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3.4 | 연재 [꿈꾸는 학교, 행복한 교실]
인권을 두고 협상하지 말라
소명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2013-04-05 11:58:40)

전북학생인권조례의 기약 없는 표류
내가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지도 2년이 넘어 가고 있다. 지금은 비청소년이 되어 활동을 하고 있지만 2년 전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당시 내가 활동을 시작할 무렵에는 여러 지역에서 소위 진보교육감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당선됐고 전북에서도 김승환 교육감이 진보교육감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당선이 되었다. 당시 김승환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겠다는 공약을 걸자 학교 분위기는 들떴다. “이제 우리도 두발규제 없어지고, 교사가 학생들 못 때리는 거야?”, “이 참에 우리 담임한번 교육청에 찔러볼까?”, “예배는 어떻게 되는 거야? 예배도 이제 안 가도 되는 건가?” 마치 금방이라도 학교가 바뀔 것 같은 기대에 차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진보교육감이 당선이 된 지 어느새 3년째가 돼가는 지금도 여전히 전북학생인권조례는 표류 상태이다. 이 표류 상태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몇 번이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 2011년 9월에 조례안을 제출했으나 교육위원회에서 부결됐고, 작년 10월에도 수정안을 제출했으나 교육위에서 보류 처리됐다. 그리고 올해 2월 많은 권리조항이 삭제된 채 발의된 장영수 의원안과 교육청 수정안이 교육위원회에서 둘 다 부결되며 전북학생인권조례는 또 다시 기약 없는 표류를 하게 될 상황에 처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힘든 이유
학생인권조례는 언제 제정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됐지만 학교 안에서의 학생들의 학생인권에 대한 기다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굳이 인권으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내가 그랬고, 내 친구들이 그랬고, 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된 많은 학생들도 그렇고, 모두들 학교를 다니는 게 너무 힘들다며 학교가 변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학생들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원인이다. 지금 학교의 풍속도를 보자. 내가 다녔던 학교는 미션스쿨이었고 매주 금요일 강제로 모든 학생들을 예배에 참가시켰다. 예배에 빠지고 학교 곳곳에 숨어있다 교사한테 잡히면 처벌을 받았다. 2011년, 전주의 한 학교에서는 한 학생의 머리가 길다고 바리캉으로 강제삭발을 하고 체벌한 적도 있다. 우리 단체에서 진행한 토론회에서 만난 한 학생은 학교는 소통이 없는 공간이고, 학교는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치외법권 지대라면서 한탄했다.

인권침해에 무감각한 우리 사회
이런 학교의 모습을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식상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학교의 모습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며, 직접 겪어보지 않았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사람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 중 인권과 관련 없는 것들이 무엇이 있겠는가? 학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심각하고 명확한 인권 침해들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다양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이야기들이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것, 또는 식상하고 익숙한 것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것은 우리 사회가 학교 안에서의 인권침해에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그리고 학생들은 인권침해를 당해도 괜찮은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도 인간이라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사실에 대한 고발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도 인권이 있다는 선언이기 때문에 학교를, 교육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고, 학교 안에서 가장 권리가 없는 존재였던 학생들에게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학교 안의 지형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지금까지 학생인권에 관한 법률은 기껏해야 초중등교육법에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단 한 문장만이 있었으나, 학생인권조례는 구체적인 학생인권의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하루하루가 즐거운 학교를 위하여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이 보장받아야 할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를 명문화 한 것 뿐이다. 법률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학생이 그 권리들을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 당연한 일은 수많은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이런 반대의 목소리는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있더라도 사실상 인권침해를 방조 내지 허용하겠다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반대논리들을 일일이 들어가며 반박하는 것은 지면의 여유도 없고 그동안 수많은 논쟁들이 있었기에 생략하겠다. 다만 한 가지만은 꼭 덧붙이고 싶다. 인권을 이야기할 때 이것을 줘도 되고 안 줘도 된다는 선택지가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부결된 장영수 의원의 학생인권조례안도 마치 인권을 토론이 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수많은 권리 조항들을 삭제하여 누더기가 된 조례안이 됐다. 인권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가 아니라, 인권을 보장한다는 것을‘원칙’으로 놓고 어떻게 하면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3월 중순이 된 지금 대부분의 학교들은 개학을 하여 학생들은 새학기를 맞이했다. 학생들이 가기 싫은 학교를 다시 꾸역꾸역 가야만 하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이 온 것이다. 어떤 지역의 학생들은 이미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인권의 싹이 움트기 시작하는 학교를 다니고 있다. 학생인권 보장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며 사회적 요구이다. 전북에서도 학생들의 절규와 고통을 직시하고 학교 안에서 인권의 싹이 움틀 수 있는 날이 조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하루 빨리 더 이상 학생인권조례 운동이 필요 없어지고, 만나는 학생들로부터 학교에 다니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