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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 연재 [20대의 편지]
특별한 것 없는 시기
김도연(2015-12-15 09:54:56)

얼마 전 사랑니를 뽑았다. 뽑고 나면 빈 공간이 메워지기까지 꽤나 신경 쓰여 미루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바르게 자라지 않은 사랑니로 통증은 심해졌고 결국 병원을 찾았다. 그렇게 찾은 병원에서 나는 지금껏 처음 듣는 난감한 질문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사랑니로 인한 통증이 0∼10 중 어느 정도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매순간이 똑같은 정도로 아픈 것도 아니다보니 애매할 뿐만 아니라 너무 낮게 말하기엔 아픈데 그렇다고 높게 말하기엔 과장하는 건 아닐까 싶어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또 중간을 말하기에는 사실 그 아픔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어서 생각할수록 어려운 질문이었다. 결국 기억도 나지 않는 대답으로 질문을 회피했다. 사랑니가 나서 아픈 게 뭐 별 다른 게 있나 싶기도 했다. 그냥 사랑니가 나서 아픈 것인걸.
알고 보니 그 질문은 요즘 병원에서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이 질문이 진료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 때도, 앞으로도 어려운 질문이 될 것 같다. 고통을 객관적인 수치로 답하기랄 애매하기 때문이다. 아플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거니까.
지금의 20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2개로 갈리는 것 같다. 하나는 경쟁에 치여 기준은 높아지고 안정적인 삶과는 멀어진 힘든 세대, 또 하나는 편한 시대에 태어나 힘듦은 모르며 자란 세대. 사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삶의 기준은 갈수록 높아지고 갖춰야 할 조건은 다양해져만 간다. 당장 대학에서만 봐도 스마트폰은 필수품이고 노트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흔하다. 컴퓨터나 영어 시험 등을 위한 학원도 다녀야 하고,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여러 대외활동을 찾는다. 하고 싶은 일보단 안정적인 직장을 찾지만 그마저도 줄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3포 세대'에서 'N포 세대'까지 왔다. 입시란 경쟁으로 이젠 끝난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큰 경쟁을 치러야 한다. 이렇게 우리는 안타깝고, 불쌍한 세대가 됐다.
반대로 우리는 국가와 민주화, 정의를 위해 청춘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시기를 살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굶지 않을 정도의 생활수준까지 성장했고, 더 이상 항쟁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기본적인 자유가 어느 정도는 보장되고, 여가를 즐길 시간도 생겼다. 이젠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화두가 되는 시기이다. 예전처럼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거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의 어려움을 역사책으로밖에 본 적 없는 세대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나는 과거의 20대와 지금의 20대가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껴진다. 사회적인 환경은 다르긴 하지만 그래서 다른 세대처럼 느껴지고 각자 다르다고 판단하지만 같은 20대를 살며 고민하는 것들은 결국 같을 테니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눈앞에 수많은 갈림길이 놓이는 시기. 그리고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시기. 인생의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시기. 20대는 그런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굳이 우릴 사회의 모습에 따라 어떤 하나의 세대로 정의내리는 것은 애매한 일처럼 보인다. 마치 고통을 정확한 수치로 표현해야 했던 것처럼. 좋은 모습이 있으면 반대로 나쁜 모습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이는 비단 기성세대라 말할 수 있는 분들 뿐만 아니라 20대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시선에 맞춰 스스로를 힘든 것은 모르는 세대 혹은 경쟁에 치여 살아가는 불쌍한 세대로 살아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사랑니를 뽑고 나면 당장 며칠은 아프지만 어느새 그 자리에 새 살이 돋아나듯, 과거의 20대 청춘이 지금 이런 고민을 하며 기성세대가 되었듯, 지금의 20대도 그런 시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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