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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6 | 연재 [서평]
신흥사대부에 의한 조선건국론은 수정돼야 한다
『조선 왕조의 기원』존 B. 던컨 저/ 김범 역. 너머북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2013-06-05 10:14:48)

이 책은 던컨이 자신의 박사학위논문 『조선왕조의 고려적 기원』 (워싱턴대학, 1988)을 보완하여 2000년에 발행한 것이다. UCLA에 재직하고 있는 던컨은 작고한 하버드대 에드워드 와그너와 워싱턴대 제임스 팔레의 뒤를 이은 미국내 대표적인 한국학연구자이다. 팔레는 던컨의 지도교수이다. 국사편찬위원회 김범에 의해 국역된 이 책의 핵심내용은 고려와 조선의 지배세력간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고려후기 지배세력인 권문세족에 대항해 일어난 신흥사대부들이 새 왕조 조선을 건국했다는 국내학계의 정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논지이다.던컨의 이 논저는 와그너와 팔레가 그렇듯이 매우 충분하고 탄탄한 자료 분석을 토대로 하고 있다. 또 식민사학의 극복이라는 광복후 한국사학계의 과제로부터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한 비교사적 접근을 병행하였다는 점에서도 돋보인다. 던컨은 먼저 이 책에서 고려의 정치제도와 주요 가문을 분석하였다. 그리하여 고려 전기와 후기, 즉 무신난 전과 후의 지배세력간에는 동질적 측면이 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11세기부터 고려가 망할 때까지 중앙관인층의 구조가 견고한 연속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1170년 무신난 후 고려의 지배세력이 재편되었다는 국내의 일반적 시각과는 다른 결론이다. 이어 던컨은 『조선왕조실록』에 등재된 조선건국후 관료들의 가문을 분석하였다. 1392년 조선건국에서부터 1405년(태종 5)까지의 관료들을 분석하였고, 이로부터 25년후인 1430년에서 1433년까지 3년간, 50년 후인 1455년에서 1458년까지 3년간의 관료들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던컨은 조선의 주요 가문의 압도적 다수는 고려의 저명한 중앙 양반의 후손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조선왕조의 개창으로 지배세력이 교체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학계에서는 고려후기에 등장한 신흥사대부들이 정치세력화하여 무장 이성계세력과 손잡고, 구세력인 권문세족을 밀어내고 조선을 개창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이들 신흥사대부들은 권문세족과 달리 향리출신으로 중소지주이며, 사상적으로 성리학을 수용한 자들로 학문에도 능하고 행정에도 능한 학자적 관료층으로 규정된다. 던컨은 이러한 지배세력의 교체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신흥사대부의 개념규정 자체도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향리에서 과거를 통해 고위관료에 오르는 것은 고려 전기부터 있어왔으므로 신흥사대부는 향리출신이라는 것부터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대부라는 용어는 고려말 중앙 관료층들이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타자와 구분하기 위해 쓴 용어라고하였다. 던컨처럼 신흥사대부에 의한 조선건국을 부정하고 고려와 조선의 지배세력 간에는 지속성이 강하다는 주장은 동아대 김광철, 서강대 고(故) 정두희, 전남대 김당택 등에 의해서도 제기되었다. 나아가 고려후기 신흥사대부의 존재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고 있다.

사실 신흥사대부들에 의한 조선건국론은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얻어진 결과가 아니었다. 정설로 자리하기는 하였지만, 그에 대한 실증적 연구는 미흡하였다. 결국 고려와 조선의 대표적 가문들을 분석해보니 동질성이 강하더라는 연구 앞에 신흥사대부의 조선건국론은 타격을 받게 되었다. 충분한 자료에 기반을 둔 실증적 분석이 미흡한채 우리 역사가 자체적으로 꾸준하게 발전해 왔다는 내재적 발전의 논리가 앞선 결과이다. 던컨의 주장대로라면 우리 역사는 정체되어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고려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지배세력의 교체가 없었다는 것은 곧 한국사의 역동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내재적 발전론에서 주장하는 지배층의 근본적이고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지 발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고려와 조선 간에 연속성이 강한 가운데 점진적이고 점차적인 발전이 있었다고 말한다. 던컨이 찾은 조선건국의 의미는 국내 한국사학계가 주장하는 지배세력의 교체가 아니라, 고려 이래 한국사회의 발전을 저해한 지방세력을 제압하고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수립한 것이다. 그는 조선건국이 지방의 향리층이 중앙 귀족층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앙 귀족관료가 지방의 향리세력을 제압한 것이었고 거기에 조선건국의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조선에 이르러 모든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는 등 지방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중앙집권이 이루어져 한국사의 안정적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논지이다. 그리고 이렇게 된 것도 국왕과 관료층들의 합의에 의한 결과라고 하였다. 국왕이 지배세력들에게 관료진출의 정치적 특권과 대토지소유의 경제적 특권을 인정해 준 가운데 이루어낸 성과물이라는 것이다. 결국 한국사에 지배세력의 교체는 없었고, 즉 주요가문들이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주도세력으로 자리하였으며,조선에 이르러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확립한 것이 큰 수확이고 의미라는 것이다. 그것도 국왕과 관료층의 타협에 의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필자도 조선건국후의 지배세력에 대해 태조에서 예종에 이르기까지 고위관료들의 가문을 분석해 본바 있다. 그 결과 조선건국 후 고위관료들의 상당수가 소위 고려후기 권문세족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대략 구세력이 40%, 신세력이 60%정도였다. 구세력의 몰락과는 거리가 먼 수치이다. 이렇게 볼 때 신흥사대부에 의한 조선건국론은 구세력이 대거 참여한 형태의 조선건국으로 수정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만 던컨을 비롯해 지배세력의 교체가 없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필자의 연구결과로는 고려와 조선의 지배세력 간에는 지속성도 강했지만 그 보다는 변화의 측면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앞으로 고려와 지배세력의 동질성 내지 차별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치하고 다양한 연구들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비록 던컨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근본적으로 조선건국의 의미를 실증적으로 검증하여 내재적발전론이 놓쳤던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그 연구의 의미가 크다. 해외 한국학계의 연구동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에 있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한걸음 떨어져 있는 그들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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