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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8 | 연재 [71회 백제기행]
국토의 허리를 감싸고 도는 민족의 젖줄, 한강
강따라 삶따라, 강마을 사람들의 삶
김담용 군산중앙중학교 교사(2014-04-28 15:52:54)

나는 중학교 사회과 교사이다. 작년 9월에 임용이 되었으니까 교육경력이 아직 채 1년도 되지 않은 왕초보 새내기 선생님이다. 학생들은 모두 이쁘고 사랑스럽다. 사춘기의 한가운데 있는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과 어설픈 어른의 몸짓을 하며 끊임없이 크고 작은 일들을 일으킨다.

수업을 하다보면 자꾸 벽에 부딪친다. 분명 대학교 때 답사를 다니면서 보고들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설명을 하려하면 결국은 교과서와 똑같이 되고 만다. 고구려 예술은 힘과 정열이 있고, 백제의 미술은 우아하고 세련되었으며, 신라의 미술은 소박한 가운데 조화 있는 아름다움... 어쩌고... 정작 내가 느끼지 못하면서 설명을 하려니 주입식 암기수업의 틀을 깨지 못하는 것이다. 답답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문화유적 답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용기를 내게 된 것은 답사를 다녀온다고 해서 뭐가 얼마나 달라질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대학교 때 답사를 가면 밤새 친구들과 흥청대다가 낮에는 차에서 자고 답사지에서도 사진이나 몇 번 찍는게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학교 때처럼 무의미하진 않겠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무얼 얻겠나싶어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백제기행. 솔직히 한숨이나 돌려볼까 해서 결심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이고 본격적으로 차가 출발하면서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단체와도 확연히 다른 구성원들의 태도를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약속시간에 절대 어긋나지 않는 성실함. 불타는 듯한 문화유적에 대한 애정과 탐구심. 백제기행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그러한 분들에 동화되어 한마디 한순간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나를 보게 된 건 첫 여정지인 춘천에 도착하기도 전이었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4시간 여를 달려 추천에 도착하였다. 춘천은 호반의 도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들어서는 입구부터 야릇한 물비린내가 느껴졌다. 전국 태권도 대회가 열려서인지 도시는 어쩐지 들떠 보였다. 춘천에 도착한 일행은 먼저 강원대 박물관에 계시는 김남돈 교수님을 만나 안내를 받게 되었다.

먼저 찾은 곳은 얼마 전에 새로 단장한 고려칠층석탑이다. 현재 소양로 한복판에 서 있는데 원위치에 원형을 갖추고 있으나 소속하였던 사원은 알 수 없단다. 6․25동란 당시 접전지였던 터라 외형의 손상이 심한 이 탑은 시장 한복판에 있던 것을 20가구를 매입해서 복원하여 오늘날 기어이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문화재를 소중히 하는 춘천인의 마음을 말씀하시며 교수님의 얼굴은 반짝였다.

이어 이미 어둑해진 외곽도로를 돌아 춘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대룡산 전망대로 향했다. 사방이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 춘천은 봉황의 모습으로 봉의산과 금강산․설악산을 원류로 하는 두 물줄기가 절묘하게 만나고 있었다. ‘이러한 곳이라면 선사시대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탐내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아 무렵. 이러한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교수님은 거침없이 설명하시기를 봉의산 건너로 구석기 유적이 분포하며 신석기 시대의 고인돌떼와 적석총, 움집 등이 있다고 하였다.

춘천을 방문하면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 춘천닭갈비로 저녁을 하였다. 이미 전국적으로 대중화 된 음식이라, 또 입맛 까다롭다는 전라도인인지라 그다지 감동할 만한 맛은 아니었지만 답사에 대한 만족, 여러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 그리고 내일 답사에 대한 기대 등으로 술 한자 하지 않았는데도 취하고 즐거웠다. 그 날 밤, 모처럼 밤공부(이전에는 밤에 그 지역 교수님으로부터 특강을 듣기도 하고 작은 연주회를 하기도 했단다)가 없다면서 둘러앉아 기울인 술잔이며 흘러간 가요 ‘이름 모를 소녀’까지 춘천과 함께 잊지 못하리라

