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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2 | 연재 [<제58회 백제기행>]
전남담양 솔숲스치는 바람과 물끓는 소리
정철성(2015-05-18 17:36:56)

식영정 모퉁이에 눈발을 끌고 간 자욱이 남았다. 며칠 전부터 날이 풀렸다는데 건너다 보이는 저수지 위에서는 매운 바람이 힘을 모으고 있다. 망연히 바라보는데 앞마당에 모여 사진을 찍는다고 부르는 소리가 시끌짝하다. 백제기행 깃발을 중심으로 모여 서서 잇바디를 드러내고 웃는 웃음들이 정지화면에 잡혔다. ‘옛집기행’이라는 주제로 이땅의 건축문화를 점검해보려는 올해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갈길이 바쁘니 서두르자고 내려오면서 눈길을 돌려 소나무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대단한 나무이다. 틀어올라간 자태가 여간 당당한 게 아니다. 식영정에 오면, 정자보다, 검정돌에 새긴 성산별곡보다, 이 나무가 먼저 반긴다. 네 사람의 신선도 아마 동감일 것이다. 팔작 기와지붕이나 큼직한 시비는 애초의 뜻에 비하면 볼썽 사나운 사치이다. 식영정은 그저 핑계일 뿐 둘러싼 풍경이 아니라면 정자를 세울 이유가 없다. 그래서 정자에 오면 무엇을 볼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충고하는 것이리라.정자에 오를 마음이 바빠 휘적거리다 보니 올라갈 때는 계단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내려가면서 숨을 고르자니 문득 계단의 맵시가 떠오른다. 자연석을 그대로 쌓아올린 돌계단은 굽어서 돌아 올라간다. 이곳에 올랐을 수많은 사람들의 호흡이 세월속에 가라앉아 돌들을 누르고 있다. 김성원, 임억령, 고경명, 정철, 송순, 김윤제, 김인후, 기대승, 양산보, 백광훈, 송익필, 김덕홍, 김덕령, 김덕보, 이들은 그 이름으로 자신의 시대를 그려갔던 인물들이 아닌가.환벽당은 개울 건너에 있다. 창계천이었던가. 여기 수더분한 돌무더기가 바로 조대쌍송이라는 명칭이 붙은 곳이다. 조대라 하였지만 고기가 낚일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낚싯줄을 드리우는 이유가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으니 여유가 부럽다고 시샘하지는 말자. 이 작은 못에는 용소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소년 정철이 목욕을 하는데 한눈에 알아본 김윤제가 그를 데려다 가르치고 외손녀사위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마음 급한 어떤 총각이 풍덩 뛰어들만도 한데 떠미는 시늉에 비명소리만 높다. 환벽당을 올라가자면 낮으막한 대문이 있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다. 나올 때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여야 한다. 목재가 부족하여 낮게 만든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푸르름을 둘러친 곳이라는 환벽당의 이름은 소쇄원과 더불어 가장 멋을 부린 이름들이다. 그렇지만 환벽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빼어나게 수려한 것은 아니다. 오늘 돌아보는 정자들이 모두 그렇다. 보기에 좋고, 다시 보면 그윽하지만, 돌아보면 늘 보는 그 산천이다. 정자는 그냥 보던 풍경을 다시 돌아보는 풍경으로 바꾸어 놓는다.소쇄원에서 내가 좋아하는 자리인 애양단도 마찬가지이다. 해바라기를 하기에 좋은 자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아늑하고 볕 잘 드는 곳이면 어디라도 상관이 없다. 햇빛은 어디라도 내려오니까. 그런데 흙돌담이 꺾어진 곳에 두어 그루 나무를 심고 애양단이라고 새겨넣으니 햇살의 파장이 달라지는 것이다. 소쇄원의 주인은 입구에 대를 심어 서늘한 기운으로 감싸고 가장 높은 자리에 애양단을 쌓았다. 내려다 보면, 몸은 따뜻한데 눈이 시원하다.아이들은 또래를 만나니 쉽게 친해져서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며 소리를 친다. 잠시 눈가를 떠났기에 찾아보니 어느새 물가에 내려가 장난을 치고 논다. 산수유나무는 벌써 노란 꽃물을 맺고 있다.소쇄원에서 내려와 우리는 무슨 가든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정원이나 가든이나 같은 말이지만 느낌이 다르다. 오늘 새로 듣는 원림이라는 단어도 현대적인 정원과는 다른 전통 산수원림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 따뜻한 봄날이라고 해보자. 산자락을 타고 꽃빛이 올라가는데 주인과 손님들이 시절을 벗삼아 시회를 열고 있다. 운을 맞추니 뜻이 어그러지고 맞는 글자가 있을 법도 한데 영 생각이 막혀 춘정을 그르칠까 묵객들은 내심 불안하다. 뒷켠 토방에 기대어 졸던 마당쇠가 헛기침을 돋우어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비빈다. 저기 새참을 내가는 농부의 아낙이 똬리가 틀어져서 신경을 곤두세운채 밭고랑을 넘는다. 웃통을 벗어제낀 남정네가 괭이자루에 달라붙은 흙덩이를 둔덕에 비벼 떨어낸다.줄곧 정자에 대한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미진하여 천득염 선생께 염치없이 한국의 전통건축에 대한 해설을 부탁드렸다. 저마다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움집에서 출발한 우리들의 건축이 작금에 이르러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경청하였다. 그동안 나는 속으로 엉뚱한 집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사실은 집이 아니라 방 하나 장만했으면 하는 소망이다. 