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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6 | 연재 [꿈꾸는 학교, 행복한 교실]
오월처럼 끄릿끄릿 연중으로 행사를 하라
이용범 백산고등학교 교사(2013-06-05 10:12:24)

가출도 미루고 싶은 달, 5월
‘틴~촤악 틴~촤악 쿵쿵따 쿵쿵따 쿵쿵따리’ 점심시간, 식당에서 나오면 2층 ‘무소유(밴드동아리)’ 연주에 귀 기울이는 소화기관은 카수 김준영이 준 ‘박하사탕(윤도현)’의 단물로 마냥 즐겁다. ‘떠나려하네 저 강물 따라서/돌아가고파 순수했던 시절~’음악소리로 교정에는 철쭉, 영산홍, 자산홍, 조팝, 수국, 산당화, 작약꽃이 핀다. 제 몸짓으로 핀다. 민들레는 흥에 겨워 제 꽃씨를 공중부양해서 멀리 날린다. 운동장에는 골대 밖으로 축구공이 오줌발처럼 시원스레 뻗는다. 찬 발도 막아내야 하는 손도 조금씩 아쉽다. 슈터의 손을 떠난 농구공은 수학 공부를 잘했는지 정확한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켜보던 단풍나무와 누운향나무가 기립박수를 보낸다. 5월, 아이들은 자란다. 몸도 마음도. 학교는 5월이 짱이다. 고놈의 시험만 끝나면 소풍 체육대회 축제 끄릿끄릿 이어지는 행사로 날갯죽지가 가려운 아이들도 가출을 잠깐 미루고 싶은 달이다. 나의 근육이 20여 년간 아침마다 어김없이 이 교정에 부려 놓곤해서 그런지 교정의 꽃과 나무는 남 같지 않다. 이곳에 더 오래된 근육 선생님은 여기 날씨를 한글날 내의를 입고 어린이날 벗어야 될 만큼 겨울이 길단다. 교복처럼 입던 겨울 외투를 자목련이 필 때라야 벗는다. 작년 이맘 때 입었던 봄 저고리 안주머니를 더듬던 손에 반가운 촉감이 잡힌다. 배춧잎일 것 같다. 허나 구겨진 채 나오는 것은 주머니에서 사계(四季)를 난 쪽지다. 스승의 날 받은 편지다. 지난 2월에 졸업한 아이다. 그 안에서 그 아이의 학창을 읽는다. 아이의 추억은 마냥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만 전하려 애썼다. 나는 몇 번이고 두고 읽다가 서랍 속에 넣는 일을 잊었을 것이다.

주홍글씨 찍혀 계속 되던 ‘단기복무’
기회에 주머니 속 더 깊은 가슴 속에 넣어두었던 이야기가 꺼내보고 싶어진다. 산으로 둘러싸인 남도의 한 자락 신설학교에서 2년 단기복무한 적이 있었다. 제법 큰 학교였다. 한 학년에 10반. 시골신설은 1학년 10반 담임에다가 새파랗다는 이유로 사감까지 시켰다. 200여명의 기생(기숙사생)들과 한솥밥을 먹고 자고 하는 일은 나 같은 단세포에게는 애초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알찬 교육의 깃발을 능력 이상 짊어진 나는, 늘 허덕였다. 기숙사는 아이들의 유격훈련장 쯤 되었다. 밤이면 앞철문이 잠기고 뒷창문이 열렸다. 2층, 3층에서 커튼줄, 밧줄을 타고 아이들은 유격훈련의 스릴을 만끽했다. 교육은 없고 시험만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견딜 수 없었으리라. 술, 담배, 이성(異性)이 친구하자고 하면. 쥐들도 잠든 자시(子時), 한 아이의 수면제 다량복용. 혼수상태. 내 말이 급했으므로 택시는 인근 큰 도시 대학병원으로 생애 최고의 속도로 내달렸으리라. 위세척을 황급히 끝낸 당직의사는 다행히 큰 이상 없을 거란다. 학생이 복잡하고 견고하게 맨 매듭을 택시와 의사가 의외로 간단히 풀어버렸지만, 매듭 풀린 끈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관리감독 소홀. 부모에게 인계하고 돌아오는 새벽, 눈물에 걸린 달은 속절없이 밝고 차가웠다. 시험에 대한 부담감, 통신표의 배신, 돌아서는 이성, 친구들의 따돌림. 나는 다량의 수면제를 이해하기로 했다. 수면제는 수면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 못 했으므로. 주판으로 성적을 내던시절, 주판으로 교육문제를 풀긴 버거웠다. 거대한 담론에 비교적 충실했던 나는, 그 학교를 단기복무로 마감해야 했다. 재봉산 아래 아이들의 눈망울을 떨치고 또 다른 단기복무학교로 가는 나는 픽업 뒤에 실린 다 읽지도 못한 이론 서적들과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솔재를 넘은, 종교처럼 믿던 아이들이 있는 나의 학교생활은 편안했지만 내가 앉는 의자는 여전히 불편했다. 거대담론의 주홍글씨는 여기서도 1년여 만에 의자 빼라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90년 중반쯤, 역마살이라 스스로에게 핑계대고 학교를 옮겼다. 용케도 ‘2년안’ 징크스가 깨졌다. 사립학교를 3번씩이나 경험한 나는 이식(移植)에 따른 몸살도 약간 있었지만 제법 분위기 파악도 해가면서 장기복무에 임하고 있다.

