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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4 | 연재 [음반감상]
산 자를 위한 장송곡
모짜르트의 '레퀴엠'
이호중 (극단 황토 대표)(2015-06-19 15:50:17)


 나는 모짜르트를 좋아한다. 물론 그보다는 그의 음악이 좋다. 한음과 한음사이의 미묘한 감정도 섬세하게 잡아내는 그런 피아노의 선율이 떄로는 나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편안한 휴식을 주기 때문이리라. 내가 즐겨듣는 곡은 그의 피아노 연주곡 21번과 레퀴엠. 그 중에서도 '레퀴엠'에게는 각별한 애정이 간다.

 "미-이친놈! 그래, 좋아할 게 없어서 장송곡을 좋아하냐?" 뭔가 일이 꼬이거나 잘될 때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들으면 기분이 가라앉고 좋아진다는 내 말을 듣고 한 선배가 내뱉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곡이 죽은 자를 위한 장송곡이 아니라 산 자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라고 생각한다. 이 음악은 내가 스물 한살되던 해, 그 이후에도 죽, 인생에 대한 깊이를 느끼고 해주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의 답이 되어주고 했으니까.

 대학 1학년 때던가. 음악에 관한한 문회한인 나에게는, 음악을 지독히도 사랑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어느날 그 친구와 함께 익한(구 이리)에 있는 고전음악감상실 '세바스찬'에 음악을 들으러 갔었는데 그때 친구와 내가 함께 신청한 곡이 바로 이곡, 모짜르트의 '레퀴엠'이다. 그 친구가 삼십의 나이를 밟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쳤을 때도 나는 죽 이곡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 인생의 사연들이 '레퀴엠' 속에 하나둘 묻혀갔고 나도 이 곡과 함께 천천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삶을 살아가는데 당당하지 못한 나, 늘 꼬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남자. 그래서 내 작품속의 주인공들은 늘 죽음앞에 당당했던가. 그런 삶을, 인생을 대리만족하면서 연극은 만들어졌고 그 때마다 떳떳하고 용기롭게 삶을, 현실을 헤처나가야지 하고 생각한다. 이런 죽음에 관한 장면이 나오면 늘 이 곡 '레퀴엠'을 먼저 곡은 어느새 '당당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영혼'을 대표하는 주제가가 돼 버린 것이다.

 나이 서른 여덟. 적지도 많지도 않은, 인생의 한 중간에서 나는 또다시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에 가깝게 참여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안다.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이곡이 음악적인 어떤 아름다움을 주는지 또한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곡이 나에게 그렇게 살라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것이다.


이호중/ 1961년 전주 출생. 원광대를 졸업하고 87년 89년까지 서울 극단 '전원' 연출부에서 활동했으며 90년부터 93까지 극단 '황토' 상임연출로 활동했다. 95년부터 현재까지 극단 '황토'의 대표를 맡고 있고, 전주예고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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