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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 | 연재 [상식철학]
팝 가수 로드리게스의 전설
김의수 전북대 명예교수(2013-07-03 22:33:56)

젊은이들과 함께 하는 인문학 동아리가 6월 모임을 무주에서 갖기로 했다. 제1회 산골영화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아내가 다른 일정으로 바빠 나 혼자 차를 몰고 갔다. 종강을 했으니 방학인 셈이고, 시간을 넉넉히 잡아 일찍 떠났다. 휴게소에 들러 계단을 내려가 시골 길을 걸었다.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음정과 박자가 불확실한 곳에서 악보를 펼쳐 확인하면서 합창곡 ‘산유화’를 몽땅 외울 때까지 반복하며 걸었다. 로드리게스? 로드리게스! 무주의 너른 잔디밭에 마련된 상영장에서 우리가 감상한 영화는 ‘Searching For Sugar man’이었다. 2년 전 스웨덴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로 이미 많이 알려진 영화였지만, 나는 처음 들었고, 우연히 영화제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 팝 가수 로드리게스였다.나는 귀에 익숙한 팝송들도 작곡자가 누구이고 가수 이름이 뭔지 별로 기억하는 것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로드리게스를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남아공 국민들은 로드리게스와 그의 노래들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자기네 나라의 국민가수가 돼 있는 로드리게스가 미국에서도 유명하고, 세계적으로 인기가 대단한 가수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에서도 그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남아프리카공화국은 소수백인들이 지배하고 인종차별이 극심해 노예제 사회와 다를 바 없는 독재국가였다. 서양의 문화를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고, 백인 청년들도 숨이 막히는 사회였다. 그 시절 우연히 미국 여대생이여행 때 가져와 친구에게 건네주고 간 로드리게스의 CD한장이 손에서 손으로 전파되어 전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그의 노래 ‘SugarMan’과 ‘I Wonder’는 해방을 노래하는 가사로 읽혔고, 그들은 이 노래들을부르며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였다.무명의 로드리게스는 폐허가 된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궂은 일만 하는 노동자로 생활하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 해체 작업이나 오물 처리노동을 하면서 허름한 주택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타 치며 노래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획기적인 민주화를 실현시킨 남아공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로드리게스를 찾아나섰고, 거의 불가능한 조건에서도 끈질기게 노력해서 결국찾아냈다. 남아공 국민들은 그를 초대해 인산인해를 이루는 대규모 콘서트를 열었다. 중노동을 하면서도 자존감 있는 삶을 영위하던 자유로운 영혼의소유자 시스토 로드리게스는 꿈같은 현실에 주저하지 않고 아낌없는 열정으로 그들과 하나되어 해방의 축제 한마당을 공유했다. 나는 그들의 감격적만남을 온몸으로 축하하고 부러워했다. 유럽인과 인디언의 혈통과 멕시코의 혈통을 이어받은 로드리게스는 비틀즈, 밥 딜런과 함께 팝의 전설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그의 삶은 음악인가, 철학인가?미국에서 달랑 6장 밖에 팔리지 않은 음반이 남아공에서 30년 동안 50만부가 팔렸지만 로드리게스는 그런 사실도 몰랐고, 단 돈 한 푼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남아공에 가서 공연을 하고 세계적인 대 스타가 된 후에는 수백만장이 팔렸고 돈도 많이 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돈을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다 나눠주고 다시 디트로이트로 돌아와 여전히 중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다.우연히 산골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화면을 통해 현자 뮤지션 로드리게스를 만나면서 책을 통해 비트겐스타인과 권정생 선생을 만났을 때보다 더 직접적이며 폭발적인 감동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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