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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 | 연재 [수요포럼]
변화와 정의의 실현, 소통과 토론이 답이다
157회 마당 수요포럼
(2016-03-15 11:15:16)





헌법, 역사, 시민혁명, 노동운동, 자본, 민중, 인간적/민주적 사회주의,
주권혁명, 직접정치, 직접경영, 통일경제, 슬기나무
손석춘 교수가 제안한 민주주의와 주권을 바로 세우는 12개념이다.
이 개념들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하고 소통하고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여야만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맞이하며
개인의 삶도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손석춘은 언론인이다. 그는 언론인은 공정해야 한다는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난 시시비비가 확실한 언론인이다. 낮고 단호한 목소리. 그는 우리 사회와 정치의 문제점을 꼼꼼히 짚어 냈다.
그는 눈과 귀를 가렸던 기득권 세력의 사회, 교육, 문화, 언론 체제의 거짓들 속에서 참된 것을 가려내고 '정치'를 생생한 삶의 현장 속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의 책은 언론에 대한 그의 뚜렷한 사고관을 담아낸다. 『신문읽기의 혁명』, 『부자신문, 가난한 독자』, 『어느 저널리스트의 죽음』 등의 저서를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한국 언론에 대해 날카로운 비평을 해왔다. 그의 저서들은 저널리즘의 위기, 죽은 저널리즘을 살려내는 일에 대하여 모두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언론의 현장에서 진실과 공정한 보도가 도외시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되짚으며 현실의 언론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화제를 모았다.
우리 삶의 문제에 대해, 변화해야만 할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우리 시대의 지식인 손석춘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보자.


무엇을 어떻게 소통할까
"대학은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노동 3권에 대해 가르쳤던 교수가 기억나십니까? 제가 '삶과 소통'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했어요.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신자유주의와 노동3권 등에 대한 강의를 합니다. 그런데 학기말 고사가 끝날 때까지 노동 3권에 대해 아는 학생이 거의 없어요. 더 솔직히 이야기를 하자면, 대졸자들 조차도 노동3권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끝까지 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는 국민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될 이 '노동 3권'을 언급하며 강연을 이어나갔다. 노동 3권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말하며, 근로 3권이라고도 한다. 노동자의 권익과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으로서 생활권에 속한다. 한국 헌법 제33조에서는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있으나, 단체행동권의 행사는 법률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 노동3권이 우리들의 삶과 직결되어있다고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시험을 보면 절반도 못 맞춘다고 한다. 손 교수는 이런 게 한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새로운 사람은 새로운 사회의 조건이고,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사람의 조건이다.
학습과 토론의 소통은 개인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길인 동시에 사회를 풍요롭게 바꾸는 길이다.
그 길은 개개인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소통의 과정이다.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사람을 일궈가는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 바로 그것이 '주권혁명'이다. 민주주의를 열어온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에 이은 한국혁명의 사상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주는 것에 대해 한번 생각을 해보죠. 사실 어느 토론회에 나가면 사회자가 저를 진보논객이라 소개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진보논객이라 답할 만큼 진보적이지 못해요."
진보는 앞으로 먼저 나아가는 것이다. 남들보다 생각이 앞서야 하고 남들보다 시대적 모순을 잘 파악해야 한다. 진짜 진보는 이 사회의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자기자리에서 전체 돌아가는 판을 지켜보고 공부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진보는 세상에 아직 꽃을 피워보지 못한 사람들이 아닐까.
"에이브라함 링컨이 말한 게티스버그 연설 중 'by the people, of the people, for the people'에서 people은 그냥 일반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people은 그냥 사람들이 아닙니다. people은 특권이 없는 사람들을 뜻해요. 특권을 가진 사람들,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people이 아니에요. 자본이 엄청난 사람도 people이 아닙니다. 권력과 자본이 없는 사람들이 people이에요."
