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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 | 연재 [수요포럼]
나무에는 정면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름답지요
155회 수요포럼
(2016-01-15 11:09:50)

 

 

때 아닌 안개와 겨울비가 뿌려대던 날, 책 한 움큼을 옆에 끼고 도착한 김용택 시인은 한 무리의 엄마들에게 옆집 아저씨처럼 듬성듬성 말을 던졌다. 아이들에 대해 묻고, 먹고 사는 일에 대해 물으며 사소한 수다를 풀어놨다. 자연스럽게 시작된 마당 수요포럼 열 두번째 자리.
지난 여름 『어린이 인성사전』이라는 책을 펴낸 김 시인은 자연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강연을 여러 차례 열었다. 우리 지역에서의 자리는 마당 수요포럼이 처음이다. 섬진강 시인의 삶과 교육철학, 다양한 책을 통해 그간 우리는 그의 생각을 접해왔지만, 생생한 그의 입담이 전하는 '우리의 삶', '우리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 만큼 더 소중했다.
구수하게 피어난 생활의 지혜와 아름다움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든든한 가지들이다.


 

우리는 왜 평생 공부를 할까요
바야흐로 인문학전성시대, 언제부턴가 '강좌', '강연'이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 주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용택 시인 역시 손에 꼽히는 인문학강좌 강사 1순위이다. 초등학교 교사를 퇴직한 이후 글을 쓰는 시간을 빼면 대부분의 일정이 강연 일정으로 채워질 만큼 전국 각지에서 그의 강연이 열리고 있다.
"인문학 관련 예산이 3조에 달한다고 합니다. 보통 1년에 1천개, 2천개씩 인문학 강좌가 열리고 있는 셈인데, 우리는 왜 공부를 할까요?", 해야 되는 것, 하면 좋은 것이 공부인데 첫 시작부터 뜨끔하다. 다양한 대답들이 등장했지만, 그가 내놓은 답은 '생각'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간단하죠.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생각한 것을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공부를 해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이게 바로 인문학이라는 것을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인이 박히게 들어온 이야기지만, 참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각을 바꾸면 말이 바뀌고, 말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는 이치. 결국 이 간단하지만 어려운 진리를 시인이 처음부터 못을 박는 이유는 바로 우리 삶을 좌지우지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리라.

 

 

시도 때도 없이 '사유하기'
김 시인이 강연 자료로 준비한 것은 40여 장에 달하는 사진들이다. 자연의 다양한 풍경이 놓인 사진, 시인의 어머니, 그가 교사로 30년을 근무했던 임실 덕치초등학교와 마암분교 아이들의 동시와 그림들이다.
오래된 풍경의 사진 하나가 펼쳐진다. 시골 어느 마을의 돌 다리를 막 건너 아낙의 모습.

"제가 이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저기 돌다리를 건너온 여인이 바로 저희 어머니인 거에요.(웃음) 사진 속 주인공을 알아내고 궁금한 것,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왜 저기 있을까?', 우리는 의심을 하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단 한 장의 사진을 두고 시인의 많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진의 풍경은 우리나라 시골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마을의 집들을 감싸고 있다. 시인은 이를 두고 "모든 마을 뒤에는 산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산에 기대어 살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두 번째 사진에는 임실 덕치마을의 500년 된 나무가 보인다. 산과 강, 나무는 우리 옛 마을을 이루는 공통된 자연임을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순리 속에서 살아온 우리는 어떠한 가치를 존중하며 살았나를 다시금 일깨운다. 행복한 삶을 위한 첫 걸음이자 모든 것이 될 생각과 이해는 시인에게도 주요한 삶의 지침이다.
그가 강의를 위해 준비한 자료의 제목 또한 '자연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쓰다'이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사유하기'이다.

 

사실 김용택 시인이 건넨 이야기들은 모두 낯선 것이 아니다.
잊혀진 채, 잘못된 삶의 방향들이 우리의 행복을 앗아가고 있었다.
강요하지 않는 삶, 비교하지 않는 삶, 나를 알아가는 삶,
이것들이 행복한 아이와 행복한 엄마의 조건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들이다.
다만 잊고 살아갈 뿐이다.

