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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 | 연재 [이십대의 편지]
달팽이는 달린다
이동한 우석대 문예창작대학원 석사과정(2013-10-10 10:05:32)

달팽이가 나뭇가지 덤불을 펴며 지나가고 있다. 머리를 앞으로 쭉 내밀고 힘껏 오르막길을오른다.
길을 지나다니면 나는 무수히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달린다. 말 그대로 길일뿐이다. 인생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길바닥에 함부로 흘리고 다니지 않는다. 그러한 굴곡은 내가 생각하기도 전이 이미 지나가버렸다. 어디서 어리로 가는 관념에 요란을 떨어댈 필요가 없다.
나는 글을 쓴다. 좀 더 명확하게는 시인이 되고 싶다. 현재 대학원을 다니며 내 꿈에 가까이가려 노력 중이다. 저 꿈 너머에는 분명이 내가있다. 이미 오래 전에 확신했다. 다만 언제쯤이나 도착하려나?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풍경은매우 매혹적이다. 한눈을 한껏 팔며 가다보면 어느새 얼큰하게 취한다.
전주 남부시장 2층에는 청년몰이 있다. 2층으로 가려면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경사로를 통해야 올라갈 수 있다. 전주시에 내가 갈수 있는 길중 가장 가파르며 험하고 높은 곳이다. 청년이되려면 거쳐야하는 장애물 쯤 되는 셈이다. 그경사 맨 위에서는 남부시장이 한눈에 보이며 그뒤로 전주천이 흐르고 있다. 이 절경을 좋아하지않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청년몰 공중화장 쪽 한쪽 귀퉁이에 있는 흡연구역 때문이다.
나는 담배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재떨이를 두고 빙그르 둘러않아 아무 말 없이경치를 내다보기를 좋아한다. 매번 낯선 사람들과 이 공간을 매우지만 어색함이 낯설지 않다. 모두 한 다리씩 건너 아는 사람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전주사람을 한 곳에 모았다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사단 군선임과 후임이 만나기도 하며, 학교 선후배중 상대방의 친인척 만나기도 한다. 매우 신기한 경험이다. 인맥을 엮다보니 왜 내가청년인지 알 것도 같기도 하고, 몰라도 괜한 후회나 아쉬움 따윈 없다. 뭔가 막연하지만, ‘분명 나는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다고 어떤 소속감으로 이곳에다 내 외로움을 의지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엉덩이를 붙인 자리에 오래 머물면서 궁상맞은 방황을 자초한다.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한 편의 초고 시를 완성하기 위해 화장실을 수십 번 들락거리기도 하고, 자리를 오래 차지하려 커피를 리필 해 연거푸 마신다. 커피로 부대낀 내부를 들여다본다. 도서관을 다닌다거나 혼자 집 보던 지루한 일상에서 누군가를만나 소통을 시도하는 일상으로 바뀐 진 얼마 되지 않았다. 한 편의 이야기가 내 내부에서 나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불현 듯 치민다. 애써 무시하고 지냈더니 세상을 보는 내 시선이 편협해진 게 아닐까? 내 20대에는 불안이 없다
장애를 입은 후 처음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버스 정류장들이 무심코 넘기는 책 페이지처럼 스륵스륵 지나간다. 여러 날을 책 한권 보지 않고 살아갈 때였다. 달팽이는 멈춰 섰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더듬이를 휘저으며방향을 잡고 있다. 내게도 아직 둘러볼 것이 많이 남았다. 내 전동휠체어는 쌩쌩 잘나간다. 길을 찾다보면 인도를 걷기도 하고 도로를 자동차처럼 달리기도 한다. 지름길을 찾아 낼 때가 있고 길을 잘 못 들어 한참동안 길을 해매일 때도 있다. 달팽이처럼 멈춰 서서 신경을 곤두세운다. 어찌되었든 집엔 꼭 들어간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한 10년 만에 버스를 타는 건데도 역시 설레지 않았다. 열일곱 살에 뇌수막폐혈증이란 질병에게 습격을 당하고, 수술과 치료로 남은 10대를 보냈다. 그때 설레지 않았던 건 여전히 설레지 않고, 당시 열광하던 건 지금도 열광한다. 축구가 그랬고, 오토바이도 그랬으며, 시시껄렁한 농담과 코미디 TV프로그램이 그러하다. 하지만 스무살의 나는 그것으론 부족했다. 열광하고 소유하고 사랑하고 싶은 것이 늘어났다. 문학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고파서 술을 마시고 늘 주위를살피고 귀를 가져다 댄다. 그러는 동안 계절이 바뀐다. 나는 계속 머물고 있는 것 같은데, 풍경은 매번 옷을 갈아입고 어디론가 떠난다. 그런 이별은 한동안 감기로 머문다. 내 욕망은 환절기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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