링컨은 민주 정부를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로 정의했다. 이를 대한민국에서는 오랫동안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로 옮겨왔지만, 이 번역은 옳지 못하다. 'people'은 결코 '국민'으로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기초가 특정 국가의 틀에 갇힌 국민이 아니라 보편적인 민중people에 있다는 사실은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될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민중은 국민과 달리 자신들의 뜻에 따라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국가까지 꿈꿀 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수적인 신문인 뉴욕 타임즈지는 국제면의 머릿기사로 한국인 대다수는 정신병에 걸리기 직전이라고 보도했어요. 이유도 다 서술해놓았어요.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학원을 보내는 나라죠.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도 학원을 다녀요. 열 살이 되기 전에 평균 3.5개의 학원을 다니는 나라에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입시에 찌들리죠. 창조적인 사고가 나타날 수가 없는 구조에요. 대학에 들어가서도 취업준비 때문에, 취업해서도 언제 구조조정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늘 스트레스에 휩싸여있어요. 40대가 넘어가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늘 회식에 빠지지 않아야 되고 그러다보니 건강악화에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는 거죠."
그는 서양문화를 재빨리 수용하는 한국사회에서 정작 그들에게 필요한 정신병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을 지적했다. 미국이나 유럽 사회에서는 감기가 걸리면 내과에 가듯이 노이로제, 우울증, 짜증을 많이내는 성격이 느껴질 때 정신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술'로만 푼다. 미국 저널리스트들이 보기에 우리나라는 정말 이상한 나라인 것이다. 그리고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한국의 저널리즘은 뉴욕타임즈지가 이런 보도를 내니 그것을 인용 해서 몇몇 신문에 보도된 게 전부란다. 왜 한국의 저널리스트들은 이런 기사를 내보내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도 역시 이 상황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노동자라고 얘기하기를 꺼려해요. 노조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아요. 혹시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참 이상한 거죠. 엄연히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되어있는 기본권이 있는데, 단어를 꺼내는 것만으로 꺼림칙해지는 나라에 살고 있는 거죠. 한쪽에 의해 굉장히 굳어져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노동시간이 세계 다른 나라에 비해 길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평균 한 해에 2100시간 이상을 일한다. 효율적이지 못하다. 자연스럽게 장시간 노동을 받아들이고, 더러는 그래도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어 얼마나 좋은가라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게만 볼 문제는 아니다. 한국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선택하고 있지만 유럽의 복지국가들에 견주면 연간 700시간 이상을 더 일한다. 정규직의 노동시간 문제는 실업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노동시간을 줄여서 실업을 해소하는 방안이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실업을 비롯해 모든 노동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한국사회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치열하게 싸우지 못할까. 그런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별로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에 대한 정치권력의 소통 부재가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간다.
하지만 이같이 목소리 높인 사람들은 정작 무엇을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사람과의 소통 그리고 자신과의 소통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와 같은 미국의 기업인들, 그리고 부자들은 자기가 가진 재산의 절반 이상 때로는 80% 이상의 금액을 사회에 환원한다. 한국 기업인들 중에는 이런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제 소설 하나가 일어로 번역이 돼서 도쿄에서 출판 기념회를 가진적이 있어요. 그 때 아사히신문의 논설위원이 왔는데, 한국의 언론이 너무 부럽다더군요. 국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을 자본으로 해서 만들어진 한겨레신문이나 시민기자가 활동하는 오마이뉴스 같은 매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역동성이 일본에는 없다는 것이에요. 4월 항쟁, 5월 항쟁, 6월 대항쟁 이런 일들이 일본에는 없었어요. 일본은 위로부터 근대화를 이뤘죠. 생각해보면, 이 많은 항쟁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는지 모릅니다. 제 동기, 후배들 중에도 많아요. 현장에서 끝까지 싸우고 있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존경심을 느끼는데요. 그 과정에서 죽기도 했고, 이혼을 당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온 몸을 받쳐 싸우는 친구들이 있어요."
야당의 학생운동·시민운동 출신들이 제대로 국회의원 구실을 못한 사실로 비판받지 못하고, 엉뚱하게 '운동권 정당'으로 비난받고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구현할 결연한 의지가 보이지 않은 사실로 비판받지 못하고, '이념 정당'으로 비난받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일터에서나 가정에서 부모나 회사의 CEO, 주요 간부들이 조·중·동을 보며 익힌 사고들로 인한 파급력이 엄청나다는 것이에요. 인간은 오감이 다 있죠. 촉감과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이 다섯 개 감각인데요.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여기에 하나 더해 육감까지 말합니다. 육감은 사회적 감각이라고 하죠. 아주 쉽게 이야기를 하면, 우리가 어떤 회의하는 자리에 갔더니 회의에 참가한 사람이 명시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를 두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자신은 설령 그 사람에 대해 긍정적이라 하더라도 용기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물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냥 그 분위기에 적응한다는 거예요."
