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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4 | 연재 [[여성과 문화] IMF시대 여성취업]
공정한 게임의 룰은 지켜져야 한다
김형남 (YWCA 사무총장)(2015-06-18 11:02:36)


 IMF시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안 중에서 경제를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단ㄴ 이론이 지배적인 것 같다. 그야말로 집중포격을 당한 끔찍한 재난의 현장에서 시장 원리에 따라서 경제구조가 재종될 때, 과연 정당한 게임의 원칙에 의한 구조조정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정글의 법칙에 의하더라도 시장경제를 촉진시켜 발등의 다급한 불을 꺼야겠다는 주장에 대하여 수긍되기보다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피해의식이 앞서는 것은 왠일일까? 앞으로는 다품종 소량생산체제 하에서 노동의 질이 훨씬 중요하며 노동자의 능력을 개발하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여견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왠지 공염불처럼 공허하게 들린다.

 값싼 노동력이 필요할 때는 강요된 희생정신 화신으로 이제는 경제파탄의 주범인 고임금의 원흉이 되어 거리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의 참담한 현실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는 말하여 무엇하랴. 가장 먼저 정리해고의 대상이 되는 여성노동자. 그 중에서도 자녀가 딸린 주부, 기혼여성, 미혼여성의 순서로 해고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누가 합의해 준 것인가? 이러한 수순을 당연시하는 이 땅의 현실은 남녀고용 평등법을 논하고 개인의 권리를 논하기 이전에 대대로 누적되어 온 우리 사회의 성차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는 가장이니까 부양가족이 있어서 안되고, 너는 네가 아니더라도 남편이 돈벌이를 하니까 네가 나가 줘야겠다는 남성중심적 야합 하에, 경력이나 능력에 아랑곳없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용노동현장에서 자행되는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성차별은, 눈물겨운 자기희생을 여성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정리해고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결혼식이나 자녀의 출산을 미루는 일이 다반사로 나타나고 있다. 산부인과의 임신중절수술 시술 횟수가 작년의 두배라는 보도는 여성근로자가 처한 참담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IMF 체제하에서 여성이 입는 피해는 남성근로자와 달리 정신적 사회적 상처에 그치지 않고 육체적인 상처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이러한 여성근로자의 육체적 손상은 장기적으로 국가사회 전체의 성장에 심대한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오히려 기혼여성이기 때문에, 부양가족이 있기 때문에 남성보다, 최소한 남성과 동등하게 경제적 보장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언제쯤이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까? 언제나 남성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다가 어려움이 닥칠 때면 온통 책임을 다 짊어

져야 하는 악역이 되어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여성근로자의 현실은 구직 문의에서도 잘 나타난다. 여성 구직자 중 기혼여성이 63%라는 통계는 여성근로자가 그만큼 많이 해고당했고, 가계의실직부담을 여성이 그만큼 더 떠안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전년도 3,4분기에 여성실업률의 증가치는 남성실업률 증가치보다 7배나 높게 나타나 있다. 부도가 속풀하는 5인 이하 영세사업장에서는 여성노동자가 60%이상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여성실업률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고 일해 온 여성들은 가장 먼저 부도의 위기속에 떨고 있다가 마침내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들은 한가하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 그러기에 가계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무슨일이든 해보겠다는 절박함을 갖게 되고 이러한 현상은 음식 판매 서비스업종 취업희망자가 1월에는 24%이었다가 2월에는 41%로 급등하고 있는 데서 잘 나타난다. 실업률이 10%가 넘으리라는 비관적 전망 속에서 '눈낮추기 취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여성이 택할 직종은 더욱 더 하향추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조건이 좋다는 5인이상 사업장의 상태는 어떠한가? 고용보험 적용 사험장에 대한 통계치는 역시 암담한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이 분야의 여성근로자 수는 전북지역의 경우 남성 근로자 수의 3-4%에 불과한 데 비해, 98년 3월 초 전주지방 노동사무소 통계에 따르면 여성실업급여 대상자 수는 남성 실업급여 대상자 수의 30%이상이다. 전체 노동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에 비해서 여성의 실업률이 엄청나게 큰 비중을 차지함을 볼 수 있다. 실업수당이라도 신청할 수 있는 업체에 고용되어 있다면, 부당해고 구제 신청, 부당해고 무효 확인 소송 등 법적절차라도 밟을 수 있다. 그러나 여성근로자 대부분이 일용직이나 5인 이하 사업장 서비스 업종에 근무하는 현실 속에서, 그만 두라면 그저 속수무책으로 그날부터 당장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게 여성고용자의 현실이다.

 노동부는 합리적인 해고기준 없이 여성근로자를 우선적으로 정리해고하는 행위를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도록 지방노동관서에 지시했으며, 여성해고 비율이 높은 사업장에 대해 특별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여성 차별 해고 신고창구'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절대다수인 남성 동지들의 암묵적 합의 하에 밀려나는 여성근로자의 부당해고는 신고창구 개설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경영난이 가증되어 맞벌이 부부 여성근로자나, 산전·산후 휴가 또는 육아 휴가 중인 여성근로자, 부양가족이 없는 미혼여성이 정리해고 대상이 되자, 시중에는 여성노동자 가운데 결혼하지 않고 부양가족이 있는 미혼모만이 살아남겠다는 우스개가 퍼지기도 했다.

 정당하고 공정한 게임의 룰에 의해 시장경제원리가 지배되듯, 고용평등도 공정한 게임의 룰에 의해 이루어지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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