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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5 | 연재 [문화저널]
향토작가의 향토장편
한벽루의 이별, 그 기억의 저편
박남준 시인(2003-09-08 17:45:02)

산천은 이제 더 이상 의구할 수 없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간은 간데없다는 어느 옛 시인의 시구는 그야말로 옛날의 일일뿐, 이제 산천은 더 이상 의구할 수 없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밀려나고 깎여지고 현대화라는 시멘트의 죽은 옷을 입은 채…….
한벽당, 즉 한벽루는 그 깎아지른 바위 벼랑 아래 흐르는 옥처럼 맑은물이 바위벽에 부딪쳐 부서지는 정경이 마치 벽옥한류 같다해서 한벽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는데 그 정경이 마치안개에 감싸인 선인야유와 같았었다고 한다. 한벽당에서 굽어보는 물안개와 무지개는 기린봉 위에 떠오르는 달, 해질 무렵에 들려오는 남고사의 종소리, 전주 남천에서 아낙네들이 빨래하는 풍경, 덕진방죽의 연꽃, 위봉사의 외줄기 위봉폭포, 비비정 아래 내려앉는 기러기떼, 붉은 노을 등지고 동포로 돌아오는 윷단배와 함께 전주팔경에 속한다. 그러나 지금의 한벽루는 그 수려한 정취를 앓고 몸살을 앓고 흐르는 전주천을 굽어보며 말없이 서있다.
작년 초 여름이었다. 날이 점점 더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한벽루를 자주 찾기 시작했다. 후덥지근한 지하실의 잠자리에서 애써 몸을 뒤척이고 있다보면 문득 떠오르는 시원한 한벽루의 강바람과 목욕은 아예 빛나는 유혹이었기 때문이다. 오무가리탕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개울 아래 작은 다리, 그곳은 이 더운 여름밤 시원한 강바람과 더불어 개울 물 속에 몸을 담고 한낮의 땀을 씻어 내기에 아직은 괜찮은 곳이다. 저만큼 오무가리탕집들의 불빛이 보이는 다리 밑에는 벌써 두어 사람이 개울에 몸을 담고 목욕중이다. "비누 좀 써도 될까요" 나는 그들 가까이 다가가 비누를 빌렸다. 심봉사가 더운 여름을 물가를 찾아 황봉사와 눈이 맞아 도망간 괘씸한 뺑덕이네 생각도 잊어버린 채 "에이 시원하고 참히 좋다" 소리소리하며 목욕을 하듯 조금은 물비린내가 나긴 했어도 한벽루에서의 목욕은 거참 시원하고 참히 좋았다. 목욕을 마치고 나는 다리 위에 누워 맑게 개인여름 밤의 별자리를 바라보았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그랬었지. 먼 어린 날 쑥대를 말려 모깃불을 피우고 우리는 명상에 누워 외할머니의 시원한 부채바람을 타고 꿈꾸듯 별나라 여행을 가곤 했었지.
한벽루에 올라갔다.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태워 물며 개울물 소리를 듣는다. 달 뜬 여름밤, 하늘의 높은 달이 낮게나마 흐르는 개울물에 내려와 출렁인다. 춤춘다. 옛날 옛날 선녀들도 그러 했으리라. 이땅 곳곳 어디를 가도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면 선녀탕이라 이름 붙여진 곳, 사람의 마음이란 예나지금이나 다그러했으리라. 그때였다. 나의 추억과 상상의 아름다운 전설을 비집고 들려온 소리, "어이!" 나는 두리번거렸다. 저쪽 작은 정자에 작은불씨 하나, 담뱃불이었다. 사람이 있었구나. 그러나 이 시간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을 리야. 날 부르지는 않았겠지. 나는 다시 눈길을 돌렸다. 한벽루 앞을 뻔뻔스럽게 가로질러 난 큰 다리를 바라보았다. 쏜살같이 질주하는 차량들의 불빛과 소음, 이제 한벽루는 옛 추억에서나마 머물러 있었다. 그리운 추억 저편에서나마 빛바랜 채 더 이상 잊혀지지 않으려 몸부림 치며 서 있는 것이다. "어이!"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다시금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다시 예의 작은 정자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것은 분명 나를 부르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그쪽을 향해 두어 발자욱 걸음을 옮기며 "저 말입니까?" 정자 안은 달빛이 들지 않아서 가까이서가 아니면 사람의 얼굴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슨 일이신지요."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 그 많은 목소리를 더듬어 보았지만 그는 나의 기억 속에 있지 않았다. 그는 벌써부터 이곳에 와 있었으며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웬 젊은 사람이 올라와서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태워 물고 있는데 마치 무슨 깊은 사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조용히, 더군다나 그 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였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이런 사람이면 술 한잔하자고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나를 불렀다고.  좋지요  나는 쾌히 승낙했다. 바닥이 좀 지저분하다고 그는 골판지 조각을 건네며 깔고 앉으라 권했다. 생면부지의 첫 만남이 거의가 그러하듯 그는 술잔을 건네며 나의 고향이며 나이 등을 물어왔고 내가 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 술잔이 몇 순배 오갔을 때이다. 불쑥 그가 내게 물었다. 이 술과 안주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아느냐고.