모두가 언론인이 될 수 있는 시대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손 교수는 "인터넷, 모바일 시대에 그 민중은 가장 멍청하거나 천박한 사람이 될 가능성도 높다. 더구나 한국사회에는 네티즌을 멍청하게 만드는 누군가가 조직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는 비단 밖에만 있지 않고 우리 안에도 있다. 누가 네티즌을 멍청하게 만드는 지 꼭 짚어야할 이유"라며 "무릇 모든 학문은 물음에서 시작한다. 민중언론학은 우리가 민중이라는 사실 확인과 더불어 누가 네티즌을 멍청하게 만드는가라는 절박한 물음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고정불변한 것은 없다. 우리는 역사에서 인간이 만들어가는 역사적 현실은 변화한다는 진실을 확인한다.”
그래서 손 교수는 삶을 관조하지 않고 삶의 변화에 뛰어들어 변화의 흐름과
방향에 참여하고 실천하는 자세를 또렷하게 강조한다.


한국도 스웨덴처럼 할 수 있다
"스웨덴에서는 학습모임 같은 것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른들이 만나서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스웨덴에서 책 한권을 가지고 토론하거나 이야기하는 등 학습모임 비슷한 것을 합니다. 서로의 생각을 말하고 공유하는 자리를 갖는 것이죠. 이념갈등을 떠나서 간단한 주제라도 이렇게 학습모임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런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로운 사람은 새로운 사회의 조건이고,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사람의 조건이다. 학습과 토론의 소통은 개인이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살아가는 길인 동시에 사회를 풍요롭게 바꾸는 길이다. 그 길은 개개인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소통의 과정이기도 하다. 복지국가로 널리 알려진 스웨덴은 '그냥' 만들어진 것
이 아니다. 스웨덴 양극화가 심각했을 때 민중들의 현장속으로 들어가 수많은 학습모임과 토론모임을 이끌어낸 범국민적인 운동이 있었다. 즉, 스웨덴의 민주주의는 스터디 서클 데모크라시 study circle democracy 다. "사실 '스터디 서클'이라는 것이 대학에서 많이 만들어졌죠. 일주일에 책 몇 권씩을 읽고 토론하는 이런 모임이
죠. 저는 그 때 많이 배웠어요. 대학 다니면서 교수들한테 배운 건 하나도 없어요. 제 수강생들한테도 교수한테 의존하지 말고 여러분이 모여서 스스로 공부할 것을주문해요."
한국의 대학과 노동 현장에서 학습 모임이 가장 활발했을 때는 1980년대였다. 언제부턴가 대학에서 '학습 모임(스터디 서클)'이 사라졌다. 젊은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가 평생을 일할 일터에서도 학습 모임이 실종됐다. 더러는 그때의 추억에 잠기면서 오늘날의 대학생
과 노동자의 '타락'을 타박하지만 정작 깊이 성찰해야 마땅한 사람은 지식인 집단이다. 노동조합이 느슨해지고 노동운동이 추락한 가장 큰 이유다. 놀랍게도 학습모임이 꿈틀거리는 곳은 오히려 대기업 경영진이다. 학습모임을 전략적으로 권장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이 경영 전략의 하나로 실행하는 학습모임은 이윤 추구가 가장 큰 목적이다.
물론 학습모임을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 사회처럼 노동시간이 긴 나라, 경쟁이 치열한 나라에서'학습, 소통, 토론'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더디더라도 우리를 주권자로 온전히 세우고 아름다운 꿈을 이루는 '지름길'이다.
"호남은 영남지역보다 정치의식이 높아요. 그럼에도 호남지역의 정치의식도 한 단계 더 높아져야 하지 않을까.
호남지역의 정치의식이 최상위수준이라고 해서 안심할때는 아니라는 것이죠. 전봉준이 꿈꾸던 세상, 전주에서 집강소를 꿈꾸던 세상이 이런 세상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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