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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 | 연재 [128회 마당수요포럼]
‘실버’만의 문화는 없다
100세 시대, 은퇴 후 문화를 위하여
정리 ㅣ 황재근_기자(2013-10-10 10:03:31)

주제 | 100세 시대, 은퇴 후 문화를 위하여
일시 | 2013년 9월 24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장소 | 한옥마을 카페 ‘공간 봄’ 세미나실
주최 | 사회적기업 마당
사회 | 이정덕_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토론 | 김봉곤_전주양지실버인터넷방송국 아나운서, 전 전주생명과학고 교감

         박지숭_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
         조경욱_전북발전연구원 여성정책 연구위원 조창배_성악가, 실버문화기획자
         한상갑_천주교 전주교구 신앙문화유산 해설사, 전 해성고 교장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노년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우리사회에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노년에 대한 인식변화와 함께 은퇴 후 삶에 대한 새로운 방정식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은퇴 후에도 경제적 활동에 지장이 없고, 아직 사회적으로 노인이라 칭하기 애매한 이른바 ‘낀 세대’, 즉 베이비부머가 관심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학력과 경제수준이 높은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기존의 노인정책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풍부한 경험을 살린 재능기부, 여유로운 시간을 활용할만한 다양한 여가문화 등 은퇴 이후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 새로운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닥쳐온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에 대한 우리사회의 준비는 아직 부족합니다. 은퇴 후, 더 역동적인 더 생산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 128회 수요포럼에서는 은퇴 이후 새 삶을 가꾸고 있는 분들과 현장에서 일하는 다양한 전문가들을 모시고 은퇴와 ‘실버문화’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눠봤다.



사 회 | 오늘은 ‘100세 시대, 은퇴 후 문화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아무래도 지금 은퇴를 앞둔 50대 후반, 그리고 막 은퇴한 60대들은 이전의 노년층과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오늘 주제의 대상은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로 조금 좁혀놓고 시작하려 한다. 토론순서는 먼저 은퇴자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들어보고, 현재 은퇴자들의 현황은 어떤지에 대해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눠본뒤 그리고 은퇴자들을 위한 은퇴자들의 문화가 어떤형태를 띄고 있고 어떻게 가야하는지에 대한 의견을들어보려 한다.
오늘 이 자리에는 이 분야에 전문가도 와계시고, 실제 그 세대를 대표해서 모신 분들도 있다. 먼저 은퇴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는 분들에게 경험담과 주위 분들의 사례를 들어보고 싶다.

김봉곤 | 올해 제 나이가 67세다. 2008년에 은퇴했다. 교직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으면서 한번도 은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눈만 뜨면 학교로 가서 교문 지키고, 말썽장이들 혼내고 바쁘게,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주위에서 연금재고가 바닥나고, 가만있으면 퇴직할 때 손해를 본다고 말들이 나올 때 처음 은퇴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안일하게 있다가 손해를 보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1년 쯤 후에 퇴직을 했다. 한동안은 실감할 수가 없었다. 다들 정상인인데 나만 우주인이 된 것 같았다. 현직에 있을 때도 시간을 쪼개 바쁘게 살던 사람이었다. 새벽에 테니스 치고, 짬나는 때에 책보고, 카메라 동영상도 공부하고 그랬는데, 막상 출근을 안하게 되니까 멍해졌다. 이제껏 계속 달리기만 했던 기차가 갑자기 멈춘것 같이 막막하고 하늘이 깜깜해졌다.

