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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 | 연재 [특별기고]
전라북도의 문화정책과 문화개혁의 거리
김창곤(조선일보 기자)(2015-05-26 14:38:37)


 일본 가고시마현 국제협력 업무를 맡았던 간부로부터 술자리에서 전라북도에 관해 머쓱한 충고를 들었다. 결연을 맺어 교류를 하고 있는 전라북도의 인사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라북도 이 분야 파트너가 너무 자주 교체된다는 말이었다. 반년만에도 바뀌고, 겨우 한번 만나고도 바뀌어 3년동안 5~6명의 파트너가 교체된다는 것이다.  한 부서에서 2~3년씩 일하는 그들로선 새 파트너가 몇 달 새 어떤것을 이해하고 무엇을 기여했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졌을지도 모른다.

 속마음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보통의 일본인인 그의 충고는 국제교류행정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도 기구직위표가 몇 달이 멀다하고 교체되는 가운데, 문화관광국장도 저간의 사정까지 겹쳐 신설 1년만에 세 사람째다. 국신설을 위해 어색하게 문화-관광-체육행정을 짜맞춰 관장케 한 이 자리가 보직이 마땅치 않은 간부에게 주는 자리거나, 다른 부서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냐는 비판은 너무 혹독한 것일까.

 문제는 높은 자리가 자주 바뀌는 데만 있는 게 아니다. 문화관광국 중간 공무원 자리도 '주요부서'보다 승진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자리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이곳은 벗어나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신이나 적극적으로 일하기도 어렵지만, 식견을 갖춘 문화전문관료가 생겨날 수도 없는 것이다. 문화에 우선순위를 두는 행정이라면 문화계장, 도립국악원 사무국장이 요직으로 여겨져야 하고 다음 인사에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

 문화에 대해 얼마만큼의 소양과 취향을 갖고 있느냐는 이곳으로 옮기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리 없다. 문화자원을 배분하고 문화를 장려하는 일을 맡으면서 열성을 다 쏟지 못하는 공무원들, 다른 사업에서처럼 수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공무원들, 이들의 문화인식의 한계는 문화를 시민생활에서 겉돌게 하고, 때로는 문화예술인들로부터 실소를 받는 일까지 생기게 한다. 이같은 사정은 시군들도 마찬가지다.

 지방자치제 시행 후 도나 시군의 문화 관련 예산형편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98년 도문화예술예산은 1백13억원으로 도 전체예산 1조6천6백14억원을 투자, 6개 분야 36가지 사업을 벌이겠다는 문화발전중장기계획을 발표했으나, 시책 자체도 무엇을 '건립'하고 '조성'하고 '확충'하는 데 비중을 두었다.

 '지방경영시대'는 자치단체마다 문화축제의 봇물을 트게 했다. 축제는 볼거리·먹거리·즐길거리 갖춰야 한다며 공연과 전시, 체육행사에 무슨무슨 아가씨 선발대회, 술파는 장터까지 갖추지 않은 게 없다. 문화=이벤트=지역이미지 메이킹=관광자원화=주민소득제고라는 구호를 유행처럼 외국에서 들여와 축제가 갖춰야 할 향토문화예술영역과 주민참여 확대라는 기본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공연장을 확충하고 주민을 즐겁게 할 이벤트를 자주 마련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삼성문화회관이라는 쓸만한 공연장을 갖추고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들여오는 일, 문화를 통해 지역 이미지나 주민소득을 높이겠다는 뜻도 지당하다. 그러나 중요한 일은 문화 예술을 누리고 즐기고 참여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하는 일이다. 점심시간 잠시 들릴 수 있는 음악회, 주민을 찾아 다니는 공연을 시도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주민이 농사로 바쁜 10월로 축제를 고집하는 군도 많다.

 문화 선진국은 세금을 걷거나 민원 서류를 떼주는 동사무소 대신, 동네 마다 다양한 형태의 작은 문화- 복지센터를 갖추고 있다. 이곳은 전시와 공연도 푸짐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소모임을 만들고 자주 찾아, 레크레이션을 즐기고 강습회를 갖는다. 이곳이 시집과 소설을 빌려가는 도서관이 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한 자원봉사자들의 거점이 됨은 물론이다. 전국지들보다 독자가 훨씬 많은 지역신문들은 매일같이 많은 지면을 할애, 이곳에서 베풀어지는 행사들을 안내하고 평범한 시민들이 따뜻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우리 문화가 시민을 겉돌게 된 것은 '문화를 다스리는 이'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정치권력은 경제개발에서 존립의 근거를 찾았고, 조금 부자가 된 국민들은 소비에서 행복을 찾았다. 개발이나 소비는 양적인 개념으로, 문화 시민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내면의 삶, 질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 문화예술계가 양적으로 급격히 팽창해 오면서 스스로의 기반을 제대로 다져왔고 사회와의 관련은 제대로 맺었는지 돌아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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