그들은 추억의 단맛을 찾아 학교에 온다
컴퓨터로 성적 처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전히 컴퓨터로 교육문제를 풀기는 버겁고 주판알처럼 단순하지도 않다. 학교는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교육문제는 사회와 교육 주체의 영원한 숙제다. 성급히 풀 수도 풀리지도 않는다. 다만, 5월을 권해볼 뿐이다. 학교를 종교처럼 생각했지만 순교는 두려웠던, 지금은 종교관이 희미한 신앙인인 나는 솔직히 가르친 것보다 아이들한테서 배운 게 많다고 신앙고백한다. 엄마 아빠없이 할머니 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금 대구 어디쯤에서 초등학교 교사인 맹순이. 엄마가 빨아준 스타킹이 거친 엄마 손으로 올이 나갔다며 올 나간 스타킹을 보며 울었다던 글 잘 쓰던 지금 목포에서 사는, 두 아이의 엄마 정선이. 어머니는 집 나가고 아버지는 두 아이를 남기고 홀연히 세상을 떠서 착한 고모와 수심 찬 할머니 걱정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편의점에서 알바재수해서 기어이 국립대학에 입학한 진우의 형 성광. 문제집 1장당 100원씩, 갑(엄마)의 부당한(?) 제안에 기꺼이 응한 착한 을은 문제집 수십 권을 풀고 아끼고 아낀 돈으로 갑과 함께 미얀마를 여행했단다. 을은 현재 우리반 지수다. 이 모두 내겐 선생이다. 찔레꽃 필 때 가뭄이 온다고 했지만 가물기에 찔레꽃이 핀다. 5월, 아이들은 스승의 날이어서 찾아오기보다는 제 추억을 찾고자 온다. 체육대회 반대표로 뛰던 애는 운동장이 생각나 경기 심판 보러 온다. 축제 때 무대 위에 있던 아이는 제 모습이 그리워 관객으로 온다. 5월처럼 끄릿끄릿 행사를 연중으로 해라. 시간표에 수업과 자율과 보충으로 채우는 대신 노래자랑, 연극, 춤 대회, 백일장, 문화기행, 망월동 국립묘지 참배, 등산, 영화관람, 노작활동, 전문직업인 강연, 각종 체험활동, 동아리활동 월례대회, 학부모의 교실 강연, 선배와의 대화 등속으로 채우면 아이들은 학교를 어머니의 품처럼 그리워하며 찾아올 듯. <박하사탕>은 입안에서 혀끝으로 굴러다니다가 추억의 단맛을 남기고 장렬하게 울려 퍼진다.‘열어줘 제발 다시 한 번만/두려움에 떨고 있어/열어줘 제발 다시 한 번만/단 한 번만이라도/나 돌아갈래~ 어릴 적 꾸움에/나 돌아갈래~ 크으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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