한상갑 | 올해로 72세다. 2005년에 교직에서 물러났다. 은퇴세대들의 고민이 무엇인가. 여러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봐야 한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이별로 화제가 정해져있다. 60~70세까지는 치아걱정을 하고 75세 넘으면 보청기 얘기를 한다. 아무래도 건강이 가장 중요한 화제다.또 공직이나 교직에서 은퇴한 사람들과 일반 회사은퇴자들은 다르다. 아무래도 연금이 나오는 공직,교직 은퇴자들과 달리 일반 직장 은퇴자들은 경제문제에 대한 고민이 크다. 여기 오기 전에 자료들을 찾아봤다.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것인데 베이비부머들에게 희망하는 노후생활에 대해 물었다. 취미생활을 하고 싶다는 답변이 가장 높은 42.3%였다. 그런데 다른 자료에 따르면 기본적인 생활이 어렵다는답변이 58.6%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취미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답변이 이렇게 높은 것은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욕구는 취미생활을 하고 싶은데 경제적으로는 어렵다는 거다. 내 생각에는 정기적으로 연금이 나오는 사람들은 취미생활을 우선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경제적인 고민을 우선으로 보는 게 아닌가 싶다.
아까 김봉곤 선생님이 퇴직하니까 하늘이 깜깜하더라고 했는데, 다른 조사를 살펴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퇴 희망 나이로 60~69세를 65.2%가 꼽았다. 그런데 현재는 그보다 훨씬 어릴 때 은퇴를 하지  않나. 국회에서 앞으로는 일반회사에서도 60세까지정년을 미루는 법을 2016년부터 시행한다고 하는데, 그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소위 ‘베이비부머 세대’가 아니다. 제일 힘들다고 하는 베이비부머들은 해당이 없다. 관련해서 인상 깊은 글을 읽었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문지방에 끼인 세대’라는 것이다. 배고픔도 겪었고, 경제발전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부모에게는 효도를 강요받고, 자식들에게는 희생을 요구받았다. 평생직장 신화가 깨진 것도, IMF 직격탄을 맞은 것도 이 세대다. 노후준비는 해놓질 못했고, 일할 의지와 일할 체력은 충분한데, 일할 곳이 없다.

김봉곤 | 어떤 사람은 ‘나는 60만 되도 퇴직할 것이다. 은퇴하고도 할 일이 많다.’ 이렇게 은퇴를 기다리는 사람도있고. 나 같이 ‘65세도 짧다. 더 뛰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다 갑자기 은퇴하니, 앞으로 뭘 할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어떤 친구는 복지관은 절대 가지마라 하더라. 그래도 나는 전부터 붓글씨에 관심이 많아서 복지관에 등록해, 붓글씨를 배웠다. 또 풍물을 해보고 싶어 그것도 배웠다. 그러다 2010년도에 복지관에서 아나운서를 뽑는다 해서 대학 때 방송반 했던 경험을 살려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한상갑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복지관에도 두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일자리 목매달지 마라. 나이 먹고 자식들 출가 시켰으면 앉아서 노후생활 해야지 하는 사람들. 또 하나는 한 푼이 아쉬운사람들이다. 연금 수입이나 경제적 문제로 인한 차이도 있겠지만 마음가짐의 차이들도 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빈곤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그냥 적당히 살자고 생각하는 다소 무책임한 사람들도 있다.

박지숭 | 저희 연구소에서 언론과 함께 ‘신 중년’을 주제로 기획기사를 내고 있다. 지금 은퇴할 나이의 세대들은자신의 나이보다 열 살 적게 느낀다고 본다. 스스로를 노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60~65세의 이런 분들을 ‘신 중년’이라 부르는 것이다. 인지능력, 신체능력도 모두 건강한데 일할 수 있는 여건은 되어있지 않다. 퇴직과 은퇴를 혼동해서 많이 쓰는데, 퇴직은 직장을 그만둔다는 의미고, 은퇴는 모든 경제활동에서 물러난다는 뜻이다. 대개 70세까지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하신다. 단순히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일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인일자리사업은 문제가 많다. 포스터 긁고, 지하철에서 티켓 나눠주고 하는 그런 일자리들을 원하는 게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그냥 예산을 흘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외국에서는 앙코르커리어라고 하는데, 인생 2기를 열 수 있는 일, 재미도 있고 경험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국가뿐 아니라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일자리들을 직접 만들어가는 노력 말이다.

