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3.7 | 연재 [꿈꾸는 학교, 행복한 교실]
고슴도치 섬에서 고슴도치의 아비가 되어
이연호 위도고등학교 교사(2013-07-03 22:34:16)

“선생님, 신나는 노래 틀어주세요.” 항상 밝은 은경이의 경쾌한 목소리. 그리고 울려 퍼지는 쿵짝쿵짝쿵짝 신나는 노랫소리. 차에 탄 모두가 함께 하는 신나는 노래. 언제나처럼 방과후 교육활동이 끝나는 저녁 9시 20분. 교통편이 없는 아이들의 귀갓길에 몇몇 선생님들의 차들이 이곳저곳 아이들을 태우고, 비록 갯일 나가 기다리는 이 없는 집일지언정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덩달아 나의 오래된 자가용도 주변의 파도가 일렁이듯 춤을 춘다. 가는 길에 하나 둘씩 아이들이 내리면,“혜리야, 잘 가. 낼 봐.” “진주 언니, 안녕.” “재광아, 유빈아, 잘 자.” “은경아, 낼 아침에 보자.”그리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소리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은 마주하는 차량 하나 없는 어둠의 길이지만 미소가 절로 띤다.아름다운 고슴도치 섬-위도.새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 뱃고동 소리가 어우러진 서해의 끝 섬. 위도.아무 연고도 없이 밀물처럼 밀려와 이곳에 자리 잡은 지 벌써 3개월. 참 빠르다.내가 처음 이곳에 들어왔던 지난 2월, 남들은 설렘과 기대로 첫발을 내디뎠다고 하지만, 난 설렘보다는 시름으로, 기대보다는 염려로 다가왔던 곳이다. 그러나 그 시름과 염려는 어느 순간 즐거움과 행복으로 바뀌었고, 나의 마음은 아이들의순수함으로 차곡차곡 채워져 있었다.아침 7시 30분. 아이들이 하나 둘씩 등교하기 시작하면 우리들의 일과는 시작된다. 8시 15분. 가장 먼 대리마을에 사는유빈이와 재광이 남매가 오면 우리 아이들 23명 모두 등교 완료. 대부분의 아이들은 도서실에서 책을 읽고, 누구랄 것도 없이 먼저 온 아이들 중 몇 명과 담당 선생님은 가사실에서 친구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오늘은 토스트, 내일은 만두, 모레는 초밥 등. 다양한 메뉴는 아니지만 밥을 먹지 못하고 등교하게 된 우리 아이들에게 반갑게 제공되는 무한리필(?)의 아침식사이다. 8시 30분. 친구들이 가사실로 내려오고, 현이는 양손에 토스트를 들고, 큰 눈 껌벅이며, 입 쩌~억 벌려 토스트를밀어 넣으며 해맑게 웃는다. 그런가 하면 이미 더 이상 통통해져서는 안 될 정도로 뚜~웅한 민호는 먹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 천진하기만 하다. 8시 40분. 1교시가 시작되면 비록 몇 안 되는 극소수의 애들이지만 교실은 여느 시내학교보다 더 흥성거린다. 한 명씩 개인지도를 하다 보면 서로의 눈과 숨소리가 뒤섞여 그 열기가 뜨겁다. 쉬는 시간만 되면 언제나처럼 들려오는 재광이의 오카리나 소~리. 또 다른 친구 원준이는 복도에 주저앉아 기타를 치고, 그 옆에서는 준이와 진혁, 은진, 현수 등이 세이렌(Seiren)이 되어 함께 노래를 부른다. 이때 나는 쇠사슬에서 풀린 오디세우스가 되어 세이렌들의 아름다운 소리들에 푹 빠져든다. 그리고 점심시간. 아이들은 여전히 재잘거리며 굳이 급식지도 필요 없이 예쁘게 밥을먹고 깨끗하게 치울 줄 안다. 식사 후 모여든 강당에서는 배드민턴과 농구, 탁구장에서는 탁구, 음악실에서는 노래방, 누구든지 아무 곳에서든지 함께 할 줄 안다. 또 급식만으로 허기를채우지 못한 아이들은 무인매점에서 과자를 사먹고 스스로 계산하고 거스름돈을 챙겨 간다. 다시 오후 1시 20분 5교시 수업이 시작되고 얼마 후 4시 30분 방과후 교육활동 시간이 되면 우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생활공예, 실용음악, 생활미술, 검도, 기타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며 평소 해보고 싶은 것들을 경험하며 자신을 만들어 나아간다. 다시 저녁식사시간이 되면 가사실에 모여 오순도순 저녁을 먹고, 저녁7시 30분이 되면 무학년제 교과방과후 활동에 접어들어 지혜반, 희망반, 사랑반으로 나뉘어 공부를 한다. 그리고 캄캄한 9시 20분이 되면 우리 아이들은 선생님의 자가용을 타고 도시아이들의 처진 발걸음이 아닌 경쾌한 발걸음으로 귀갓길로 접어든다.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배울 게 많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특별하게 차별을 두지 않고 학년마저도 구분 없이 동네 형, 오빠, 누나, 동생이다 보니 서로에게 서로를 맞추고 늘 이렇게 함께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이들에게는 ‘우리’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서로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더 깊게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우리들’ 뿐이다. 나는 이런 아이들에게서 ‘우리’를 배운다. 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세 끼를 모두 학교에서 해결하고, 학교에서 만나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놀고, 학교에서 즐기며 온통 하루 전부가 학교에서의 생활이다. 그러나 싫어하지 않는다.토요일에는 토요 방과후학교 때문에 학교에 오지만 공휴일에는 또 왜 모여드는 것인지. 이들에게 학교는 생활의 전부이다.나는 이런 아이들에게서 학교가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무엇이든 긍정적이다. 텃밭 가꾸기, 등산 활동, 해변가 걷기 등 어떤 일을 하더라도 투덜거리거나 하기 싫다고 한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에 대부분 순종한다. 요즘에 이런 아이들 보기 힘들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부터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까지 담배를 피운다거나, 남의 물건에 손을 댄다거나, 서로 괴롭힌다거나, 왕따시킨다거나, 선생님께 대든다거나 등의 경우는 한번도 없이 그저 모두가 서로 형제자매처럼 지내고 있다. 이것이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다. 참으로 신기할 정도다. 이런 아이들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러니 이쁠 수밖에. 그래서 나는 이런 아이들에게서 ‘행복’을 느낀다. 난 이 아이들이 마냥 좋다.학교 뒷산. 위도에서 가장 높은 망월봉. 해발 254.9m. 이렇게 보면 우습게 보이지만 망월봉은 그리 호락호락 쉽게 길을 내어 주지 않는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오솔길. 그 길을 지나 솔향기 가득한 정상에 오르면 넓디넓은 서해바다의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고, 맑은 공기와 탁 트인 산세가 절경이다. 우거진 녹음 사이로 고기잡이 어선과 기암괴석이 수려하게 뽐내면 아름다운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멀리 격포항이 보이고, 이름마저도 이쁜 큰딴치도, 작은딴치도, 딴달래섬, 더 멀리 상왕등도와 하왕등도, 가까이엔 서해페리호의 아픈 역사를 가진 임수도 등이 보인다. 그리고 날이 좋은 날에는 멀리 고군산도까지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망월봉이다.‘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털이 바늘같은 고슴도치도 제 새끼의 털은 부드럽다고 옹호한다는 뜻이다. 나는 오늘도 고슴도치의 맨 꼭대기 등성이에 올라타 내 새끼들의 털이 부드럽다고 자랑하며 둥지를 틀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