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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한 번 읽어봅시다! 커트 보네거트
이휘현(2016-03-15 11:32:11)





지난 일주일 사이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 옆에는 그의 산문집이 하나 놓여있고, 오늘이나 내일쯤에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그의 또 다른 소설책 하나가 배송될 예정이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냐고? 나는 지금, 내가 지난 며칠 사이 커트 보네거트의 열렬한 팬이 되었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 Jr)는 1922년 미국에서 출생하여 역시나 미국에서 2007년에 생을 마감한 소설가다. 20세기 주요한 SF 작가 중 한명으로 불리는데, 정작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SF장르 소속이 아님을 강변한다. 대신 커트 보네거트를 '도덕주의자'라고 부른다(허버트 미트갱, <작가를 찾아서>, 137쪽 참고). 하지만 도덕주의자라는 말 때문에 그의 작품이 꽤 고상할 것이라 판단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커트 보네거트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황당무계하고, 매우 절망적이며, 심지어 무례하기까지 하다. 내가 지난 일주일 사이에 읽은 두 권의 소설 <갈라파고스>와 <고양이 요람>에 대한 독후감은, 적어도 이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커트 보네거트의 팬이 된 이유는 단순하다. 이 작품들이 굉장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곳곳에 다양한 유머가 배치되어 있고, 매우 풍자적이며, 심지어 정치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이 두 작품의 결말은 '인류의 파멸'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파멸의 원인이라는 게 과학의 발전이 창조해 낸 첨단무기라는 점, 그리고 이 첨단무기를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사용하는 '병적 인격체(psychopathic personality)'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겹친다.
<고양이 요람>이 1963년에, <갈라파고스>가 1986년에, 이십 여 년의 시차를 두고 발표된 소설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작가라는 직업을 통해 평생을 견지했던 세계관은 비교적 일관되었다 할 만 하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고통을 줄지 잘 알고 있지만, 그런 것은 괘념하지 않는… 미치광이"인(<고양이 요람>, 267쪽) 병적 인격체들이 세계의 정치·경제·문화의 최상단에서 인류를 파멸의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절망적인 세계 인식. 그리고 그 절망감에서 싹터 오르는 분노. 커트 보네거트는 자신의 분노를 자양분 삼아 문학이라는 그릇 속에다가 풍자와 조롱, 유머라는 폭탄을 융단폭격처럼 쏟아냄으로써, 20세기 문학사에 자신만의 독특한 참호를 하나 세운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포로로서 자신이 체험한 독일 드레스덴 대학살을 독특한 문학 장르로 승화시킨 그의 대표작 <제5도살장>은 우리나라에서 10년 전에 번역 출간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 미국 현대문학 100선에 드는 이 걸작이 한국에선 푸대접이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보니 새 책의 가격이 9천 원인데, 중고 책 거래가가 배송비 포함 3만 원이다. 짐작하시겠지만 새 책은 구할 수 없다! 유독 '장르 문학(예술)'에 취약한 한국인들의 편협한 문화 소비 행태를 꼬집어야 하나? 아니면… TV나 포털 사이트에서 보네거트 식의 우스꽝스럽고 대책 없는 '병적 인격체'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요즘의 대한민국 정치판 탓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이 웃기는 상황을 '보네거트的 시추에이션'이라고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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