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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5 | 연재 [139회 백제기행 예술기행 열다섯]
일상의 반란, 상상과 현실사이
서울시립미술관 ‘팀버튼展’ | 명동예술극장 연극 ‘Love, Love, Love’
김다희 마당 기획팀(2013-05-02 16:01:39)

새내기 기획팀의 3월 예술기행
입사 후 처음으로 준비한 예술기행. 버스 안에서 늘 전화로만 통화하던 분들의 얼굴을 한 분 한 분 보니 그렇게 고맙고 다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스텝의 입장이었지만 전주가 아닌 어딘가를 간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떴다. 이번에 기획팀에서 준비한 열다섯 번째 예술기행은 ‘일상의 반란 상상과 현실 사이’라는 주제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팀버튼展’과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Love, Love, Love’를 관람하는 일정이었다. 둘 중에서 내심 기대한 것은 연극 ‘Love, Love, Love’였다. 연극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이상우 연출가와 대중들에게 익숙한 배우 전혜진, 이선균의 만남이 궁금했다. 일정은 서울시립미술관의 팀버튼전으로 시작됐다.

팀버튼展, 860개의 강렬한 속삭임
서울시립미술관에 들어서니 팀버튼스러운 거대 조형물이 시선을 압도했다. 개미떼 같은 인파에 비로소 말로만 듣던 팀버튼전의 인기를 실감했다. 백제기행 일행은 단체로 예매를 해놔서 15분을 기다리고 들어갔는데 다른 사람들은 2시간을 대기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20년 전통의 맛 집이라도 2시간을 기다려 들어가면 그 맛은 아쉽기 마련이고, 전시라면 조금은 조용하고 느긋하게 보고 싶을 텐데,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팀버튼전에 열광하는 이유를 나는 금세 알 수 있었다. 팀버튼전은 크게 ‘성장기’와 ‘성숙기’, ‘전성기’ 3가지로 구분되어 있는데, 신기하게도 860점이 넘는 작품들에서 하나같이 팀버튼이 느껴졌다. 스케치부터, 영상, 조형물, 심지어 글씨까지 마치 ‘나는 팀버튼이야’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는 어느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적 의사소통에 서투른 아이였는데 괴물들도 자신처럼 오해받고 있다고 여겼다”며 “내 상상은 거기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사실 난 팀버튼의 작품은 화려하지만 공허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그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됐다. 특히 숫자 시리즈라는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숫자를 사탕 괴물이나 뚱뚱한 여자, 대포로 표현한 모습은 유머러스한데다 사랑스러웠다. 미공개 영화 ‘헨젤과 그레텔’은 아이같이 순수한 잔혹함과 색채감이 돋보여서 800개가 넘는 그림 속에서 지루함을 달래주었다. 2시간가량 전시를 관람하며 과연 그에게 그림은 뭘까 생각했다. 팀버튼 영화의 영원한 배우이자 아내인 헬레나 본헴 카터는 그가 음악을 들으며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고 말한다. 그 순간 저 먼 곳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전시장 출구를 나서며 문득 그가 진짜 예술가란 생각이 들었다. 예술가는 사소한 일상의 힘을 믿는 사람이니까.

연극 ‘Love, Love, Love’, 결코 웃을 수 없는 우리 이야기
명동예술극장은 대학교 4학년 때 공연제작실습수업을 들으며 연극 <갈매기>를 관람했던 곳이라 내게는 추억이 어린 장소였다. 오늘 볼 연극은 ‘Love, Love, Love’ 로 극단 연우무대에서 시작해 차이무의 예술 감독인 연출가 이상우와 배우 전혜진, 이선균이 만들어 낼 예정이었다. 연극‘Love, Love, Love’의 줄거리는 1967년에 만나 결혼한 산드라(전혜진)와 케네스(이선균)의 삶을 10대, 중년, 노년의 삶인 총 3막으로 보여준다. 1막은 1967년. 전 세계 최초 위성 생중계 방송 Our World에서 비틀즈가 “All you need is love”를 부르던 ‘역사적인 날, 형 헨리(김훈만)의 집에서 만난 산드라와 케네스. 열아홉의 옥스퍼드 대학생인 두 사람은 만나는 순간 불꽃이 튀고 사랑에 빠진다. 이어 2막, 1990년에는 변화를 열망하고 자유를 꿈꾸던 이상주의자 산드라와 케네스는 런던근교 레딩의 편안한 주택에서 16살 난 딸 로지(노수산나)와 14살 아들 제이미(노기용)와 함께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 중년이 된다. 딸 로지의 바이올린 연주회가 있던 어느 날, 산드라와 케네스는 이것이 자신들이 진정 원하던 삶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이혼한다. 3막은 현재.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30대 후반의 딸 로지가 어느 날 가족들을 케네스의 집으로 불러 모은다. 은퇴 후 여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는 60대의 케네스와 여전히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사는 산드라-이런 부모를 향해 로지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지금의 자신이 모두 엄마, 아빠의 탓이라고 항변한다. 연극 ‘Love, Love, Love’는 그 제목처럼 결코 달콤하지도 유쾌하지도 않다. 산드라와 케네스가 그들의 자녀와 대립하는 3막에서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모습에 극장에있는 객석에서까지 긴장감이 느껴졌다. 3막에서 로지는 자신을 한탄으로 꽁꽁 싸매고, 자신의 실망스러운 삶을 부모에게 떠넘기며 비난만 일삼는다. 부모님께 “집 사달라”, “역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아이처럼 졸라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딸 로지의 모습은 나의 모습 같았고,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2~30대의 모습 같았다. 누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녀의 말처럼 부모의 잘못일까. 모든 책임을 산드라와 케네스에게 돌릴 수는 없지만, 부모의 책임은 영 없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부분에서 아들 제이미는 자폐증 환자처럼 온종일 핸드폰에 빠져 사는 말더듬이로 소통이 어려운 아이로 비춰졌다. “제이미를 병원에 데리고 가야되는 것 아니냐”는 로지의 말에 “괜찮다”며 “똑똑한 아이다”고 자식을 감싸는 케네스의 모습은 자식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무책임한 부모처럼 느껴졌다. 연극 ‘Love, Love, Love’는 베이비부머인 부모님의 세대와 자녀들의 세대의 갈등,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내리지는 않는다. 이는 관객의 몫, 즉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극장을 나서며 백제기행 참가자들은 어느 때보다 말이 많았다. 그 이야기는 대부분 자신의 얘기 같다는 것이었다. 이 작품의 원작자인 마이크 바틀렛과 이상우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놀랐다. 집에 돌아오는 길, 팀버튼전을 보고 나왔을 땐 맑았었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렸다. 139회 백제기행은 기획자의 입장에서 아쉬운 점도 많았다. 부족한 스텝들을 불만 없이 따라와 주신 참여자 분들께 감사했다. 덧붙여 바쁜 일상 속에서 좋은 전시 한편과 연극 한 편을 보고 올 수 있어서 뜻 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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