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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9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감기>
김경태 영화평론가(2013-09-02 17:40:33)

김성수 감독의 <감기>는 친숙한 감기 바이러스가 진화를 거듭해 감염되면 수 시간 안에 피를 토하며 죽게 된다는 SF적 상상력을 가미한 재난 블록버스터이다. 이 영화는 그 치명적 바이러스에 감염된 감기환자가 기침을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는 (인간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과정을 CG를 통해 과장되게 보여준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확산 방지와 치료를 목적으로 시민들이 격리 수용되자, 관객은 온 몸에 새겨진 홍반으로 부각시킨 전염병의 시각적 공포를 능가하는 국가권력의 끔찍한 음모와 무능한 대책이라는 또 다른 현실적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가족, 사랑하기 때문에
좁은 컨테이너 박스에 몸을 싣고 홍콩에서 한국으로 밀입국한 일군의 외국인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몽싸이’는 치명적인 변종 감기 바이러스를 한국의 분당에 퍼트린 병원체이자 그 항체이다. 그는 ‘병기(이희준)’의 동생을 감염시켜 죽음에 이르게 했기에 병기에게 있어 그는 동생의 복수를 위해 반드시 찾아 죽여야만 하는 존재다. 반면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딸 ‘미르(박민하)’를 살리고자 하는 의사 ‘인해(수애)’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살아있어야만 하는 소중한 항체이다. 이들이 몽싸이를 대하는 태도는 극단적이지만 그 행위의 동기는 일치한다. 그것은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이 영화에서 가족애는 서사의 진행과 반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병기의 무모한 복수가 의도치 않게도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한 희망을 앗아간 반국가적 행태가 되었다면, 딸을 살리기 위해 임사실험도 거치지 않고 몽싸이의 항체를 주입한 인해의 위험한 시도는 우연하게도 그 꺼져버린 희망을 살리게 된다. 구조대원인 ‘지구(장혁)’의 경우, 구조대원으로서의 투철한 사명감과 인혜/미르를 향한 애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사명감에 따른 행동보다는 애정에 기반한 행동이 사건진행에 보다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격리 구역을 지키던 군인이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을 폭로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것도, 그가 감염인 구역으로 실려 온 어머니를 발견하고 그녀를 지키기위해 분당 시민이 아닌 군부대를 향해 총을 겨누게 되면서이다. 이것은 감염인 구역과 비감염인 구역으로 격리 수용된 분당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사건 진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행위들의 가장 큰 추동력은 인류구원이라는 사명감이나 개인의 사리사욕이 아닌 가족애이다.

너무 쉽게 화해하는 것 아닌가
그 가족애는 고립된 분당 시민 전체로 확대되면서, 그들이 가족을 구하기 위해 맞서야할 적은 더 이상 감기 바이러스가 아니라 거짓말을 하는 정부가 된다. 이제 문제의 본질은 치명적인 전염병에서 정부의 인권유린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제 자신들의 생존권을 요구하며 시민들은 하나가 된다, 그들은 전염병이 환기시키는 ‘접촉’의 공포를 극복하고 서로가 서로의 팔을 걸어 스크럼을 짜는 강력한 ‘접촉’을 시도하며 군부대의 위협에 맞서 저항한다.
인류생존이라는 명목으로 미군장교가 작전권을 행사하여 그 저항하는 시민들에 대한 폭격을 명한다. 이에 한국의 대통령이 그 전투기를 포격하겠다며 맞대응을 하자 폭격은 취소되고 무력하게 있던 참모들은 기뻐하며 박수를 친다. 그런데 그 박수는 너무 성급했고 또 부적절했다. 감염되어 죽어나간 수 만 명의 시체더미가 경기장을 가득 메운 이미지가 눈앞에 아른거렸고 또 군인들의 무자비한 발포로 감염되지 않은 시민들조차 총에 맞아 죽어가던 이미지가 선명했기 때문이다. 과연 자국민을 향한 발포에 암묵적으로 동조했던 이들에게 박수칠 자격이 있는 걸까? 역으로 말해 이 박수에 의도성이 깔려있다면, 그것은 영화의 서사를 단절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의 초점을 다른 곳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 소심한 신호이자 빈약한 최면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뒤이어 대통령이 자신의 목소리로 구조를 약속하자 서울로 향하려던 분당시민들 모두가 환호한다. 그 환호성 사이에서 전염병의 공포와 잃어버린 동료에 대한 슬픔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다시 애정으로 회수되고만 ‘가족애’
<감기>는 무고한 희생자의 애도가 아니라 지구와 인해의 앞으로의 사랑을 암시하는 어깨동무를 하며 미소 짓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반면에 전염병과 관련된 중대차한 사건은 항체를 분당시민에게 우선적으로 주입하겠다는 한 줄의 뉴스로 일단락된다. 수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엄청난 사건이 서로간의 애정을 확인하고 발전시키는 계기로 축소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영화 초반, 지구와 인해가 구조대원과 그가 목숨을 구해준 시민으로 처음 만났을 때는, 그 구조가 지구의 의무였기 때문에 인해는 그 행위로부터 느껴질 수 있는 감정을 애초에 차단해버렸다. 그러나 그가 구조대원의 의무감으로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미르를 지켜냈을 때, 그제야 그녀는 마음을 연다. 이러한 초반과 후반의 대구 안에 갇혀버린 스토리는 관객에게 그들의 관계 진전에 주목할 것을 당부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 사랑에 감정이입하기에는 그 사이에 던져놓은 사건과 사고들의 잔상이 너무 크게 남는다. 결국 거대 권력에 저항하기 위한 연대로 나아갈 것 같던 가족애가 다시 애정으로 회수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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