다음날 아침, 첫 목적지는 소양 댐. 이전 같으면 엄청난 규모에 감탄하고 놀랐을텐데, 유적답사 하루 다니더니 수몰된 곳에 묻혀있을 유물 유적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침 식사 후 중도(中道)에 있는 고인돌떼를 보러 갔다. 그곳에는 북방식 남방식 고인돌 뿐만 아니라 적석총, 움집까지 잘 갖추어 놓고 있어 좋은 교육자료실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춘천에서의 일정을 서둘러 마치고 서울로 향했다. 일요일 서울은 워낙 교통변수가 많은 곳이라 계획대로 하기 어렵다고 했다. 어찌 되었건 난 풍납토성이 보고싶었다. 풍납토성은 얼마 전에 역사스페셜에서도 다뤘을 만큼 ‘개발인가 문화재 보호인가’의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토성의 폭이 무려 40m 에 이르고 해자(성 밖을 둘러서 판 못, 성호, 외호)까지 갖추었다는데, 이제는 그 위엄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초라한 언덕에 지나지 않게 되어있었다. 곧 엄청난 유적들을 짓이겨 밟고 고층아파트들마저 들어서겠지. 우리 전북 지역에서 얼마 전에 발견 된 엄청난 규모의 청동기 시대 유적지를 제대로 발굴도 하지 못했는데 용담댐 수몰지역이 될 것이라는 기사도 생각난다. 문화재 보호는 여유 있는 나라만의 사치인걸까? 우리의 문화 유적은 나중에라도 땅만 파대면 발굴되는 것인가? 반만년을 이어 내려왔다는 우리의 문화와 전통, 그저 말로만 떠들 것인가? 풍납토성이 아파트 화단 따위가 되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이 나온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여정인 암사동 신석기 유적지는 도심 속의 휴식공간으로 아주 잘 정비되어 있었다. 신석기 시대 움집의 형태를 똑똑히 확인 할 수 있었으며, 층을 이루어 보수하고 재건한 흔적들로 오랜 세월동안 생활 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서울을 빠져나와 여주로 향하였다.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궁녀로 속이고 간신히 궁을 빠져나와 몇 달을 피신해 있었다는 명성황후 생가가 있는 곳, 도자기와 쌀이 이름난 곳 여주. 바로 남한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먼저 신륵사로 향하였다. 신륵사는 나에게 특별히 의미 있는 절이다. 93년도에 역시 학교 답사일정으로 처음 이 곳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새벽녘, 여러날 답사로 피곤에 지친 몸을 일으켜 이 곳 신륵사 입구에 다다랐을 때 자욱하게 번져있던 물안개며 알싸한 향내가 혹시 이곳이 별세계로 가는 입구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했었다. 내 기억 속에 신륵사는 그렇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절이었다. 그러나 7년 전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상업적인 유원지로 탈바꿈하여 그저 떠들썩하기만 하였다. 의연하게 자리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완전한 모양을 갖추고 있다는 전탑 만이 믿음직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찾은 곳은 이번 답사 중 가장 흥미로웠던 고달사지이다. 역시 7년 전 이곳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이름 없는 옛 절터에 불과했었다. 귀부와 이수만이 남은 볼썽사나운 비석과 부도쯤이 전부였던 이곳이 대대적으로 발굴을 하여 어느 정도 발굴이 완성된 시점에 우리가 운 좋게도 찾아간 것이다. 아직도 발굴할 것이 많아 보이는 이 곳의 규모는 놀라울 정도로 넓었다. 고려시대의 절로 알고 있던 교수님은 발굴한 곳을 보니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으셨다. 약 세 번에 걸쳐 재건축을 할 정도면 상당히 번성했던 사찰임에 틀림없단다. 발굴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라 발에 채이는 고려청자 파편 또한 인상적인 것이었다. 또 각각 보물과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두 개의 부도를 보면서 친절하게 비교 설명하는 내용을 들으니 막연히 ‘아! 부도구나’ 에서 ‘음, 이것은 조화롭고 섬세한데, 저건 좀 투박하고 못생겨구나’ 하고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둘러보며 고달사지의 정확한 규모를 알고 싶은데 시간이 촉박하여 못내 아쉬운 걸음을 해야만 했다. 차에 막 오르려는데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저기 소나무가 들어선 야트막한 언덕 보이우? 저게 신털이봉이우. 옛날에 고달사지를 찾은 사람이 저기서 신발을 털고 절 안으로 들어온 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면 신에서 떨어져 나온 흙이 산이 되었겠어. 여기가 한때 아주 잘 나갔었단 말이지.” 한강을 오르내리는 많은 인사들로부터 무사와 부귀를 기원 받았을 고달사지. 무슨 사연으로 흔적을 찾기 어려울 만큼 황폐해졌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드디어 세상 빛을 보게 되었고 지금부터 어떤 사연을 풀어놓을 것인지 기대가 된다.

친절히 설명해주신 조법종 교수님과 온몸 던져 뛰어다니신 문화저널 여러분.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의 바른생활자인 일행들. 다음 답사에서도 또 뵙기를 바란다.


김담용 / 1974년 전주출생. 전주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199년 9월부터 군산중앙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는 신참교사다. 백제기행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참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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