김봉곤 | 20만원짜리 일자리들은 많다. 시니어클럽, 노인복지관 등을 통해서 그런 자리들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게 실효성이 있는가. 방송취재를 위해 동사무소 동장을 인터뷰를 해봤더니 성공 못했다고 인정하더라. 이게 숙제라고 느꼈다. 사아회 | 두 분과 마찬가지로 배우자분들도 은퇴를 하셨을 텐데, 은퇴 후 부부관계가 많이 달라진다고 들었다. 가족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나. 한상갑 | 안사람과 공직 퇴직을 같이 했다. 날마다 간섭하면갑갑해서 어떻게 살까 했는데 요즘은 집사람이 더바쁘다. 여기저기 배우고 다니느라고. 내가 이제 가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내가 집지키는 사람이 된 거같다. 허전하기도 하고, 잔소리 안 들어서 편하기도 하다. ‘낀 세대’들은 아직 자식 걱정에서 해방 안 된분들이 많다. 교육도 마쳐야 하고,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자식 부양이 갈수록 길어진다.

김봉곤 | 우리 세대들 사이에서 집에서 세끼를 다 챙겨먹는 사람들을 농담 삼아 ‘삼식이’라고 한다. 한 끼 먹으면‘일식이’, 두 끼 먹으면 ‘이식이’다. 못해도 하루 한끼 정도는 밖에서 먹을 수 있게 활동하려고 한다.

박지숭 | 재무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은퇴자들의 생활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가 부부관계다. 연구소에서 ‘앙코르’라는 은퇴자들의 모임을 하고 있다. 60세 중반에서 73세까지 계신다. 이 분들은 경제적으로는 여유로운 분들이다. 이 분들의 제일 큰 고민이 부부관계더라. 은퇴하고 직장이 없어지면 집에 있으면 맞닥뜨리는 게 바로 부부관계다. 부부간의 대화라든가, 생활스타일이다. 회사 다닐 적에는 와이프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은퇴에서 집에서 맨얼굴로 들여다보게 되니까, 그제야 ‘내가 와이프를몰랐구나’ 싶은 거다.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면 코드가 안 맞는다. 직장생활 할 때는 그렇게 맞출 필요가 없었다. 바쁘기도 하고. 그런데 이제 와서 같이뭔가를 해보려고 하면 뭔가 핀트가 잘 안 맞는다. 부부관계 진단지를 작성하도록 해봤는데 부부간에 안맞는 게 꽤 많다. 그런데 이제와서 바꾸려고 하면, 사실 50~60대가 되면 성격이나 말투를 바꾸기가 정말 힘들다. 그래서 갈등을 겪는 부부가 많고 각방 쓰고 대화 없이 지내는 경우도 많다. 이런 문제를 은퇴후에서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그 전부터 오랫동안 서로 의견도 나누고 소통해가면서 함께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조경욱 | 사실 노후를 맞는 남녀간의 차이도 있다. 노인들 모임을 보면 대개 여성모임은 잘되는데 남성모임은 잘안된다. 여성은 관계지향적이기 때문에, 수다를 떨면서 진심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런 관계자체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런데 목적지향적이다. 일이 최고였고, 일이 중심이었는데 그 목적이 사라져 버리니까다른 사회적 관계들이 잘 형성되지 않는다. 노후를생각할 때 이런 관계에 대한 문제들이 중요하다.

사 회 | 박지숭 연구원께서는 우리나라 은퇴자들의 생활에대해 현황을 잘 아실 것 같다. 전국적인 흐름이나,변화가 있는지.

