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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9 | 연재 [서평]
사담私談, 사담史談, 사담死談…
『감(感)에 관한 사담들』
김성철 시인(2013-09-02 17:41:36)

1
시를 읽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시절이 수상한 것도 한 몫 하겠지만, 시를 외면하는 현대적 정서도, 시를 어렵게만 푸는 현대 시인들도 한 몫이다.
나의 시 읽기는 주관적이다. 서사가 아닌 서정이 바탕이 된 시니 당연히 주관적이어야겠지만 나의 시 읽기는 보다 더 주관적이다. 목차도 없다. 펼쳐지는 대로 읽기가 부지기수고, 내 맘에 드는 시가 있다면 그 시만 몇 번이건 읽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시 집 제목을 딴 시를 찾아 먼저 읽기도 하는가하면, 맨 뒤 혹은 맨앞 시를 먼저 읽고 그 시집을 가늠하기도 한다. 물론 정독도 없다. 한 두 편의 시를 정독하고선 읽히지 않는 시는 과감히 넘기기도 한다. 나는 건성건성한 독자이기도, 나름의 꼼꼼한 독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를 읽는 나는 늘 주관적이다.

2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란 그의 방심으로 진실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그의 눈으로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 「모니터의 계절」 부분

최근 생긴 버릇은 독자인 내가 오롯이 그(시인)가 되는 것이다. 독자인 나를 버리고 그(혹은 그녀)의 입장에 서서 그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그의 활자를 통해 그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아니다, 그 의 마음으로 활자를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는 것을 내가 보고, 그가 느끼는 것을 내가 느끼는 것이다. 시를 혹은 시인 을 이해하려는 게 아닌 내가 그가 되고, 내가 시가 되는 일.

적막이 빈틈을 스산하게 훑는다
감기약을 삼키고 자리에 누우니
약기운이 퍼진다, 이럴 때는
통화권을 이탈한 핸드폰처럼
혹사한 몸이 나보다 더 외롭다
생각을 비울 수는 없어
스위치란 스위치는 다 켜두고
서러운 미열이 잠시 편두통에서 운다
소음과도 같은 그 막막한 자리에
마음은 자꾸 몸을 놓친다
- 「몸」 부분


외롭다. 아니 안쓰럽다. 그가 그리고 내가, 아니 우리가 외롭다. “이젠 나의 아이디는 서명을 숨기며 나를 믿지 않는다” (「도시인」), “한 평 공간 속에서 몸이 솟구치는 동안/ 거울 안에는 노인이었다가 아이였다가 나였다가”(「붐비는 공중」), “스스로의 혐의를 모르는 별들만 처연한 밤/ 어느 목격자가 내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뉴스」), “아무 생각이 나질 않고 다만 멍하니 멈춰/ 나는, 송수신이 두절된 탐사로봇처럼/ 결함을 복구하느라 껐다 켰다를 수십 번 반복하는”(「다운로드」), “얼마나많은 문을 지나쳐 왔을까/ 문은 사각의 틀로 암호화된 나를 읽는다/ 그리고 비릿한 숨결로 몸을 불어낸다(「텔레포테이션」).그러기에 그는 아니 나는 그리고 우리는 기억(혹은 추억, 과거)에 천착하는지도 모른다. 기억은 나를 부끄럽게도, 행복하게도, 쓸쓸하게도, 우울하게도 만들지 않는가. 기억 속에 빠진나는 시간의 바깥에 서서 현재의 나를 온전히 잃어버린다. “아직도 떠오르고 있는 기억 속으로 금이 가는 말들/ 그것은 내가함부로 꺼낼 수 없었던 고백의 두께,”(「숨」), “기억은 드라이플라워로 서걱거려/ 누구도 미라인 자신을 알아볼 수 없다”(「바람미술관」), “불행이 채록을 멈출 때 우울은 음반처럼 기억을 산책한다”(「GRB 101225A」), “바닷속 석조기둥에 달라붙은 해초처럼/ 기억은 아득하게 가라앉아 흔들린다”(「아틀란티스」),“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기억이란/ 운명을 은유하면서 일생을떠돌게 마련이니까요”(「비망록」).
또한 그의 눈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시집 전반적으로 바라보는 시야가 불분명하다. 이것을 보았다가 저것을 보고, 이것저것도 아닌 너머를 바라보기도 한다. 물론 시각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단순한 시야가 아닌 시인이 만들어낸 메타포가 때론 이미지가 중구난방이다. 하지만 제목으로 귀결되어 연관성 없는 것들을 하나로 묶어내기도 한다. 그러기에 한편으로는 그의 시는 어렵다. 시를 읽다 난해함에 봉착되기도 한다. 그러다 그 난해함을 아우르는 이미지를 만났을 때 오는 반가움이란. 물론 독자에 따라 읽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21세기의 시는 죄다 어렵지 않은가. 이 글을 쓰는 본인도 난해함에 항복하기도 했다.


3
변화하지 않는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 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전작의 시집 성향이 그 다음의 시집과 성향이 같다면 그는 그의 세계에 편안히 안주한 시인이다. 고로 그는 궁핍하지도않고 긍휼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게으른 시인이다. 어제 접한시와 오늘 접한 시가 같다면 생명력을 잃은 시인이다. 윤성택 시인을 처음 접한 건 그의 첫 시집 『리트머스』를 통해서다. 간결한 수식과 명확한 이미지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굳건히 만든 시인이었다라고 나는 기억한다. 그러기에 그의 두 번째 시집이 궁금했고 기다려져 왔다. 그가 만들어낼 세계와 변모된 시인이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감(感)에 관한 사담들』을 접하고선 정신없이 그의 뒤를 쫓았다. 전작 시집에서 보이지 않았던 난해함과 관념적 이미지들로 인해 피로감도 상당했지만 그로인해 만들어진 파장은 무궁무진했다. 어제 읽은 시편을 오늘 다시 읽으면 새롭게 재해석되기도 했다.
보물이 숨겨진 지도는 어렵다. 보물을 감추고선 때론 딴청 피우기 일쑤다. 여기가 보물인가 하면 저쪽이 보물이고 저쪽이 보물인가 하면 저 너머가 보물이 묻힌 곳이다. 한권의 보물지도인 『감(感)에 관한 사담들』. 나는 한동안 이 보물지도를 들고 보물을 찾아다닐 것이다. 당신도 편편 속에 감춰진 보물을 찾아 헤매시라. 난해하면 제쳐놓기도 하고 복잡하면 외면하기도 하면서 이미지 속 보물을 찾아 떠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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