내가 어리둥절해하며 있을 때 그는 또 오른쪽 다리를 내 앞으로 내밀며 보이는 것이었다. 그의 오른쪽 다리는 의족이었다. 그는 다리 한쪽을 못쓰는 불구였던 것이다. 술과 안주는 그가 오늘 하루 동안 전주 시내 이곳저곳에서 구걸하여 얻어온 눈물겨운 것이었다. 나는 그때서야 그의 뒤편에 놓인 비닐봉지들이 눈에 보였고 그 중에는 밥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도 무슨 반찬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봉지도 보였다. 이를테면 그가 한쪽다리를 삐걱거리며 절며 걸어 별별 천대와 멸시의 눈길을 참아내며 얻어온 그의 눈물과 서러움들을 마시며 먹었던 것이었다. 내가 한동안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그가 마음이 상한 듯 이런 것 들을 먹었다고 기분 나쁘냐고 물었다. 내가 몇 번이나 고개를 가로저으며 "음식에 귀천이 어디 있겠습니까. 즐겁게 잘 먹었습니다" 하고 웃자 그제서야 그는 형형한 눈빛을 풀었다. 우리는 한 병의 소주를 다 비우며 서로의 살아온, 살아갈 이야기를 나누며 깊은 여름밤을 보냈다.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오늘 술 잘 마셨습니다." 그는 사오일을 이곳 전주에 머물다 떠날 예정인지 그때까지 잠자리를 이곳 한벽루로 정했다고 한다.
그가 떠나기 전에 술을 받아 가야할 텐데, 벌써 삼사일째 오락가락 여름비가 질척였다. 밤이 이슥하도록 비는 부슬거리고 나는 다가동의 축축한 지하실 방에서 술내기 화투판을 벌이는 친구들에게서 오천원을 빼앗다시피 하여 소주 두병과 쥐포 몇 장, 그리고 풋고추와 된장을 비닐봉지에 담아 서둘러 택시를 탔다.
그와 약속한 날짜가 지나갔다. 며칠째 비가 계속되었는데 잠자리가 불편해서 어디 다른 곳으로 잠자리를 옮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지 않았다. 소주 한 병을 꺼내 술을 마신다. 반병을 다 비우도록 그는 오지 않았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가야 할까? 윗전에 그의 중얼거림이 들리는 듯 하다. "그러면 그렇지. 저깐 놈이라고 다를 것이 뭐 있겠어. 누가 나 같은 병신하고 술잔을 기울이겠어. 뭐신가 뭔가 글 쓴다는 놈은 별수 있간디" 그의 비웃음이 아른거린다.
그는 이곳저곳을 떠돌며 다방 같은 곳에 들어가 라이타라든가 면도기, 시계 등을 팔고 다니는 행상이었다. 광주가 고향인 그는 혈육이라고는 하나뿐인 동생이 사는 광주를 찾았다. 장난감총, 과자, 못난 큰아버지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반갑게 목에 매달리며 안겨 올 고사리 같은 그의 조카들의 손에 쥐어줄 선물꾸러미, 그러나 광주역에 도착해서 보니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아, 어떤 놈이, 어떤 못된 도둑놈이……. 그는 동생 집을 갈 수 없었다. 조카들의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들 보고 싶었는데, 큰아버지 소리도 듣고 싶었는데, 이제 그의 생명 줄인, 목숨인 가방마저도 잃어 버렸다. 또 다시 얼마나 구걸을 해야 하나, 또 다시 얼마나 많은 날들을 서럽게 떠돌며 한 푼 두 푼 비웃음과 모멸을 받으며 다시 일어설 날을 기다려야 하는가. 그렇게 떠돌며 그는 이곳 전주를 찾았었는데…….
나는 남은 술과 안주를 비닐봉지에 넣어 한쪽 구석에 두고 한벽루를 뒤로했다. 여름비가 그의 원망처럼 그치지 않았다. 그 날 밤 나는 교통사고가 났고 지난 여름 내내 두 달이 넘도록 병원생활을 해야 했다. 지금도 나는 한벽루를 자주 찾는다. 달 뜬 밤이면 더욱 좋고 부슬부슬 시름겨운 부슬비 오는 밤이라도 좋았다. 그때마다 "어이" 하고 날 부르는 소리, 나는 또 담배를 그렇게 태워 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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