박지숭 | 원래 우리나라에는 노후준비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은퇴 후 노후가 길어지면서 금융권에서도 저희같은연구소를 만들고, 노후준비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100세 시대’라는 말은 지난 정권부터 유행어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은퇴하실 분들, 은퇴하신 분들은 거의 준비가 안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무설계부터 여가생활, 부부관계까지 은퇴이후의 삶에 대해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은퇴자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친목, 종교활동에 여행 조금 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능동적으로 문화생활을 하는 분들은 거의 없다.경제적 준비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분들의 가장 큰고민은 자녀부양이다. 자녀들의 독립시기가 늦어지면서, 유학에 결혼에, 집도 한 채 해줘야 한다는 걱정이 가장 크다. 이런 재력을 본인들의 노후준비에 쓴다면 좀 더 여유로워질 수 있겠지만 그걸 놓을 수 있는 분들이 없다. 그러다보면 노후준비니, 여가생활 같은 건 생각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저희는 최소한 50대부터 준비를 하시도록 권한다.지금의 4~50대들은 10~20년 후에 지금 세대처럼 당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리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사 회 | 조창배 선생님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기획을 고민하고 계신다고 들었다. 이른바 ‘실버문화’라는 것에 어떤 특징이 있는가.

조창배 | 사실 이제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한 단계다. 여러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아무래도 문화적으로 접근을 하는데, 아까 한상갑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에 공감을 한다. 문화향유, 취미생활에 대한 욕구는 굉장히 높은데 실제로 참여하는 분들의 비율은 낮은 편이다. 경제적인 이유를 제외하고, 본인들이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는 제약이 무엇일까. 그게 제 고민이다. ‘실버문화’라고 하나로 정의하기는 힘들 것 같다.
어르신들과 함께 성악아카데미를 하고 있는데, 그분들 하시는 말씀이 30년을 열심히 공부하고, 30년 동안 그걸 다 소진했다는 거다. 앞으로도 더 30년을 살아야 하는데 이제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앞으로 나는 무엇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 나를 설레게 하는 건 무엇인가. 그런 자극을 받으면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그분들을 지켜보면 열정이란 단어를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어르신들인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은 수식어로 열정이란 단어를 쓴다고 하면, 그 분들은 진짜로 열정적이다. 아카데미 회원 중 한분은 서울에 사시는데 친구 분 따라서 아카데미를 시작하시면서 매번 전주로 내려오셔서 참여를 하신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합창을 시작하시면서 고향가는 길이 언제나 즐겁고 설렌다고 하신다.
처음에는 레슨을 이렇게 시작했다. 뭐 하러 열심히하시려고 합니까. 적당히, 재미있게 하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제 역할은 더 열심히 하실수 있게 도와드리고, 더 큰 희망, 꿈을 갖게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꿈을 가지라고하지만 실제로 꿈을 이루고, 그걸 자신의 삶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그런데 이분들은 자신의 의지대로만 살수는 없었던 삶의 1막을 마치고 이제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것이다. 어린 시절, 젊은 시절 묻어놨던 자신의 진짜 꿈을 찾고 싶은 욕구가 크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욕구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한 것이다.

김봉곤 | 삶의 의욕을 느끼려면 활발히 움직여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실버문화’라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절대 좌절하지 말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도 집착하지도 말라고 말한다. 이거 아니면 죽는다고 집작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그리고 자신을 믿고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인 사고, 적극적인 사고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 이런 것이 실버세대들이 만들어야할 ‘실버문화’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 | 조창배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그런 욕구를 갖고 있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는 건가?

조창배 | 굉장히 많다. 우리나라에 요즘 색소폰 붐이 불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다. 다 색소폰에 향수가 있는 세대들이 붐을 만들고 있는 거다. TV에서도 청춘합창단이 인기였다. ‘어머니가 여자인줄 몰랐다’ 뭐 이런 말처럼 어르신들에게 그런 욕구가 있다는 걸 많이들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저희 어머님 연세가 82세인데 하시는 말씀이 있다. 젊은 친구들 보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어르신들끼리만 모여계신 거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 하신다. 나이로 구분지어서 그분들만의 활동을만드는 것보다 여러 연령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
사실 노인대학이나 복지관에 가보면 노년층 대상 프로그램들은 굉장히 많다. 대개 보면 노래교실 같은형태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요즘 은퇴하시는 분들은교육수준도 높고 취향도 다양하다. 그런 프로그램으로는 이분들의 문화적 욕구가 충족이 안 된다. 노인이라고 다 트로트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않나. 시간때우기나 소일거리가 아니라 더 큰 꿈을 갖게 하고, 더 큰 의욕을 갖게 하는 프로그램 방향성이 필요하다.