빈방에 앉은뱅이 책상 하나쯤 들여놓은 그런 여유작작한 방이 갖고 싶은 것이다. 일어나 팔을 휘둘러 닿지 않을 정도의 크기면 충분하다. 물론 창은 열어두어야 하겠지. 명옥헌에서 바라보듯이 백일홍 가지가지 창밖에 붉게 드리우면 더할 나위가 없고 말고.생각을 털고 다시 일정을 따라간다. 이번에 다시 여러 정자에 오르면서 나는 정자의 높이를 가늠해 보았다. 높이는 우리를 압도한다. 인간을 주눅들게 하는 것이 어찌 높이 뿐이야. 높고, 깊고, 길고, 넓고, 영원히 존속할 듯이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인간을 왜소하게 한다. 건물의 경우에도 큰 것들은 인간을 초라하게 한다. 숭고함이란 우리들의 미의식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늘은 경외의 대상이 된다.독수정은 고고한 자태 만큼이나 높직한 언덕위에 자리를 잡았다. 개울을 따라 몇 무더기 뒤엉킨 바위들이 보이는데 이것들도 정자를 닮았는지 뚝심이 있어 보였다. 새 왕조의 정통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선비의 기개와 송악을 향한 마음이 그만큼 높았던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독수정은 키발을 디딘 듯 안타까운 높이에 있다. 이만큼도 사람을 억누르려는 기색이 없다.면앙정은 참으로 적당한 높이에 있다. 계단을 올라가다가 잠시 평지를 만나 한숨을 돌린다. 오른쪽으로는 대숲이 서걱거린다. 거기서 비탈진 언덕을 올라가면 툭 트인 들이 눈에 들어오고 면앙정은 다시 왼쪽으로 돌아 조금 더 올라간 빈터에 서 있다. 멀리까지 전망이 개운하다. 그런데 면앙정은 들녘을 등지고 산줄기를 바라보고 앉았다. 면앙정이 돌아앉은 까닭은 무엇일까? 북서풍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송순의 처세를 닮은 것은 아닐까? 그는 험한 세상에서 존경과 천수를 함께 누렸던 인물이었다. 이에 비하면 녹수정에 다시 이름을 붙였다는 송강정의 높이는 조금 오만한 편이다. 나는 그의 자신감이 그렇게 나타났다고 생각한다.하늘과 땅 사이의 그만한 터에 작은 공간을 비워두고 그들은 무엇을 채우려 하였을까? 그렇다. 정자에서 종교적인 의미를 찾는 것이 전혀 근거없는 시도는 아니다. 인격체가 아닌 상태의 숭상이 정자를 통하여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면앙정은 ‘땅을 굽어 보고 하늘을 우러러 보는 곳’이다. 식영정이라는 이름도 ‘그림자가 쉬고 있는 곳’이 아니라 ‘그림자를 쉬게 하는 곳’ 또는 ‘사물의 흔적을 호흡하는 곳’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정자의 높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촌민들을 제압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정자는 대부분 문중에 의하여 관리되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한다. 처음에 정자가 초당으로 일컬어지기도 한 것을 보면 볏짚으로 이엉을 엮은 띠집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개축의 과정에서 기와지붕으로 바뀌었다. 위신을 덧씌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자와 모정을 비교해 보면 격차가 확연히 드러난다. 모정은 동네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민가와 같은 높이에 있다. 삶의 애환이 그대로 묻어나기에 진지함은 떨어지지만 정겨움이 넘친다.명옥헌으로 가는 길에 눈발이 드세다. 한 겨울에 정자를 찾아나서니 한가하여 좋기는 하지만 추위가 만만치 않다. 명옥헌이 다른 정자들에 비하여 낮은 곳에 있는 것은 연못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즐기려면 가까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명옥헌의 지당은 민간의 연못치고는 가장 큰 축에 드는 것 같다. 네모를 파고 가운데 섬을 둔 이런 연못들이 나는 좋다. 보길도 부용동과 강진 다산초당에도 이런 장방형의 못이 있었다. 오늘 둘러본 환벽당에도 언덕아래에 조그만 못을 파 놓았다. 소쇄원에서는 대봉대 옆으로 계곡물을 끌어들여 작은 연못을 거쳐 물길이 떨어지게 하였다. 연못은 바다 건너의 이상향을 꿈꾼다. 정자의 높이는 하늘로 치솟으려는 인간의 꿈을 가리킨다. 시공을 초월하려는 의지를 이렇게 정자와 지당에 갈무리하는 지혜가 집단적으로 발현하여 정자의 골짜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넓어지는지 초라해지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명옥헌 지당에는 늙은 백일홍 열댓 그루가 그윽하다. 엉겅퀴과의 초본이 아니라 붉은 꽃이 고운 백일홍 나무들이다. 배롱나무나 자미도 이 백일홍의 다른 이름들이라 한다. 물낯에 비친 나무들의 자태가 청아하다. 나는 아무래도 살아있는 나무들이 만드는 자연의 정원에 더 마음이 끌린다. 그렇지만 명옥헌이 푯대 구실을 하여 백일홍 연못도 다시 살아날 수 있었으니 서로 얽혀있다고 할 수밖에.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새잎이 돋아날 것이다. 명옥헌이 다시 오라고 여러번 부른다.구경삼아 돌아나오는 정자에는 사람의 기운이 빠져나가고 없다. 아궁이는 불길을 맛본지 오래되어 써늘하고 문풍지 구멍으로는 들바람이 왕래한다. 이제 정자는 정자를 아끼는 사람들이 눈길로 쓰다듬고 애정으로 채워야 할 자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들렀던 송강정에서 나는 솔숲을 스치는 바람 속에서 물끓는 소리를 들었던 그들을 다시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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