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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 | 연재 [[사람과 사람] 전주시민화 염경형 사무국장]
시련 속에서도 꽃은 핀다
최주호(문화저널기자)(2015-05-22 17:55:47)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있거나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이 사람을 만나면 힘이 날 것 같다. 꼭,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에서 나오는 그런 친구같은 사람, 수수한 외모 때문인지 아니면 남의 심정을 이해하는 깊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지 만나면 만나수록 친근감이 더해지는 사람, 다름아닌 '전주 시민회' 사무국장 염경형(31)씨다.

 염씨는 전주시민회가 내세우고 있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인간다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몸소 실천하는 일꾼이다. 그래서 인지 '상식'이 통하고, '인간다운'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민초들, 정당한 노동의 댓가는 고사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외면당한채 살아왔습니다. 최소한의 요구마저도 철저히 무시당하는 삶, 부조리한 사회악은 말로다 할 수 없는데 민초들의 삶은 나아진 것이 무엇입니까"

 항변에 가까운 어투는 수수한 외모를 일순간에 강인한 활동가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특출난 활동가는 아니다. 소신이 깊고 생각깊은 소시민의 활동가인 셈이다. 아니 활동가라고 말할 수없는지도 모르겠다. 활동가라는 칭호에 비해 자신의 일이 시민들에게 피부적으로 와닿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문제해결을 부탁하며 염씨를 찾는 시민이 있지만,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역할에 적지않는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에는 정년퇴임한 노인이 전주시민회가 표방하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인간다운 사회'를 보고 찾아 온 일이 있었다. 노인은 대뜸 일자리를 달라는 것이었다. 노인의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정년퇴임을 했지만 일의 필요성을 느끼고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월급은 필요 없으니 일을 시켜달라'고 하송연을 했다는 것이다. 한결같이 노인 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노인이라고, 개인이라고 소외받고 무시당하는 사회를 고쳐 나가야 합니다. 이는 곧 작은 권리찾기와 연결되지요. 우리는 이 작은 권리찾기에 노력할 것입니다."

 결국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주소와 전화번호는 적어 놓았지만 오늘까지도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연락을 하겠다고 한다. 노인에게 연락할 날이 가까울수록 염씨가 말하는 인간다운 사회는 빨리 찾아 오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염씨 뿐만이 아니다. 막노동에서부터 대학교수까지 직업이 다양한 전주시민회 회원 모두가 행하는 일이다. 그들은 자기의 일터와 주변에서 어두보 그늘진 곳을 찾기에 바쁘다. 시민들의 고충이 직접 전해오지 않기 때문에 직접 찾아 나서는 것이다. 완전히 해결은 못지어도 적지 않게 도움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염씨가 시민의 손과 발이 되기로 한 것은 대학졸업을 앞둔 시점인 것 같다. 그는 한사코 물흐르듯이 이 자리에 왔다고 하지만 평탄하지 않았던 대학생활이 오늘을 있게 한 듯한 인상이다.

 87년, 일년을 재수하고 마음에 차지 않는 전북대 사범대학 수학교육과에 입학앴다. 당초의 목표는 '민족' 고대. 학교보다는 '민족'이라는 수식어가 더욱 더 마음에 들어서였다. 가정 형편상 '민족' 고대를 포기 했지만 1학년 때 과대표를 맞으면서 그 민족이라는 이름을 다시 새기게 되었다. 입학 당시부터 꿈틀거리던 학교는 4.3호헌 조치를 박으면서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새내기 시절부터 시련의 연속이었다. 6.29 선언으로 잠잠할 줄 알았던 학교는 그를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 적채교원 조기발령, 임용특별조치, 교원 미발령 싸움 등이 장기화 되면서 수업거부, 시험 거부로 이어지고 있었다. 교사로서의 꿈이 회의적으로 다가오는 시기였다. 그 와중에서도 2학년때 전북대 사범대 풍물동아리 '들불'을 만들었다. 어릴 적부터 보아온 풍물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풍물이 손에 익어갈 즈음, 본격적인 풍물공부를 시작했다. 관련서적을 뒤적이면 뒤적일 수록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공부, 왜 풍물이 소외 받는가로부터 시작한 의문은 그 근원을 파헤쳐 갈수록 사회적 현상은 거대한 투성이가 되어 다가왔다. 그 모순 투성이를 만들어가는 위정자들, 세계의 열강에 휩싸여 꼭두각시 노름을 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이라니... 사회진출을 앞두고 그를 사로잡은 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교사의 길과 운동의 길, 두 갈레의 길은 염씨를 깊숙한 수렁으로 몰고 갔다. 그즈음 전북연합으로부터 사회부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 그건 민족이 던져주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보다는 문화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정치적 변화가 없이는 어떠한 변화도 가져 올 수 없다는 인식을하게 되었죠. 그래서 사회운동을 시작한 것이지요."