박지숭 | 노인복지관에서 많이 하는 것은 주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노인’이라는 말로 너무 틀을 지우는 것 같다. 요즘 은퇴세대들은 실버라든가, 노후준비라는 말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않는다. 거기에 깔려 있는 부정적이고 단절적인 뉘앙스들을 싫어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복지관 명칭을 바꾼다거나, 건물 자체를 바꾼다거나 이런 시도를 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가와 민간이 각기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문화기획자들이 늘어나야하고, 노인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노인대상 프로그램이라는 편견 자체를 버려야 한다. 75세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는 것이다. 노인복지관에서 하니까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 이렇게 구분 지을 것이 아니라 누구나 어떤 세대에서도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지역 문예회관등을 통해서 전 연령이 같이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형태가 늘어나야 한다.

조경욱 | 제가 노인 조사 인터뷰를 하면서 보니까, ‘실버문화’라고 하나로 규정지을 수가 없었다. 노인층도 굉장히 다양한 계층별로 문화가 나뉘어있다. 경로당, 복지관은 빈곤한 사람들, 평생교육원은 여유 있는 분들, 이런 식이다. 또 연세가 많으신 분들과 최근 은퇴하신 분들은 완전히 다르다. 서로 살아온 삶이 다르고, 현실적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이분들을 억지로 하나로 묶을 수가 없다. 주로 복지의 대상이 되는취약계층들에게는 소득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역의 여러 자원들을 엮어서 일자리를 제공해야하고, 그렇지 않은 계층의 노인들 대상으로는 여가가 됐든, 교육이 됐든 질 높은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세분화되고 개별화된 노인계층을 하나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조창배 | 요즘 ‘꽃보다 할배’가 인기를 끌지 않았나. 노년층에 대핸 기존의 인식을 새롭게 해주는 면이 사람들의관심을 끌었다고 본다.

박지숭 | 저는 좀 반대로 생각했다. 어? 할아버진데 길을 잘아네?, 할아버지인데 외국어를 잘 아네? 이런 걸 보면서 젊은 층들이 놀랐다는 것 자체가 노인에 대한편견이 강하다는 걸 느끼게 했다. 이분들이 갑자기어디서 떨어진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상사, 리더, 어른의 역할을 그동안 쭉 해 오셨던 분들인데 은퇴하고 나이를 먹으면 보살핌의 대상 또는 사회와격리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 은퇴와노화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들이 퍼져있다.은퇴에 대해 생각하면 두렵거나 불안하가를 물어봤을 때 대부분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반면에 은퇴가기다려지거나, 빨리 하고 싶다는 분들도 있다. 외국은 이런 분들이 더 많다. 빨리 은퇴해서 인생을 즐기고 싶다는 분이 많다. 저는 우리나라도 은퇴는 정말 기다려지는 거고, 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30년을일했으면 그 후에는 또 가슴 뛰는 내 꿈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구나 이런 인식이 커져야 한다. 그걸 실현하고 계시는 연장자분들이 늘어나고 그게 널리 전파돼서 젊은 사람들도 나도 은퇴는 언제쯤 하고 싶고 은퇴 후에는 이렇게 살아야지, 미리 생각하면서미리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한다. 이렇게 능동적으로 은퇴는 언제 하겠다, 은퇴 후에 어떤 모습으로 배우자와 어떻게 살겠다. 이런 고민들이 쌓이고, 사례들이 만들어져서 그렇게 은퇴문화, 실버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봉곤 | 이상은 그런데 현실은 좀 차이가 있다. 나도 젊을 적에 기타학원에서 한 달씩 배우고 했다. 그런데 은퇴하고 하려고 하니까 안 되더라. 하고 싶은 걸 하려고해도 잘 안 되는 분들 많다. 다행스럽게 나는 아나운서를 하고 싶었고, 지금 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을 보면 하고 싶은 것이 있고, 해보려고 했는데 안 되는 경우가많더라.

