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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 | 연재 [여성과 문화]
사랑으로도 안풀릴 땐 법이 도와줍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 제정-
손희정(문화저널 기자)(2015-05-21 16:53:43)


 지난 9월 14일 배종광(부산,52세)씨는 스물세살난 딸 아이가 남자친구와 밤늦게까지 돌아다닌다며 이를 이유로 현관 유리창을 파손하고 난동을 부렸는데 딸이 이를 파출소에 신고하고 이 사실을 안 배씨는 딸을 칼로 찔러 3주의 상해를 입혔다.

 정읍에서는 이시엽(40)씨가 용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내(38)를 때려 3주 상해를 입혔으며 서울시 도봉구 오영수(32)씨는 지난  6월 아내(31세)의 돈 씀씀이가 너무 헤프다는 이유로 손발을 묶고 수차례에 걸쳐 폭행을 했다. 오씨의 아내는 ㅓㄴㅁ어지면서 방문 모서리에 충격을 입고 결국 사망했다.

 이렇게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가족 구성원들에게는 희소식이 될만한, 가정폭력을 사회범죄로 인정하고 이를 처벌하도록 한다는 '가정폭력방지에 관한' 내용이 '법'으로 제정됐다. 어찌보면 사랑으로 이해하고 가장을 중심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왔던 사회의 최소단의인 가정이, 법으로 규제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고 슬퍼할 사람도 있을 법 한데 어찌됐건 맞고 사는 가정구성원들에게는 위안이 될 것 같다.

 이 법이 제정된 것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94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을 위한 전국 연대'가 꾸려지면서 96년에는 시민, 사회, 종교단체가 힘을모아 결성한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추진 범국민운동본부'가 세워졌다. 이 단체들은 가정폭력방지법의 필요성에 대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8만 5천명이 이법안 제정을 국회에 청원하는 의미에서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또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가정폭력방지법 시안공청회 등을 통해 법안 성안 작업과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여론을 형성해 왔다. 지난해 이 법은 제정촉구를 위한 여러 가지 운동의 결실로 지난 11월 7일 '가정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로 나뉘어 국회법사위를 통과해빛을 보게 됐다.

 가정폭력방지법의 제정에는 몇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그동안 '남의 가정사'로만 여겨져 왔던 가정폭력이 명백한 범죄행위로 인식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나, 폭력사건의 조기 발견으로 피해자의 계속되는 피해를 줄이고 가해자에게는불이익과 처벌을 통해 폭력행사를 자제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사건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 또 사건이 심화되거나 형사사건으로 발전되는 것을 막고 피해자가 적절한 원조를 받게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이번 법제정으로 가정폭력 행위자는 상담, 치료명령 등 교정,교화 프로그램을 받게 돼 있어 사회적 지원과 통제도 가능해 졌다.

 이 법은 시민, 여성단체들과 학계와 법조계가 공동 제작한 시안을 바탕으로 제작해 상대적으로 연약한 피해자를 보호하고, 결과적으로는 처벌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시키기 보다는 가해자를 교화시키므로써 가정을 재활하기 위한 노력들이 상당부분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간 가정폭력 사건이 불명예스러운 가정사로 여겨져 공개하기를 꺼려하거나, 가해자를 신고할 경우 범법자로 기록돼 가정불화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참고 살아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때문에 이번 특례법에서는 '가정폭려 사건의 이같은 특수성을 감안하여 피해자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특히 신고된 가해자에게는 최대한 '주홍글씨'가 남지 않도록 했으며 일반 형사사건으로 처리할 방침이다.

 또 이 법은 현재 배우자나 가족 뿐만 아니라 전배우자나 동거자에게도 적용되며 수사기간 동안에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검사가 필요를 인정하는 경우에는 법원에 피해자로부터 격리, 1백미터 접근금지, 요양소 등에의 위탁, 구치소 유치 등을 청구함으로써 임시조치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판사의 심리 결과 보호처분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가해자는 몇가지 '곤혹스런' 교화 프로그램에 투입된다. 우선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행위가 제한되는 것은 물론, 친권행사도 제한되며 사회봉사나 보호관찰 대상이 돼야 한다. 죄질이 무거운 경우에는 법이 정하는 보호시설에 감호 위탁되고 의료기관이나 상담소 등에서도 치료와 상담을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다. 일반적으로 피해자는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임을 들어 가정폭력 사건으로 인한 물적 피해와 치료비도 가해자가 부담해야 한다.

 '반대는 하지 않지만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가정폭력방지법이 드디어 제정됐다. 물론 남성이든 여성이든 노약자든, 또 그것이 사회든 가정이든 간에 폭력으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제정됐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조건 법에 호소하고 '법대로 하자'는 식의 법정만능주의(?)보다는 대화와 사랑으로 가정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인식이 뿌리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깊은 애정으로부터의 가정 폭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폭력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가정이라는 가면 밑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각인하고 어떤 이유로도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는 사회가 하루 빨리 이뤄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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