 결말은 “신경만 괴롭히는 멍청한 노동을 거부하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한다. 요즘 아파트 값에 사교육 거품에 돈 쓰는 일로 가득한데 굶어 죽으란 얘기인가. 물론 아니다. 우리 인간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쉽게 말해 영혼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노동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진지한 사색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품위 있는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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