박지숭 | 그래서 그런 취미생활을 미리부터 갖고 있어야 한다고 권한다. 나중에 해야지 생각하지말고 지금 바로시작해야 은퇴 후에 자신의 생활로 만들 수 있다.

한상갑 | 우스갯소리로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있다. 가만히 보면 주변에 시간별로 도서관도 가고 강의실도가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팍 쉬어버린다. 은퇴했다고 막 이것저것 하는 것도 좋은 것만은아닌 것 같다. 나름대로 미리부터 자신의 정신적인줏대를 가지고 한쪽을 파는 게 좋다고 본다.

조경욱 | 대학에서 수업을 하는데 학생들에게 인생을 구체적으로 설계해보는 과제를 줬다. 예를 들면 결혼을 몇살에 하고,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이고, 언제 은퇴를할 것인가. 이런 식이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굉장히좋아하고 적극적으로 과제를 해오더라. 그런 걸 보면서, 이런 교육이 필요하겠구나. 인생의 어떤 시기에 바로 닥쳐서 고민하는 게 아니라 미리 생활 속에서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후 준비에 3억, 4억이 든다’, 이런 수치들이 공포심을 유발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자신없어하고은퇴를 두려워하게 된다. 전문가들이 은퇴를 10년이상 준비해야한다고 말하는 데 이건 재정문제도 있지만,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취미생활을 하든, 봉사활동을 하든 은퇴하고 찾으려 하지말고 10년 정도는 꾸준히 생활화하라는 뜻이다. 이런 인식과 시스템이 우리사회에 필요하다.

사회 | 한상갑 선생님께서 하시는 활동은 사회공헌활동, 자원봉사활동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경험 많은은퇴자들의 재능기부도 중요한 화두인데, 선생님의활동을 통해 느끼신 것 또는 다른 분들에게 권하고싶은 게 있으신가.