 

징검다리 건너는 법
강연장의 스크린을 가득 채운 섬진강 돌다리. 색이 바랜 흑백 사진 속에는 누군지 모를 그 시절의 아이들이 징검다리를 건넌다. 이어지는 그의 질문 하나, "몇 살이 돼야 저 돌다리를 건널 수 있을까요?", "7살, 8살입니다"라고 확신있게 답을 건넨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 돌다리를 건너야만 '학교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떻게 두려움을 버리고 징검다리를 건너는가. 그것은 '강'과 다리를 이룬 '돌'을 이해하면서 시작된다. 돌 다리 사이로 흐르는 강물의 흐름을 이해하고, 첫 번째, 두 번 째 돌의 간격과 나의 보폭을 셈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징검다리를 건넌다. 그것은 곧 자연을 이해하는 일이었다. 거기에는 그 이해를 위한 '엄마'가 존재하는 법. 아이를 울리는 엄마를 통해 우리는 징검다리를 건너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용택아 쪼매 기다려, 금방 간다."
"엄마, 빨리 와, 빨리 와."
"그라면 네가 싸게 건너와라, 찬찬히 오면 된다."

 

'나름대로' 사는 법을 잃어버린 우리
이번 강연의 참석자 대부분은 아이를 둔 엄마들. 강연의 제목처럼 '행복한 아이,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한 길을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김용택 시인을 만난 청중들에게 시인은 "나름대로 사는 법을 잃어버린 우리는 불행하다"고 단언한다. '나름대로' 사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것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이다. 남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삶이다. 그것은 곧 나를 찾는 길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간단하죠, 바로 '100점' 때문이에요. 초등학교 때부터 그놈의 100점 때문에 불행합니다. 삶의 답이 1가지 뿐이니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남이 잘 되면 내가 불행해지는 사회, 다른 것은 용납하지 않는 사회의 우리는 행복하기 어렵다. 시인은 이것이 우리 아이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한다. 1등과 100점만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기가 죽은' 아이는 자기 삶을 자기 뜻대로 영위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아주 간단합니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다려주세요. 아이가 걸어가면서 길을 만들 수 있게 해주면 됩니다."
김 시인도 그 만의 길을 걸어왔다. 그의 시 또한 '나름대로' 살아온 삶 속의 것이었다.

"저는 어떨까요? 임실에서 줄곧 나고 자라고 밥을 벌어 먹었습니다. 덕치초등학교를 나오고 순창중, 순창농고를 졸업하고 다시 덕치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지요. 한때 시인을 직업으로 삼을까도 했는데, 월급을 받는 사람이 아니면 우리나라는 '무직'이더군요. 하하, 그래서 시 쓰는 교사로 살았죠. 불행했을까요? 아니요, 임실 덕치마을의 자연과 아이들은 제 모든 것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나무에는 정면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름답지요"

그렇다. 앞뒤, 오른쪽, 왼쪽이 무의미한 나무는 내가 자리 잡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다. 보이는 그것의 모습에 따라 나무를 둘러싼 자연의 풍경과 생김생김도 다르다. 그 어떤 것에도 우리는 나무에 정답을 붙일 길이 없다.

 

'강요'에는 '재미'가 없습니다
책 읽기는 모든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교육 중 하나. 지금도 고가의 어린이 전집은 어느 집이나 책장을 차지하고, 독서교실, 글쓰기 교실은 우리 아이들의 필수 코스이다.
시집과 산문집 등 수 십 권의 저서를 낸 김용택 시인의 '독서'는 어떨까.


"우리 엄마들 애들한테 '책 좀 읽어라, 책 좀 읽어라' 하시지요? 왜 읽으라고 하세요? 엄마들은 책 읽으세요? 저는 21살 처음 책을 읽었습니다. 책이 귀하기도 했지만, 재미가 없었어요."

김 시인은 획일화된 교육방식을 강요하는 일은 아이들의 재미를 앗아가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강요된 독서로 인해 아이들의 머리와 마음 속에는 어떤 지식도 자리 잡을 수 없으며, 배움의 지식은 우리 삶 속에 요소요소 자리한다고 소개한다. 섬진강 시인의 글들도 그렇게 태어난 것이 많다. 그는 마을의 느티나무 이야기를 2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그의 글들은 오랜 시간 나무를 보며 배운 것들의 이야기이다. 300년 된 느티나무는 그에게 어떤 것 보다도 많은 가르침을 선사했다.

