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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 | 연재 [이십대의 편지]
자기 배려
조봉경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과 석사과정(2013-11-05 15:14:46)

나는 누구입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나를 이끈 세 가지 물음이다. 한국적인 아름다움, 한국의 문화 그리고 불가피하게 국외에서 살고 있는 재외교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동했다. 국내외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들과 다도와 갤러리를 하시는 어머니와 함께하면서 켜켜이 쌓여온 것들이다. 8살 때부터 지금까지 학교 대신 이곳 저곳 방랑하면서 만난 지난날의 흔적들과 다양한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의심한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날 전율하게 했던 것들에 대해서. 한국문화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을 잘 지켜야 한다는 꿈과 소중한 역사의 흔적들이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지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강하게 이끌려왔다. 모두가 반대했던 한국전통문화학교에 들어갔고, 모두가 의아해했던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과에 왔다. 하지만 대학원 첫 시작부터 녹록치 않았다. 학교에서 열린 수업을 듣고, 사람들을 만나고 오는 길이면 숨이 턱턱 막혔다. ‘아, 이곳에서 내가 가장 아는 것이 없구나.’
시간이 흐르면 무지함을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순간들이 조금씩 적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나의 기대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거대한 꿈을 쫓아 여기에 왔으니 내 동력은 분명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두려움이었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이 나의 무능함을 다 알아챌까 겁이 났고 뒤처지는 것이 무서웠다.
학위논문을 써야하는 마지막 학기가 되면서 매일 한계의 벽에 부딪혔다. 무지의 벽 앞에서는 겸허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방학부터 매일 연구 주제를 찾는데 몰두했으나 시간이 한참이 지나도록 찾지 못했다.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아니라, 연구할 수 있는, 소위 연구거리가 되는 주제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구를 위한 연구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문화가 정책의 대상이 되긴 하니?”라고 묻는 교수님 앞에서, 문화정책의 ‘문’자도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다.
속상한 마음에 울면서 관악산을 내려온 밤이 많았다. 자료가 없으면 연구할 수 없고, 엄밀한 방법론으로 설명할 수 없으면 연구할 수 없고, 새로운 주제와 방법은 안전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도 ‘문화’처럼 효과가 눈에 보이지도, 숫자로 측정해서 보여줄 수도 없는 분야는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한 주제였다. 공부가 세상을 위한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계가 세상과 점점 괴리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독창적이고 새로운 접근방법은 독이 되는 걸까. 연구자를 위한 안전한 연구가 더 위험한 것이 아닐까. 많은 생각이 밤을 어지럽혔다.
나의 이십대는 경계에 서있다. 겨우 찾은 연구주제도, 내 모습도. 모르는 것과 알아야 할 것들의 경계.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 내가 소중하게 여겨온 것과 외부에서 가치 있게 여기는 것 사이의 경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들과 인정해야하는 순간 사이의 경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을 인정해야 할 때마다 내 자신이 초라해보였고,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거짓과 눈속임으로 스스로를 배려하지 못했던 날들. 아이러니하게도 이십대 가장 어렸던 스무 살, 스물한 살 나는 가장 늙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인정할 수 없었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나의 한계를 바로 쳐다볼 수 있다. 나는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다. 특별한 재능도 천재적 감각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찬란하게 슬픈 순간들의 연속.
‘울어도 좋고 물러나도 좋고, 한 번 멈춰도 좋다. 지금 내가 있는 여기서 배우면 되는 거니까. 마구마구 흔들리면 중심이 잡힐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기 위해서가 아닌, 정말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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