 염씨가 활동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전북연합 사회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부터다. 농민, 교사, 노동계, 여성, 문화 드으이 인사와 접촉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이때 큰 재산을 쌓은 셈이다.

 기획사업업무를 맡으면서 각 재야 단체의 지원을 담당했던 염씨는 당시 가장 큰 이슈인 통일행사를 기획하는 등 많은 행사를 치러 냈다. 그러나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밤새 작성한 사업계획서가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반영되지 않을 때는 눈물까지 흘려야 했다고 한다. 힘들게 일한 보람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허탈감에서였다. 전북연합의 일은 하루하루가 배움의 연속이었다. 일이 차츰 손에 익을 즈음 전주시민의 권리를 담을 수 있는 시민연합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시민ㅇ들 사이에 확산되었다. 시민의 소리를 담지 않는 운동은 시민들로부터 소외받는자는 점에서였다.

 자연스럽게 전주 시민단체 결성은 염씨의 몫으로 주어졌다.새로운 단체들 결성한다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가진 것이 없는 염씨로서는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가을부터 전국의 모범적인 시민단체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ㅏ고 도움을 요청하기를 수십번, 시민단체 결성은 혹독한 겨울이 지나 이듬해인 94년 3월 준비위원회 결성식을 갖게 되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인간다운 사회 실현을 위한 '전주 시민회 건설 준비 위원회' 결성. 지금의 전주시민회다.

 "전주 시민회는 전주를 근거로 한 시민 단체입니다. 시민의 관심사를 모아 이를 해결하고 같이 고민하면서 발전을 모색하는 단체지요. 전주시민의 주인은 바로 전주 시민입니다"라고 염씨는 힘주어 말한다.

 염씨는 이곳에서 보건, 교육, 언론, 환경 등의 분과를 총괄하고 있다. 수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분과별 모임에 참석해 열띤 토론을 하다보면 오늘은 넘겨 집에 들어가기는 다반사. 부인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부인은 항상 그를 위로하고 힘을 복돋아 준다. 그의 생활을 누구 못지 않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인은 다름 아닌 3여년 생활 동안 전주 시민회에서 같이 생활해 온 오숙영씨. 지난해 가을 백년가약을 맺고 신혼의 단꿈에 빠질 법도 하지만 전주시민회 일이 우선이라는 염씬ㄴ 오늘도 분과모임 때문에 늦을 것 같다고 한다.

 그가 이곳에서 전주시민회와 전주시민을 위해 노력하고 받는 대가는 월 37만원, 박봉중에 박봉이지만 돈은 벌기보다는 사용하기 나름이라는 경제 철학으로 생활을 해오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경제력은 별 도움이 못된다. 경제력보다 든든한 빽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결혼식 때도 든든한 빽 덕(?)을 봤다. 박봉이다 보니 결혼자금은 없고, 그렇다고 결혼을 안할 수는 없고,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차에 주위분들이 축의금을 미리내준 덕택에 조촐하게나마 식을 치룰 수 있었다.

 이래저래 바쁜 나날 속에서 2월에 있을 정기총회를 준비하고 있는 염씨는 올해만큼은 전주시민회에 기대를 해도 좋은 한해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정기총회시 조직개편과 함께 시민활동에 대한 반경을 더욱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몸은 지금보다 고달프고 피곤하겠지만 보람에 비하면 그만한 고생쯤이야 달갑게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한다.

 그간 전주 시민회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핀잔 섞인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이에 대해 염씨는 보다 멀리 뛰기 위해 움츠리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말만 앞세우고 반짝하는 시민모임이 되기는 원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이고 내일을 바라 볼 수 있는 시민연합체의 건설이 시급하기 때문이죠. 시민의 등을 시원히 긁어 주고, 전주 시민회가 표방하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보다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뒤따라야 할 때 입니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구만리 같다. 그가 걷는 걸음이라면 구만리의 길도 그리 멀지 않을 듯하다. 한겨울 그를 보고 있노라면, 차가운 눈속에 꽃 피우는 설중매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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