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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 | 연재 [읽고 싶은 이 책]
슬픔과 아픔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비밀
김광식의 『김광석과 철학하기』
문윤걸(2016-03-15 11:35:22)





한 때 철학공부를 제법 열심히 한 적이 있었다. 삶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하나 같은 심오한 뜻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니고 다분히 실용적인 목적 때문이었다. 사회학을 전공으로 삼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조금 더 공부를 잘해보고 싶은데 도통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왜 그럴까 고민 끝에 이런 답을 내렸다. 사회학은 유럽의 사회적 변화에 기반해 탄생한 학문인데 유럽의 역사와 유럽 사람들의 사고체계를 이해하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답이었다. 그래서 유럽의 역사와 유럽철학사를 꽤 공들여 보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그리스로마, 중세철학은 그럭저럭 따라갈 만 했으나 근대철학을 넘어 현대철학으로 오면 현란한 형이상학적 수사들이 버거웠다. 그때마다 좀 더 쉬운 책은 없을까 뒤지고 다니곤 했다. 사람들이 철학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웬만한 인내가 아니고선 다가가기 어려운 분야임에 틀림없다. 

<김광석과 철학하기>는 이러한 선입견이 탄생시킨 책이고 또 그러한 선입견에 도전하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의 뜻은 책의 첫머리에서 뚜렷이 읽힌다. '슬픔으로 슬픔을, 생각으로 생각을 치유한다'는 문장과 저자가 인용한 에피쿠로스의 "몸의 아픔을 고치지 못하는 의술이 소용없듯이, 마음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는 철학은 아무 소용없다"는 말 한마디가 이 책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저자는 철학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 머무르지 못함을 탄식하며 철학이 오히려 보통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것임을 말하기 위해 김광석의 노래를 동원한다. 33세. 젊지도 늙지도 않은 묘한 나이에 세상을 떠난 김광석. 그가 남긴 유산이 한참의 시간을 두고 한 철학자를 만났다. 이 철학자는 김광석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던 듯하다. 그 동질감의 뿌리는 '치유'이다. 철학이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던 철학자는 김광석의 노래들이 지독한 슬픔을 통해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한다는 사실이 몹시 반가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김광석의 손을 덥석 붙잡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함께 치유해 보자고 나선다.  

이 책에는 모두 12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광석의 주옥같은 노래 12곡과 그것을 씨줄로 해서 엮어가는 12편의 철학이야기. 누구든 그중 한편은 분명히 자신의 이야기이리라.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아니면 깊이 감춰둔, 아니면 글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내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될 지도 모를 바로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에게 자신의 문제와 마주앉을 기회를 준다. 그렇다고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문제만 던져주지는 않는다. 감성으로 치유하는 김광석의 노래와 이성으로 치유하는 김광식의 철학을 함께 치유도구로 제안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이 책을 손에 들면 김광석의 노래가 먼저 들려온다. 그래서 김광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이 책이 매우 반가울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은 김광석의 노래에 담긴 추억을 꺼내들게 하고 그 추억 속의 나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김광석이 활동하던 그 시기에 누구나 아팠다. 하지만 그 아픔을 딛고 지금의 내가 있듯이 이 책 또한 누구에게는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디딤돌이 되어줄 것도 같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아픈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 내몰리는 사람들, 내 노력과는 상관없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 해야 할 일이 더 많아 하고 싶은 일을 미뤄야 하는 사람들, 일하고 싶어도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아픈데 아무도 나를 돌아봐주지 않는 이 사회가 견디기 힘든 사람들.  

어떻게 하면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면 행복해질까?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하지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 '가로등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짙은 어둠이 낙엽처럼 쌓이는 거리에서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무얼 찾고 있는지, 무얼 말하려 하는지, 무얼 기억하려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고 그저 허한 눈길만 되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 떠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사랑하는 이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꿈에 보았던 그 길로, 또 햇살이 웃고 있는 곳 그곳으로' 말이다.      

이렇게 살다보면 어느덧 지난 시간을 반추하게 되는 걸까? 노부부가 되어 지난날들을 회상하며 그 시간들을 의미 있었다 말할 수 있게 되는 걸까? '곱고 희던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그대와 함께 했던 삶들을, 뜬 눈으로 밤을 새우던 막내아들의 대학시험을, 눈물방울로 가득했던 큰딸아이의 결혼식을... 그렇게 흐르던 세월을...'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행복해진 걸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그런 우리가 행복의 실마리를 찾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다분히 대중을 위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교양강의로 그리고 TV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의를 보완한 것이니 틀림없이 그렇다. 하지만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지는 말라. 어차피 이 책은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읽는 것이므로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이유도, 그리고 시험공부 하듯 할 이유도 없다. 어느 대목이건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곳부터 읽어도 아무 무리가 없다. 다만 아주 긴 호흡으로 잠언을 읽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음의 눈을 열면 된다. 다행히 그 여정에 김광석의 노래가 동행해주니 그리 힘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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