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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우주를 개척하고 극복해내는 강한 인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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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2015-12-15 10:03:55)

 

 

 

화성을 탐사하던 '아레스3' 탐사대는 막강한 위력의 모래 바람을 만난다.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그 바람을 뚫고 우주선으로 향하던 중 '마크 와트니' 대원이 날려 온 구조물에 부딪혀 사라져 버린다. 그의 사망을 확신한 대원들을 그를 남겨둔 채 지구로 향한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는 마치 무인도에 표류된 '로빈슨 크루소'처럼 화성에서의 생활에 차츰 적응해간다. 물론 그를 도와줄 '프라이데이'라는 원주민 동료도 없을 뿐더러 크루소의 무인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산소와 약간의 식량을 보유한 탐사기지가 있고 탐사차량 로버는 프라이데이 못지않게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아울러 생물학적 지식으로 감자를 길러 부족한 식량을 채운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긍정적 마인드가 있다. 그리고 크루소가 구조받기 위해 무인도 옆을 우연히 지나갈 선박을 마냥 기다려야 했지만, 마크는 최첨단 인공위성 덕분에 자신의 생존을 지구에 알려줄 수 있다. 문제는 지구와 화성 간의 극복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거리에 있다.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은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의 생명체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물리적 거리와 척박한 환경 그 자체만으로 인간을 주눅 들게 만든다. 그런데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자연을 개척해온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인간의 도전 의식을 불러왔던 자연의 위엄은 우주로까지 확장된다. 아니, 반대로 우주는 인간이 그동안 정복해왔고 또 정복해내야만 하는 자연의 속성으로 전락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크는 화성에서 최초로 농작물을 재배했기 때문에 그곳을 식민화한 최초인 인간과 마찬가지라며 농담조로 으쓱댄다. 화성의 환경조건을 최대한 이용해서 삶을 지속해가는 그는 컴퓨터와 로버, 우주복 등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꼼꼼히 일상을 기록한다. 내밀한 고백이 담긴 그 거친 입자의 영상 일지들은 그의 생존 투쟁이 얼마나 인간적인가를 보여준다. 배경에 깔리는 향수 어린 70년대 디스크 음악들도 마찬가지이다. 화성을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는 그 화성을 돋보이게 하기 보다는 인간미를 전면에 내세운다.
마크의 생존을 확인한 NASA 직원들은 우주 과학자들과 머리를 맞대 구조방법을 강구한다. 뒤늦게 그의 생존을 알게 된 동료 대원들은 우주선을 되돌려 마크를 구출하는 작전에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작전 실패 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과 성공하더라도 500일이 넘는 기간을 추가로 우주에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이처럼 영화 속 모든 등장인물들은 단 하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대가와 위험을 무릅쓸 각오가 되어 있다. 온 인류가 단합한 가운데 이제 맞서 싸워야 할 유일한 적은 지구로부터 몇 천만km나 떨어져 있는 화성과 그 사이에 놓여 있는 무중력의 우주 공간이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우주 과학적 지식들이 오간다. 우주에 문외한이 나로서는 영화 속의 과학 원리들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들이 적어도 허황되지 않고 그럴싸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즉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우주 과학 기술은 영화적으로 과잉되어 있지 않고 최대한 있음직한 사실로서 묘사된다. 그것은 현실적 층위에서 생존과 구출에 초점을 맞춘 인간 중심의 '적정 기술'이라고 부를만하다.
나아가 중국이 자국의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선뜻 미국에 '태양신' 로켓을 내놓는다. 마크를 통해 국제사회는 정치적 대립과 경제적 이익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인도주의적 염원으로 하나가 되고, 생중계되는 마크 구출 작전에 온 세상이 열광한다. 영화는 극복 대상을 우주로 상정하면서 인류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더불어 불편한 대량 살상의 스펙터클을 배제하면서 인류애를 성취한다. 결국 마크를 무사히 구출하면서 영화 속에서 죽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너무나 착한 SF 휴먼 드라마가 되었다. 그리고 우주에 굴하지 않고 인류의 화성 탐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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