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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8 | 문화현장 [로컬밴드 행로난]
지역이 업어 키운 이 기특한 밴드
신동하(2022-08-10 14:36:26)


문화현장 | 로컬밴드 행로난
지역이 업어 키운 이 기특한 밴드


글 신동하






새로운 음악을 찾다가 우연히 듣게 된 노래 ‘캐비넷’. 시원시원한 톤에 섬세한 핑거스타일의 기타 선율과 그 위에 얹어지는 여리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곡이었다. 노래를 만든 이들은 밴드 행로난. 놀랍게도 고등학교 3학년생부터 대학 초년생들로 구성된 밴드다. 이백의 시에서 따와 지은 이름처럼 더 큰 음악가가 되기 위한 이들의 여정은 이제 시작됐다. 첫 단독 공연을 앞두고 있는 행로난을 만났다.

행로난은 보컬의 구자명(23), 기타의 차현빈(22), 드럼의 김선우(22), 베이스와 피아노의 강지애(19)로 구성된 4인조 혼성밴드이다. 구자명이 함께 전주제일고등학교에서 밴드부로 활동하던 김선우와 합동 공연을 펼치던 해성고 밴드부 출신 차현빈을 모으며 시작되었고, 이후 2020년 12월, 당시 전주제일고의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막내 강지애까지 영입하며 현재의 체제가 완성되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앨범 단위의 작업물을 정식 발매하고 유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음원 사이트의 유통 하기 위해서는 음원 유통사가 필요한데, 대형 소속사를 필두로 한 아이돌 음악이 중심인 한국 음악계에서 ‘얼터너티브 록’ 음악이 주목받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많은 인디밴드가 여전히 공연 위주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때 도움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전북콘텐츠융합진흥원. 기관에서는 지역의 신인 뮤지션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사업인 '레드콘 음악창작소'를 통해 행로난이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도왔다. 

행로난의 재능을 알아본 지역의 뮤지션들도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탰다. 행로난의 프론트맨인 구자명은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밴드 전주 로컬 밴드 ‘노야’를 꼽았다. 전주 얼티밋 뮤직 페스티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밴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무대에 선 ‘노야’도 한때는 입시준비생들이 모여 만든 스쿨밴드였다. 그만큼 행로난에게 애착이 가서 더 아꼈던 모양이다. 행로난도 이들을 ‘믿을 수 있는 형들’이라고 부르며 따르고 있다.

지역이 업어 키운 밴드 행로난은 얼마 전 대형 밴드 오디션의 본선에 진출했다. 프로듀스 101시리즈, 쇼미더머니 등을 성공시킨 방송사 Mnet의 새로운 밴드 서바이벌인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의 본선에 덜컥 합격해 버린 것이다. 로컬에서 활동하는 밴드로서는 유일했다. 차현빈은 평소 존경하고 영감을 얻던 선배들과 자웅을 겨루게 된 1라운드의 일을 떠올리며 '무대에 오르고 내린 기억밖에 없다. 어떻게 공연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기억이 삭제됐다'고 말했다.

로컬에서 인디밴드로 살아남기

미국이나 일본에는 지역마다 대표 밴드가 있다. 예를 들어, ‘록스타’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낸 커트 코베인이 이끌던 너바나는 이름 그대로 미국의 너바나 주를 대표하는 밴드이며,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주제곡을 부른 ‘Radwimps’는 일본의 가나가와현의 간판 밴드였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홍대에 집중되어 있다. 전주는 자체적인 인디씬이 활성화되어있는 몇 없는 지역이긴 하지만, 문화의 향유층 자체가 적어 큰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결국 서울로 가야만 하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지역에 남은 이유는 단순하다. 전주는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 그래도 홍대로 가고 싶지는 않냐는 질문에 행로난은 이렇게 대답했다.

“밴드를 막 시작했을 때는 무거운 장비를 대중교통으로 공연장까지 옮겨야 해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요즘에는 밴드가 조금 유명해져서 택시까지는 발전한 것 같아요 (일동 웃음). 아직은 홍대로 갈 생각은 없어요. 저희는 전주에서 나고 자랐고요. 지금도 전주에 살고 있어요. 서울로 홍대로 올라가려면 저희는 가족부터 학업까지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해요.”

지역에서 직접 발굴한 신인 행로난이 큰 무대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것은 기쁜 일이다. 이렇게 성장한 예술가들은 세상에 작지만 깊은 족적을 새길 것이고, 그때마다 한국 예술의 지형은 다시 전라북도를 가리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책은 단순한 일회성으로 그치고 있다. 행로난이 지원했던 '레드콘 음악창작소' 사업도 매년 새로운 기수를 뽑고, 이번 기수에 참여한 음악가들은 다음에는 배제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술가로서 더욱 단단하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연속성이 중요하다. 전북에서 활동하길 원하는 예술가들을 향한 탄탄한 후속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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