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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5 | 연재 [꿈꾸는 학교, 행복한 교실]
학교에서 ‘엄마’를 찾는 아이들
김명희 부안중학교 교사(2013-05-02 16:02:43)

평생의 후회로 남아버린 교육
수년 전 내가 담임을 맡았던 학생의 할머니의 말씀을 들을 땐 그 말이 이토록 일반화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가정방문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온 속이야기 중, 생각만 해도 가슴 저린 이야기라며 세월을 안타까워하셨다. 뭐든 똑 부러지는 똑똑하고 세련된 할머니였다. 그녀는 자식을 너무나 엄하게 키웠다고 했다. 지능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잘나가던 아이들이었지만 도무지 살가운 정이 없이 서먹하고 대체로 일이 꼬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행복과 만족이 없는 각박한 인생을 살더란다. 그러던 어느 날 시집간 중년의 딸과 모처럼 속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딸은 할머니에게 자기에게는 평생 선생님만 있었지 엄마는 없었다며 펑펑 울었다고 했다. 엄하게 훈육만 했지 단 한번도 다른 부모처럼 따뜻하게 품어준 적이 없지 않았느냐며 살면서 내내 마음 둘 곳이 없었다고 했다. 친정이 친정같지 않고 마음의 고향이 없었다면서 왜 그렇게 냉정하게 자신들을 키웠냐고, 왜 자신들에게서 엄마를 빼앗아버렸냐며 대성통곡을 하더라고 했다. 함께 울고 난 뒤 정신이 확 깨어나는듯 했고 헛살았다는 생각이 밀려왔다는 할머니. 남들보다 더 훌륭하게 교육시키겠다는 욕심으로 늘 자식들에게 엄하게 훈계만 하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이제 와서 어떻게 할 수 있겠냐며 눈물짓는 그녀를 보고 느낀 바가 많았다.

엄마는 없고 선생님만 있는 집에 사는 아이들
요즘 엄마들이 너무 똑똑하다. ‘너무’는 부정적인 의미인데 결국 똑똑해서 탈이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똑똑한 만큼 기대치도 높고 욕심도 많다. 그만큼 아이들이 힘들다. 집에 ‘엄마는 없고 선생님만 있는 집에 사는 아이들’이 늘면서 이른바 좋은 가정환경을 가진 아이들 중 상당수가 공동체 문제를 안고 있다. 학습안내자나 훈육 정도로 엄마의 역할을 스스로 부여하고 제한하는 엄마들을 가진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메마르다. 여유가 없고 배려도 없고 끊임없이 문제를 만든다. 마치 ‘나 지금 너무 힘들어요. 제발 제게 제대로 된 관심과 사랑을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 상당수는 집에서 모범생이다. 엄마들은 애가 집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왜 학교에서는 말을 안 듣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아이들과 상담하면 하나같이 엄마 말은 거역할 수가 없다고 한다. 논리로도 밀릴뿐더러 자신들이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자신들을 위해서 너무 많이 애쓰는 걸 알기 때문에 미안해서 거역도 못하고 한창 사춘기라도 반항은 꿈도 못 꾼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꾹 억눌러 참고 학교에 와서 모든 걸 푼다. 집안형편도 어려운 편이 아니어서 기도 죽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은 특히 학교 선생님은 무섭지 않아한다. 선생님 말씀은 따르지 않아도 자신하고 별 상관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선생님이 엄마와 상담하는 것을 무척 꺼리거나 무서워한다. 그래서 부모님과 공조하였을 때 비로소 변화를 보인다.

사랑하는 방법의 차이와 집안-집밖의 차이
예전에는 사춘기 시절의 어려움을 집에서 주로 엄마에게 풀었다. 엄마는 영문도 모르고 자식에게 당했지만 늘 품어줬다. 대신 아이들은 학교를 비롯하여 집밖에서의 행동은 자제하고 조심했다. 집에서의 여유가 밖에서의 절제를 가능하게 했을까? 그리고 나중에 어른이 된 뒤 자식들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엄마의 참사랑을 깨달으며 부모, 자식 간의 끊을 수 없는 정은 공고해졌다. 지금의 아이들은 반대로 집에서는 별 문제를 안보이려 하지만 학교나 집밖의 공동체 생활에서 본인도 어려움을 겪고 다른 이들에게도 어려움을 주며 사회성에 상당한 문제를 드러낸다. 그런데 아이들의 재학시절과 졸업 이후를 쭉 지켜본 선생님들은 공부를 어지간히 하면서 엄마의 과잉통제(?)로 늘 놀지못해 학습흥미도 없고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아이들보다, 공부는 잘 못해도 엄마가 아이들을 그야말로 귀찮게(?)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인정하며 따뜻하게 안아주어 마음이 편안하고 무엇이든 호기심을 갖고 도전해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시간이 가면서 점차 성적이 조금씩 나아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성격이 원만하여 사회성도 좋고 공동체에도 잘적응한다는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자의 아이들은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고, 후자의 아이들은 행복해 한다.

‘따뜻한’ 엄마가 아이를 변화시킨다
내가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우리 엄마만큼은 끝까지 내 편일 것이라는 깰 수 없는 믿음. 이것이 성인이 된 후 어른들이 끊임없이 겪어내야만 하는 크고 작은 난관들에도 꿋꿋하게 버텨내는 가장 큰 힘이라고 필자는 굳게 믿는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어도 결국은 나를 품어주는 엄마가 있다는 것처럼 든든한 힘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학교에서도 정말로 엄마처럼 품어주는 것은 참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하고 효과 또한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 학급에 30명 안팎의 아이들이 있고, 중등은 한 교사가 여러 반을 가르쳐야 한다. 5반이면 150여명, 10반이면 300여명을 가르치면서 교사가 그 아이들에게 쏟는 애정과 관심하고, 각 집마다 가족들이 그 아이에게 쏟는 관심과 애정을 질과 양으로 따진다면 어느 쪽이 정말 좋고 필요한 것인지는 답이 나온다. 특히 엄마의 무한한 자식사랑, 그 열정과 노력을 단지 학습지킴이로서가 아닌 따뜻한 엄마로서의 역할에 바쳤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동안 경험으로 보면 1년 내내 담임교사와 교과 교사들이 협력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가 바뀌지 않는 한 많은 아이들이 변화에 더디다. 그러나 엄마가 바뀌면서부터 달라지는 아이들의 변화는 눈부시다 못해 신비로울 정도이다. 우리 아이들이 옹색하게 학교에 와서 선생님에게서 엄마를 찾고 위안을 얻게 하지 말자. 야단치기보다, 못한다고 다그치기보다 칭찬하고 격려하며 어렵겠지만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아이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집에서부터. 우리 아이들이 집에만 가면 몸도 마음도 편하고 엄마만 생각하면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가슴 따뜻해지는 아이들로 커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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