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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4 | 연재 [김의수의 상식철학]
열린 성(性), 열린 사고
김의수 전북대 명예교수(2013-04-05 11:58:09)

독일 유학 가서 받은 두 번째 문화충격은 성 개방이었다. 유럽에 성이 개방되어 있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으로 대하고 보니 충격이었다. 기차역에는 포르노 영화관이 있었고, 여름에 여학생들은 캠퍼스 잔디밭에서 팬티만 입은 채 엎드려 일광욕을 즐겼다. 그리고 연애하는 남학생들은 여학생 기숙사에 와서 동거하다시피 했다. 애인과 손을 잡고 등교하던 남녀는 캠퍼스에서 각자의 강의실로 헤어지는 지점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길게 키스를 나누었다.

‘문화’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일로 받은 충격은 점차 진정되었고, 문화 차이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우리 중에는 저 정도 분위기라면 여기저기서 성폭행 사건이 터질 거라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개방된 성문화는 오히려 그런 것을 예방해 준다. 성이 금지된 나라에 살던 나는 일광욕하는 여학생을 조금 더 오래 감상하고 싶어서 타고 가던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끌고 걸어갔다. 동양을 생각하며 다시 돌아보니 정부에서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통제한다는 점이 다를 뿐, 건강한 사람들이 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고 욕구 충족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성이든 이데올로기든 문화는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폐쇄적이면 거기에 따른 부담이 있는 것이고, 개방적이어도 마찬가지다. 결국 구성원들이 원하는 만큼,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조정하고 정리하여 생활해 나가는 것이다.미국은 섹스 대신 총기를 허용하고, 유럽은 총기를 금하고 섹스를 허용했다고 말하지만, 왜 그렇게 됐을지도 따져 볼 일이다. 철학적 인간학은 인간이 폭력과 평화의 양극단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고, 맑고 고상한 정신과 욕망과 열정의 육체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총기 소지는 자기보호에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엄청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총기 관련업자들의 이기주의를 국민여론이 압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테러를 일삼는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지금도 순결주의를 강요하고 있지만 이미 오래전 킨제이보고서는 미국인들의 성 생활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보여준 바 있다. 한국의 성문화가 기형과 왜곡으로 뒤덮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도시화, 현대화의 급격한 진전도 원인일 테지만, 독재자들이 외화수입을 올린답시고 기생관광을 허용하고, 비판적 사회 관심을 돌리기 위해 퇴폐적인 성문화를 조장했기 때문이다. 장발과 미니스커트는 단속하면서 룸살롱 접대문화는 허용하고, 전통윤리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주입시키면서 권력자들과 기업인들은 제왕처럼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따로 놀았기 때문이다.

하루를 살아도 제왕처럼?
인구가 많은 서울에서 오솔길을 찾아 홀로 조용히 산책을 즐기거나, 우아한 카페에 가서 호젓한 분위기로 독서와 음악을 즐기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서울보다 지방이 문화적 삶의 질이 높을 수 있다. 일상에서 우아하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곳도 인간다운 환경에서 가능할 것이다. 많은 남자들은 로마 황제처럼 원하는 대로 맘껏 욕구를 충족시키기고싶어 한다. 그러나 건강한 사회라면 그런 것을 허용하지는 않는다.한국의 정치꾼들과 장사꾼들은 조폭들과 손을 잡고 전 사회를 성매매화 시켰다. 성이 개방된 어떤 선진국도 학교나 주택가 주변에 성매매가 가능한 모텔과 술집을 인가하지 않는다. 대학생과 직장인이 우리처럼 성매매를 가볍게 생각하는 나라는 드물다. 성매매의 만연은 남녀의 인격적 만남을 어렵게 하고, 개방적이고 아름다운 성문화를 불가능하게 한다. 성이 개방된 나라도 고민은 있다. 그래도 그들의 고민이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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