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8.4 | 연재 [시]
큰 형님
김기찬(2015-06-12 15:51:24)


나 어릴 적 형님은 술고래였다

조상의 묘자리 탓인지 가문의 내력 때문이였는지

밤 낮 쇠주병을 입에 달고 코 비뚫어지게 퍼마신다

어머님은 아침 저녁으로 술국을 끓이신다

형님이 술먹는 날은 이웃동네 개들이 먼저 안다

그래서인지 형님은 가끔씩 개소리로 컹컹 짖어보지만

개같은 인생이였다

언제나 술은 형님을 마셨다

개들이 어둠을 사정없이 물어뜯는 곳에 이르면 십중팔구 취해서

널브러져 있거나 동네 사람들과 멱살 잡고 싸움을 하는 것이다

형님은 우리 가문의 기둥이였다

어머님은 형님의 등짝을 후려치며 어서 죽어라 하셨다

너 죽고 나 죽자 하셨다

칼로 자를 수 없는 부모 자식간의 정이 뚝뚝 끊어지는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죽고 싶다는 형님을 나는 죽여주고 싶었다

살인, 폭행, 후레자식, 개작식, 미친놈, 날강도 이런 단어들이

쇠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두들겨 왔다

형님을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그래도 형님이 시대를 조금 이해할 나이가 되었을 때

형님은 간 곳 없고 늙고 초라한 노인을 보고  놀란다

쉰이 넘도록

공장으로 막노판으로 떠돌던 덩치 큰 어깨가

출렁하게 속 빈 자루로 허물어 지는 것이었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뒷마루에 앉아 염소처럼 담배만 태우신다

오랫동안 신지 못한 흰 고무신 한 켤레 가지런히 놓아 두고

실눈 속에 어머님의 무덤이 있는 먼산 담고 있다


        김기찬 / 전북 부안 출생. 자유문학 시 부문 신인상 당선으로 문단 데뷔했다. 한국문인협회 부안지부 회원이며 해방        공간으로 가는 문학회 회원이다. 현 변산중학교 근무. 사진으로 최근에 펴낸 『채탄부 865~185』가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