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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 | 연재 [서평]
강렬한 이미지에 포획된 기억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가리 저/ 김남주 역. 문학동네
백다흠(2013-02-05 10:37:40)

작년 겨울 어느 일간지에서 페루에 관련된 여행 기사 하나를 읽었다. 단연 고대문명을 압도하는 자연의 장엄함을 찬탄하는 문장들이 쌓여 있었고, 페루의 수도 리마 주변의 트레킹 코스와 사막 투어 등 ‘만약 그곳에 간다면’을 전제하에 여행 루트 또한 자세히 소개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 아주 짧은, 지나쳐도 되는 한 문장이 내 눈에 들어와 박혔다. “로맹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서처럼 더이상 새들은 페루 리마 해변에 날아가 죽지 않는다. 거기에 눌러살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그곳에서 늙어 죽는다……”로맹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모르는 독자라면 그냥 휙 지나칠 수 있는 한 줄. 젠체하는 내게는 좀 어림없는 일이었다. 아니 그래서 꼭 그렇게 리얼리얼 해야 되겠습니까? 기자 선생님? 환상 뒤에 숨어 있는 리얼리티는, 사실 그걸 대면할 때면 언제나 피곤해진다. 동시에 현실의 한 단면을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일은 또한 좀 신경질이 나고. 페루에 가면 정말 리마 해변에 날아가 죽는 새가 있으면 어쩔 건데 응? 하며 시비를 걸고 싶었다. 그냥 좀 놔두지 그걸 또 그렇게 밝혀! ‘사실은 사실입니다’하는 뭐 이런 보도정신밖에 모르는 감성 메마른 xx가 다 있어,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기도 했다. 더 아쉬운 건 끝내는 새들이 그 해변에 날아가 죽는 이유를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섬에 눌러살고 있는 새들이 죽는 건 그냥 자연현상의 일부일 테니까. 그런데 도대체 왜 로맹가리는 새들이 그 해변에 날아가 죽는다고 했을까나. 지금도 생각해보면 궁금하다. 새박사 윤무부박사님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질문마저 필요없게 되었다. 새들은 이제, 그냥 늙어 죽는다. 슬프다. 산타클로스가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처럼. 사실 이유는 없을 것이다. 새들이 페루 리마 해변에 날아가 죽는 것에는.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소설 도입부 문장을 살펴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렇게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새들은 이곳에 와서 죽는다.” 마치 때가 되면 그 새들이 죽으러 그 해변 모래언덕을 찾는 것이다. 계절이 변하고 나뭇잎이 떨어지듯, 개나리가 피고 지듯, 과일이 푹, 하고 땅에 떨어지듯, 눈이 내리고, 비가 오고, 다시 파릇한 새싹이 돋듯. 그런걸게다. 새들이 페루 리마 해변에 날아가 죽는 것은.

로맹가리의 절세(絶世)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대학시절에 읽었다.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잘 읽히지 않는다.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익숙지 않은 풍경, 뭔가 보여지지 않는 사람과 사람간의 단절의 표현, 인간 심연을 건드리는 대사 등등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나는 술에 취하면 그 새들이 이유 없이 날아와 떨어져 죽는 그 리마 해변을 떠올렸다. 모래사장을 검게 물들이고 있는 새의 무덤. 그 검은 장막 같은 무덤에 좌초된 한 여자. 조금은 시적이고 조금은 몽상적인 풍경. 물가로 밀려온 고래의 잔해, 사람의 발자국, 흰빛을 다투고 있는 먼바다의 고깃배, 모래언덕, 바다, 새의 무덤. 그런 상상을 하면, 왠지 모르게 세상이 끝난 거 같아 서글펐다. 스무 살. 인간에게 고독이 뭔지 슬픔이 뭔지 허무가 뭔지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될 그때에, 나는 조금은 세상 끝의 풍경을 본 것만 같아서, 희망의 끝의 풍경을 안 것만 같아서 굉장히 쓸쓸했고 때론 두려웠다. 풍경은 늘 우리에게 멈춰 존재한다. 풍경은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눈과 마음이, 감정이 움직일 뿐이다. 우리는 그 풍경을 이미지로써만 기억한다. 풍경(이 낱말이 줄곧 자연 경관만을 의미하진 않는다)을 맞닥뜨렸을 때, 그 풍경은 대개 감정을 동반한다. 고즈넉하다. 쓸쓸하다. 아름답다 등등. 대부분의 감정이 그 풍경을 대신한다. 한데, 이미지는 널뛰고 출렁거리고 흔들리며 묵묵하지 않다. 몇 년 만 지나면 기억하고 있는 풍경에 대한 감정은 변한다. 어제 봤던 게 오늘 보면 또 다르다. 이미지는 ‘포착’하는 게 아니라 불시에 ‘포획’하는 것이다. 강렬한 이미지는 강렬히 기억 속에 포획된다. 하나의 이미지는 기억 속에서 고유한 하나의 감정을 포획한 채 머물러 있다. 로맹가리의 단편소설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는다. 무엇이 포획된 채 내 기억 속에 머물러 있을까. 세상의 끝의 풍경, 새들의 무덤, “계속 이런 식으로는 살 순 없어”라고 푸념하는 소설 속 영국인의 건조한 목소리…….그런 인간 본연의 고독한 것들의 이미지가 내 기억 속에 강렬히 포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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