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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9 | 연재 [꿈꾸는 학교, 행복한 교실]
어린 담임, 어린 제자
김지승 광주서강고등학교 교사(2013-09-02 17:39:41)

“엄마 나 학교 안가면 안돼?” “그래도 가야지 애들은 어쩌라구….” 2006년 3월부터 1년 내내 엄마에게 했던 말. 얼핏보면 학생과 엄마의 대화 같지만 그건 분명 학교 가기 싫다는, 정확히 말하면 출근하기 싫다는 선생 딸과 어떻게든 보내려고 하는 엄마의 대화였다. 학생 때야 물론 한두 번 학교 가기 싫어 떼 써본 적은 있었지만 설마 내가 직장인이 되어 그것도 바라고 바라던 교사가 되어서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할 줄이야 상상조차 하지못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 파란을 몰고 왔던 그 아이들과의만남은 얼어붙은 땅이 녹지 않았던 추운 겨울의 끝자락에 시작되었다.
2006년 3월! 젊음과 열정만이 있던 새파란 초임에게 담임이 맡겨졌다. 실업계전문고교 1학년 담임, 아이들과 첫 대면에서 나는 나의 1년이 녹록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고 30명의 눈빛들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30명 정원에 10명이 각 중학교 ‘거물급’ 인사들이었으며 그나마 2명은 첫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자퇴는 없다! 전원 진급! 그러나…
고작 경력 6개월의 24살 초짜 담임교사와 첫날부터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아이들!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들은 풍월로 첫 기선을 잘 잡아야 한다는 소리에 “우리 반은 자퇴는 절대 없다. 30명 전원이 진급 할 거야!” 하며 땅땅 큰 소리를 쳤다. 유독 자퇴율이 높았고 그만큼 아이들이 학교를 쉽게 포기한다는 말에 고심 끝에 내린 말이었다. 어떻게든 자퇴 없이 이대로만 올려 보내면 나는 성공 한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공약은 다음날부터 나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매일 2명 이상씩 꼬박꼬박 돌아가며 무단결석에 땡땡이, 오토바이 사고, 그리고 폭력사건, 경찰서까지 하루도 쉴 틈 없이 벌어지는 사건 사고에 정신을 차릴 수 가 없었고 매일 매일이 어렵고 현실 같지 않은 날이 계속됐다. 우리 반 아이들이 벌여놓은 사고로 인해 수없이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할 곳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했다.
하지만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야 말았다. 어느 날 갑자기 조용하기만 했던 여학생이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몇번이나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자리를 피하고 만날 수가 없었다. 작정을 하고 만나러 간 날 아이의 눈빛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학교에 자신에 관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했다. 자신은 전교생이 다 아는 한 절대로 가지 않겠다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집 형편도 안 좋은데 알바나 하면서 대충살 것이라는 이야기를 아무런 표정 없이 했다. 남편의 오랜 부재와 그 충격에 몸과 마음이 많이 불편했던 어머니는 내 옆에서 눈물을 쏟았다. “선생님 우리 아이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어떻게 학교를 안 다니나요.”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는 이미 학교라는 공간에 오만 정이 다 뜯긴듯한 눈빛을 아득하게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빨간줄’에 울다
그렇게 자퇴동의서에 도장을 찍으며 눈물 많던 나는 울지 않았다. 왠지 내가 여기서 울면 꼭 이 아이의 인생도 이 눈물자국처럼 우울해질까봐 눈물도 꾹 참았다. 하지만 그 날 오후 출석부에 빨간줄을 그으며 결국 눈물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첫 담임이었고 나의 첫 제자가 그렇게 학교라는 울타리 밖으로, 너무 일찍 세상으로 내보내진 것이다. 과연 나는 무엇을 했는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으셨던 옆자리의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이렇게 너무 마음 아파하면 안된다고 나머지 29명의 아이들을 생각하고 그 아이들에게 더잘해야 한다고 그리고 교사는 예쁜 옷 입고 ‘왔다 갔다’하는 것만이 교사가 아니라고….

씩씩하게 잘 살아주길
그렇게 힘든 일년을 보내고 좌충우돌 속에 29명의 아이들은 무사히 진급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일찍 세상으로 내보냈던 그 제자는 내가 다른 학교로 옮겨온 지금까지도 학교로 돌아오지도 연락도 되지 않고 마음속에 무척이나 걸려있다. 그 시간으로부터 7~8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이제 30대 교사가 되었다. 그간 교단은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빠른 변화에 적응해 가는 듯 적응하지 못하는 듯하며 하루 하루 교사의 길을 오늘도 가고 있다. 지금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하며 수능 문제와, 등급, 내신, 이런 단어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기억은 많이 희미해져 가고 그때의 힘들었던 경험이 추억이 되고 경력이 되어가고 있지만 나는 다시 한번 그곳에서 근무해보고 싶다. 지금이라면 좀 더 잘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이의 인생도 우울해 질까봐 눈물도 참아보았던 어린 담임, 조금 더 경험이 많았다면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거라는 후회도 많이 했던 담임… 그 경험으로 앞으로 살아가면서 ‘왔다 갔다’만 하는 교사는 절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담임…. 나에게 아직 그 어린 담임의 모습이 남아 있는지 생각해본다. 나는 ‘왔다 갔다만 하는 교사’는 아니었는지. 그간학생들과 살면서 수도 없이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며 그 결심이 무뎌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2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그 아이, 나의 첫 제자 30명 모두가 세상에 상처받지 않고 씩씩하게 잘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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