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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4 | 연재 [김용택 시인의 영화 이야기]
IMF시대와 영화 <타이타닉>
문명과 야망에 대한 숨막히는 경고
김용택 시인(2015-06-17 11:16:09)


 내가 근무하는 마암분교에 오늘까지 네명의 아이들이 전학을 왔다. 두 명은 3월 2일날 왔고, 두 명은 오늘 아침(3월10일)에 왔다. 학생은 네 명이지만 두 가족이다. 열다섯이던 전교생이 갑자기 열 아홉으로 불어나니, 선생인 우리들과 축구 야구 편 나누기에 늘 곤란을 겪어야만 하는 아이들에겐 비명에 가까운 기쁨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금방 쉬는 시간에 보니 아이들이 제법 이 구석 저 구석 두엇씩 모여 노는 모습이 보여서 기분이 묘했다. 비긋이 웃음이 비져 나오기도 하고. 그러나, 늘 우리에겐 이 놈의 '그러나'가 우리의 기분을 망치곤 한다. 아무튼 그러나 오늘 아침에 두 아이를 인천에서 데리고 이 곳으로 이사를 온 아이의 아버지 이야기를 생각하면 밥숟갈이 입으로 들어가다가도 멈추어질 일이 지금 우리들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침 일찍 출근한 나와 난로가에 마주 앉은 아이 아버지는 눈 웃음이 아주 선량하기 이를 데 없는 분이었다. 지극히 선량하게 생긴 아이의 아버지는 얼마 전까지 트럭운전사였다고 한다. 회사가 망해서 할 일이 없어 그냥 고향에 계시는 노모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려고 내려 왔다고 한다. 집을 팔려고 내놓았어도 누구 하나 집을 살려는 사람은 없고 그래서 싸게 전세를 놓았단다. 그러면서 가장들이 직장을 잃어버려 적금도 보험도 아파트 중도금도 해약하고 그 돈으로 먹고 살다가 그 돈 떨어지면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는 사람이 부지기수란다. 그 놈의 아이엠에프가 있는 집에 들르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있는 집은 무서워서 가지도 못하고 없는 집만 골라서 돌아다니니 큰일이란다. 있는 사람은 몇억씩 은행에 넣어 놓고 이자로 배 뚜들겨가며 먹고 살고 없는 사람만 더 죽게 되었단다. 지금은 그래도 괜찮겠지만 몇 달 더 가면 일자리 없어 떠도는 사람이 더 불어 날 것이라고 하면서 그 아이의 아버지는 사람 좋게 눈웃음을 가득 웃다가 아이를 맡기고 돌아갔다. 없는 사람들은 겁나고 무섭고 공포를 떨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금의 우리 정치현실을  떠올리며 나는 우려하는 바가 도를 넘어 무서움으로 다가온다. 역대 정권담당자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지도자들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우리들을 속여먹으며 우리들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가. 우리에게서 우리의 수고를 빼앗아가고 우리의 희망을 빼앗아가고 이제는 우리들 앞에 엄청난 어둠을 드리우고 있다. 늘 말하지만 나는 자본주의의 이 반문화적이고 반인간적이고 반문명적인 야만의 질주가 싫다. 가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자. 우리들의 현실에 대해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고하자. 아이엠에프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오만과 방종에서 벗어나자. 언제 어디까지 이 발전의 행진이 지속될 것인가. 인간들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 얼마까지 이 지국가 지탱되리라고 믿는가. 우리의 이 참담한 좌절과 실패는 아이엠에프가 해결해 준다지만 이 지구의 아이엠에프는 누가 구해줄 것인가. 이제 우리가 이 기회에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지구에도 아이엠에프가 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때 올 '아이엠에프'는 이 인류가, 우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환난과 재앙으로 올 것이다. 영화 <타이타닉>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는 인간들의 굳건한 믿음을 얼음 덩어리로 뚫어버린다. 배는 침몰하고 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다. 이 영화는 영화 제작에 들어간 돈 만큼이나 그 외양이 그럴 듯하게 거창하고 화려하지만 내용은 그저 그런 내용이다. 화려하고 계층을 뛰어 넘는 사랑이 그럴 듯 하지만 레어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그 배의 크기를 압도하지 못했다. 이 영화를 빛낸 배우는 케이트 윈슬렛과 약혼자 관계를 연기한, 나는 처음 본 것 같은 배우 빌리 제인이었다. 빌리 제인은 이 영화에서 가장 연기를 완벽하게 한 배우로 남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그 배에 타고 있는 춘향과 이 도령의 신분이 바뀐 두 주인공의 사랑이 아니라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도 차별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무서운 일이다. 이건 이 땅의 아이엠에프 현상과 비슷하지 않은가 말이다. 있는 사람들은 재양속에서도 살 수가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숨막히게 보여 준다. 물이 목까지 차오르는데 철창으로 귀족이 아닌 자들의 입구를 막는 것이다. 너희들은 거기서 물이나 먹고 죽어버려라고. '그러면'이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여기에서 당신들의 가정이라는 타이타닉 호는 안전한가. 당신이 속해 있는 사회는 안전하며, 엄청난 예산이 드는데도 월드컵 축구장을 만들려고 하는 전주시라는 타이타닉호는 안전하며, 사느냐 죽느냐하는 서민 대중들의 이막막한 살림살이는 제쳐둔 채 그야말로 당리 당략에 철통같이 막힌 이 정국의 한국이라는 타이타닉호는 안전한가. <타워링>에서처럼 훌륭한 소방관이 나타나면 되고 <포세이돈 어드벤처>에서처럼 목사만 따르면 되는가. <타이타닉>에서처럼 귀족들은 안전하니 당신은, 당신은 참으로 안전한가. 나는 정색을 하며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지금 바로 지금 묻는 것이다. 타이타닉은 인간들의 끝없는 야망에 대한 경고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나는 그렇게 보았다. 교육당국에 의해 좌초 직전에 힘없고 가난한 학부형들의 일치단결된 강력하고도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마암분교라는 타이타닉호에 탄 3명의 어린이와 아직 배에 탈 나이가 아님에도 언니를 따라 그냥 배에 탄 이름도 예쁜 다희야 너의 이름자의 뜻이 어떤 뜻인지는 모르겠으되 나는 그냥 다희라는 이름자가 우리들에게 많은 희망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마. 높고 푸르고 햇살이 따사로운 운동장에 뛰노는 내 아이들아 운암호 푸른 물에 너희들은 희망이다. 가난한 내 사랑 이 한반도야. 봄빛으로 검게 그을린 농부들이 이랴 자라 쟁기질을 하는 봄날이 있는 한 나는 이 땅이 좋다. 봄이면 응달진 산자락에 진달래가 어김없이 피어나고 가난한 마을에 살구꽃 피어나고 어두운 밤을 울어예는 소쩍새가 있는 한 나는 이 땅을 사랑한다. 그러는 한 이 땅은 희망의 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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