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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 | 연재 [상식철학]
사랑에 살고, 노래에 살고
김의수 전북대 명예교수(2013-11-05 15:14:32)

오카리나인가 오페라인가
나는 정년퇴임 후에 악기를 좀 배우려고 했다. 그러나 한 반만 맡고자 했던 강의가 세반으로 늘어나니 정년이 유보된 느낌이고, 아직 다른 여유를 갖기 힘들다. 그래서 매주 나가던 독서 토론 모임에도 잘 못나가게 되고, 매주 2시간 합창단 활동에만 성실히 참여한다.
노래를 좋아하는 나지만, 오페라 공연을 관람한 것은 몇 차례 안 된다. 우선 오페라 공연이 자주 있지도 않았고, 티켓이 비쌌으며, 무엇보다도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3년 전 이태리 베로나 원형경기장에서 본 야외공연이 최고 수준의 공연이었고, 전주, 천안, 서울에서 한 두 차례 씩 본 정도다. 그런데 금년에는 오페라의 세계로 직접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 합창단이 지난 8월에는 베르디 오페라 갈라콘서트에 참여했고, 이번에는 연기까지 겸하는 오페라 토스카에 직접 출연하게 된 것이다. 영광이라고 말해야 할지, 오래 살다보니 결국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노래가 좋았다. 시골 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2중창을 또래 친구와 논둑길을 걸상식철학으며 함께 부르곤 했다. 중학교에 가서는 음악시간마다 새로운 노래를 하나씩 배웠고, 매번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면 선생님이 나를 앞으로 불러내어 그날 배운 노래를 혼자서 부르게 했다. 처음엔 기분이 좋았으나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좀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2학년이 되면서 변성기가 왔고, 나는 엄살까지 보태어 노래 부르기 임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서 다시 노래가 하고 싶어졌다. 변성기로 노래를 못하고 지내니 너무도 갑갑했다. 결국 고등학교에 가면서 변성기는 끝이 났고, 나는 다시 음악시간마다 독창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싫증을 내지 않고 스스로 노래하기를 즐겼다.

독일이 음악의 나라라고?
우리는 중고등학교에서 독일 가곡을 배웠다. 그래서 ‘들장미’ ‘보리수’ ‘자장가’ 같은 독일 가곡들은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베토벤의 ‘Ich liebe dich!’는 또 얼마나 감미로운가. 독일은 시와 음악의 나라라고 배웠고, 철학이 있는 곳이어서 나는 그곳으로 유학을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독일 사람들은 평소에 노래를 즐기는 것 같지가 않았다. 뮤지컬 영화 ‘황태자의 첫 사랑’과는 딴판이었다. 파티를 해도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주로 대화만 하거나 춤은 추지만 노래는 잘 안 했다.
어느 날 지도교수와 함께 대학원생들이 레스토랑에 갔다. 그런데 어디선가 멋진 합창소리가 들린다. 2층으로 올라가보니 머리가 하얀 호호 할머니들이 ‘들장미’ ‘보리수’ 같은 노래를 멋지게 화음을 맞춰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고 화음도 아주 잘 맞아 나는 마치 고향에라도 온 듯 반가웠다. 그렇게 감동을 받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지도교수가 고개를 살살 옆으로 젓는다. 의아해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저 할머니들이 나치시대에 소녀단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라는 거다. 나치는 소년 소녀들을 앞세워 돌격대와 문화대로 활용했고, 그 여파로 독일인들은 저 아름다운 노래마저 혐오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자장가도 독일 가곡 대신 우리 동요로 불렀다. 그러나 우리 가곡에도 똑같은 아픔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우리가 즐겨 부르던 가곡의 작곡가들 중 친일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는 몸에 익어 감미로운 노래지만 부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나는 7년 전부터 시민합창단에 참여하고 있지만, 지휘자가 새로운 곡을 가져올 때마다 그 노래는 건강한 노래인지, 오용된 흔적은 없는지 잠깐씩 생각해보게 된다.
너무도 낭만적인 이 글의 제목은 토스카가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이다. 전제주의에 반대하고 공화주의를 지지하던 화가 카바라도시를 사랑한 오페라가수 토스카가 부르는 열정적인 노래이다. 나는 민주주의를 역주행하는 이 나라 현실을 잠시 잊고 무대 위에 올라 19세기 프리마돈나 토스카를 가까이 바라보며 합창을 할 것이다. 11월 14일은 나에게 멋진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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