"지식은 재미있어야 합니다. 기다려주세요. 필요하면 읽고, 느끼면 씁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엄마 말 안 듣는 겁니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내 아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줘라"고 말한다. 김 시인 또한 이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그가 내놓는 제안하는 방법은 쉽고도 어렵다.


"자, 오늘부터 엄마 말을 듣지 맙시다!"

이유는 간결했다. 비교를 통한 대화방식에 익숙한 우리 엄마들의 강요는 결국 스스로가 아닌 남을 보고 사는 일을 강요하게 된다는 것. 이것은 아이의 스스로를 관찰하고, 주변을 관찰하는 일에 방해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좋아하면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하면 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 여러 가지 기회를 갖겠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 삶 전체가 공부가 되는 겁니다."
이 어디 쉬운 일일까. 하지만 그동안의 '엄마의 가르침'을 그만하자고 주문하는 시인의 말은 모두가 알고 있는 명쾌한 진리였다. 함께 참고, 기다리는 것. 그것은 아이와 엄마 모두 가치있는 삶을 위한 길이다. 평생을 잘 살 수 없는 우리 인생에서, 부딪히며 견뎌내는 것들 모여 우리의 삶이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자기를 발견하고, 가치와 지식을 발견하고, 싫은 것과 좋은 것을 발견한다. 모두 때가 다를 뿐 누구에게나 발견의 기쁨은 있기 마련이다.

 

"자, 오늘부터 엄마가 좋아하는 일은 엄마가 하는 겁니다."

 

 

 

삶의 생태를 파악하는 일, 그것이 교육입니다
요즘의 우리 모두는 시기별로 학습해야 될 것들이 넘쳐나고, 어른이 되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익혀야 도태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용택 시인이 이야기하는 공부와 교육, 사람의 인성은 삶 속에 있다.


"100세 시대가 열렸죠? 우리 아이들 세대는 거기에 20년을 더한, 120년이 평균 수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럼 대체 언제까지 배우고 공부를 해야 하는 건가요? 그렇게 평생을 살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는 학교에서의 배움은 물론 가정과 직장에서 '공부하는 삶'을 말한다. 결국 그가 말하는 공부란 생활, 삶을 일컫고 있다. 몇 십년 직장생활 끝에 남는 것이 없는 공허한 삶, 잃어버린 수십년을 만들지 않는 길은 나의 삶을 잘 파악하고, 나에게 맞는 길을 찾는 데 있다.

"출근하고 싶어서 환장하는 사람이 있나요? 싫어하는 일을 우리는 20년, 30년씩 하고 삽니다. 우리나라는 정말 대단한 나라에요. 퇴직하고 돌아보니 '잃어버린 30년'이더랍니다. 이것은 곧 스스로의 삶의 생태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온 비극이나 다름이 없어요."
이것은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임을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사는 인생은 어떤 것도 제대로 얻지 못한다는 시인의 말. 그것은 곧 그의 말처럼 '지식은 인격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우리의 삶과 스스로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궁리, 곧 '생각'하는 일을 게을리해선 안되는 법. 시인이 말하는 글쓰기와 삶을 관찰하고 정리하는 비법은 '생각'에 있었다. 글은 곧 자신의 생각을 쓰는 일이니 생각을 쓰다보면 생각이 늘고, 생각을 조직하는 힘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것.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게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참나무 잎이 뒤집어지면 비가 오는 것을 우리 어머니는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참된 지식,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연과 자신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얻을 수 있도록 오늘 부터는 내 아이를 바라봅시다"
김용택 시인의 『어린이 인성 사전』에는 인성을 완성하는 53가지의 단어가 담겨 있다. 알기 쉽고, 재미있게 하나 둘 단어의 이야기가 풀어져있지만, 기실 그 모든 것은 시인의 말처럼 우리의 삶과 자연 안에 있다.
그가 강조하는 동네의 저 느티나무와 참나무 잎 안에 존중과 배려, 경의와 감동이 오늘도 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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