한상갑 | 2005년 은퇴한 후에 그해부터 천주교 신앙문화유산해설사를 하고 있다. 아마 다른 지역에는 없는 직함일 것이다. 전라북도와 전주에 천주교 관련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그래서나름대로는 전주지킴이, 전주 알림이의 역할을 하고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부심을 갖고 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안내해달라고 오면 같이 산에도 올라가고,내비게이션이 못 찾는 길도 알려주고 한다. 육체적으로 고되긴 하지만 안내받은 사람들이 고마움을 느끼는 걸 보면 보람이 생긴다.
오늘 하시는 말씀들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결국 ‘실버문화’라고 구분 지을 필요는 없겠다는생각이 든다. 함께, 같이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이 세상에 저 혼자 태어난 사람은 없지 않은가.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갈수록 나는 나, 너는 너 이런 이기적인 문화가 퍼지는
것 같다. 프랑스 남부에 성모발현 성지가 있다. 그곳에 수많은 위독한 환자들이 찾아와 기도를 한다.
전주교구장 주교님이 얼마 전에 그곳을 다녀왔는데뭘 느끼고 오셨냐면, 처음에는 다 자기만 생각하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돌봐달라 부탁을 한다는 것이다. 절박한 죽음의 순간에서 나보다 이 사람이 더 힘드니까 살려달라고 하는걸 보면서 많은 걸 느끼셨다고 한다. 법정스님이 번역한 법구경 한 구절을 감명 깊게 읽었다. ‘내 자식
이다, 내 재산이다 하면서 어리석은 사람은 괴로워한다. 제 몸도 자기 것이 아닌데 어찌 자식과 재산이제 것일까.’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다 내 것이고나눌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와 함께 ‘내가 없는 와중에도 무언가 나눌 수 있다’는 나눔의 문화가 퍼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세대 구분을 떠나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박지숭 | 사실 젊을수록 물질적 가치를 움켜쥐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보다 고결한 것들, 가치 있는 것들, 의미있는 것들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성숙미가 절정에 달하는 게 노년기이다. 최근에 제가 연구보고서 쓴 게 노년기의 마음챙김에 대한 것이다. 마음챙김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 데이터를분석했다. 노년기에 어떤 사람이 행복한가, 노년기에도 스트레스 있을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극복하고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 뭐냐 이런 부분을 살펴봤다.
여기서 중요한 게 바로 연결성과 내적자원이다. 연결성은 내가 혼자가 아니다. 내가 타인의 배려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다. 이런 관계성을 말하는 것이다. 내적자원은 내 삶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다는 자각이다. 내가 주도적으로 내 삶을 이끌어가겠다, 내가 원하는 걸 내가 스스로 알고 내가 가진 역량을 다 발휘해서 살 수 있다, 이런 마음가짐이다. 이런 내적자원과 주변을 둘러보는 연결성이 만나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봉사가 되고, 스스로의 행복감을 고취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에서 노년층의 역할이 될 수도 있고, 노년층 문화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김봉곤 선생님이나 한상갑 선생님의 활동 모두 새롭고 널리 알려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사회가 노후에 대해 불안감만 조성할 것이 아니라 이런 모범사례들을 널리 퍼트려야 한다. 여기서는 언론이나공공기관의 역할도 필요하다. 이런 사례들이 나비효과처럼 퍼져나갔을 때 은퇴 후 삶이 어렵거나 두려운 게 아니구나 하는 인식들이 생겨날 것이다.

사회 | 오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말씀을 부탁드린다.

한상갑 | 재능기부라는 말을 쓰는데 그보다는 재능나눔이라고 하면 좋겠다. 가진 게 많아서 기부하는 게 아니라 서로 부족한 가운데 나누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많이 좋아진 것이 아프리카 등지에 해외 불우이웃 도와주기 운동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참 좋은 풍토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분야의 나눔문화가 정착되고 그 안에서 노년층들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정립될 수 있기를 바란다.

김봉곤 | 노인과 젊은이가 같이 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젊은이에게 꼭 필요한 것이 노인의지혜다. 사회에서 노인들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젊은이들과의 공감대를 넓히고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노인문화가 생겨났으면 한다.

조창배 | 나이가 든다고 설렘이나 꿈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걸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가 고민이다. 오늘 도움이 되는 말씀을 참 많이 들은 것 같다. 앞으로는 동네 합창단을 해보고 싶다. 세대나 연령으로구분하지 않고 꼬마도 청소년도, 노인들도 함께 즐겁게 음악을 통해서 어우러지는 문화를 만들어보고싶다.

조경욱 | 세대 간의 구분보다는 함께 어우러지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엄마들은 아이 돌보는 파트타임을 믿지못하고, 노인들은 아이들을 돌보고 싶어 한다. 어린학생들이 노인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자존감이 높아진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경험은 중요하다. 이런 관계를 만들기 위한 정책들을 개발하고 실현해나간다면 우리사회 무두에게 필요한 ‘실버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박지숭 | 연령 통합적으로 교육을 받고, 전 생애에 걸쳐서 평생 배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으면 좋겠다. 마을 단위로 이런 것 프로그램과 활동이 이뤄진다면좋겠다. 그동안 전통적인 공동체가 해체되고, 가정이 중심을 못 잡아주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겨났다. 마을단위의 평생교육은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또 잘되는 사례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전파돼서 그야말로 문화로서 확산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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